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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안심프로젝트', 소비자 결론은 낙제점?

품질담당자 면담요구에 문전박대,부산공장 차량돌진 불러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8.12.31 11:13:20

[프라임경제] 각종 소비자 불만 사례로 2008년 고난의 행군을 해 온 농심이 결국 굴욕 행진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농심은 이물질 사건으로 분개한 소비자가 공장에 차량을 돌진시키는 초유의 사태까지 겪으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부산까지 온 손님 문전박대

30일 저녁, 부산광역시 모라동 농심공장에 차량이 돌진하는 일이 일어났다. 소비자 김 모 씨는 라면 이물질 문제로 품질관리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경남 언양에서 몸소 부산까지 왔으나, 요청이 거부되자 격분 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사상경찰서는 손괴죄를 적용, 김 모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모 씨는 29일 오후 10시경 경남 언양의 자택에서 라면을 끓여 4살된 딸에게 먹이던 중, 라면에서 나온 길이 10㎝의 플라스틱 이물질을 발견했다. 이로 인해 딸이 경련을 일으키고 기침을 심하게 하자 다음날인 30일 오전 본사에 전화를 걸어 이를 항의했다.

하지만 김 모 씨는 5~6시간이 지나도록 회사측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이에 몸소 공장까지 찾아갔으나 면담 요청이 거부되자 앙심을 품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모 씨는 “품질담당자가 나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과만 했으면 될 일인데 일도 때려치우고 부산까지 달려왔는데 출입조차 못하게 해 화가 났다”는 입장이다.

김 모 씨는 식품의약품안전청 및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문제를 확대시킬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이은 홍역에 ‘피로현상’, 구시대적인 소비자대응인식 겹쳤나

이번 사건은 소비자 불만에 대한 처리에 식품제조사와 소비자 사이에 ‘온도차’가 있음을 잘 드러내는 사례로 기록될 만 하다.

통상적인 처리 시간은 과거에 비해 산술급수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2000년대 접어들어 폭발적인 인터넷 발달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체감 지수는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른바 리셋 증후군 등 문제증상이 없는 평균적인 소비자라 해도 신속한 반응을 요구하는 정도가 이미 회사 불만처리 라인의 체감지수와 상당한 간격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물질 혼입 경로 등에 대한 조사와 책임 소재 규명은 시일이 걸릴 수 밖에 없다 해도 일단은 발빠른 피드백과 위로를 원하는 것도 이번 사건을 낳은 배경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농심은 이런 대응에서 유독 부조화된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봄 ‘쥐머리 새우깡’ 사태는 ‘관리 소홀’로 인한 우발적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치더라도, ‘바퀴벌레 신라면’ 논란 등에서 보여준 농심의 대응은 책임 면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소비자들에게 줘 오히려 불만을 폭증시켜 왔다. 농심은 6월 7일 신라면에서 먹바퀴가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고도 이를 당국에 알리지 않고 쉬쉬하다가, 10여일 후 일부 인터넷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에야 식약청에 보고했다.

식약청 조사 결과 제조과정에서 벌레가 들어간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스낵류와 라면류에서 잇따라 이물질이 발견된 뒤 전사적으로 ‘고객 안심 프로젝트’까지 시행하면서 기본적인 보고의무는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게 됐다.

지난 촛불 정국에서 농심이 보여준 조선일보 찬양 논란은 ‘전투적인 대응 태세’가 문제를 일으킨 사례. 보수매체인 조선일보에 광고를 싣지 말라는 취지의 항의성 전화를 받은 직원이 “광고를 게재할 매체를 선정하는 것은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밖에 없는 문제”라는 해명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조선일보는 영원할 것”이라는 불필요한 ‘맞불’을 지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농심은 불매 운동에 직면했다. 특정 매체 광고 거부가 온당한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소비자 관련 대응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만으로도 공공의 적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에 따라 농심의 소비자 대응 인식틀 자체가 시대 조류와 맞지 않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더욱이 이번 부산 공장 돌진상황은 직원들이 연이어 터지는 이물질 사태와 항의에 단련과 개선이 이뤄지기보다는 주눅과 회피, 그리고 패닉반응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맥킨지는 고객의 신뢰 증진을 위한 4가지 판단 기준으로 확실성(Reliability), 정직함(Integrity), 공감(Empathy), 친숙함(Familiarity)을 제시한 바 있다. 부산 공장의 경우 아직 문제 책임 소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이라 앞의 두 가지에 대한 대응은 어려웠겠지만, 공감과 친숙함은 보여줄 수 있었음에도 이를 스스로 버렸고 이 점이 소비자에게 상처를 준 것으로 보인다.

◆타이레놀 훈훈한 사과 사례 참고할 만

이런 농심의 늦장 대응, 모르쇠 대처 등은 미국의 타이레놀 회수조치와 비교되고 있다. 독극물이 주입된 타이레놀을 복용한 뒤 사망자가 나오자, 제조사인 존슨앤존슨은 모든 타이레놀 제품을 즉각 회수했고, 버크 회장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사과를 하고 언론에 모든 진척상황을 알리고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제조사측 잘못이 아님에도 2억 5,000만 달러가 소요되고 CEO 사과라는 초강수를 ‘다소 이르게’ 뒀지만, 오히려 신뢰를 구축해 기업가치를 높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는 대상 청정원이 유기농 참기름에서 제조공정 소홀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발생하자, 문제제품 생산일자 이후 분량을 전량 회수 후 기업 임직원들이 자식같은 제품들을 쌓아놓고 ‘화형식’을 단행하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농심이 식품업계 선도기업인 입지를 감안하면 소비자대응 태도에서 벤치마킹할 대상들인 셈이다.

한해 동안 연이은 각종 문제로 홍역을 치러온 농심이 이들 경험들을 통해 내년에는 어떤 학습효과를 발휘할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부산 공장 문제는 이런 개혁 드라이브에 부정적 예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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