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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불공정성에 법원도 주목,'해지권'인정

배상가능성도 언급…사정변경 원칙 상급심도 인용할까 관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8.12.30 16:17:21

[프라임경제] 통화옵션 파생상품(KIKO)에 가입했다가 환율 앙등으로 손해를 본 기업들이 구제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73억여원의 손실을 입은 디에스엘시디가  SC제일은행과 체결한 계약 가운데 해지권 행사(지난11월3일) 이후 만기가 도래하는 구간 부분의 효력을 정지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손해배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키코 불공정성에 법원도 주목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이동명 수석부장판사)는 디에스엘시디가 거래은행인 SC제일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고 30일 밝혔다.

이는 키코의 불공정성에 대해 법원이 인정, 해지권 행사가 정당하다고 본 것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키코는 녹인 녹아웃(Knock-In, Knock-Out)의 영문 첫글자에서 따온 상품 통칭이다.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헤지 상품이다. 약정환율과 변동의 상한(Knock-In) 및 하한(Knock-Out)을 정해놓고 환율이 일정한 구간 안에서 변동한다면 약정환율을 적용받는 대신, 하한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을 무효로 하고, 상한 이상으로 올라가면 약정액의 1~2배를 약정환율에 매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환율이 하한 이하로 내려가면 계약이 무효가 되어 환손실을 그대로 감수해야 하고, 상한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우에는 더 큰 손실을 입는다는 점에서, 금년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한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경우(원/달러 환율이 앙등하는 경우)에는 기업들이 큰 손실을 입게 된다는 위험성이 발견됐다. 아울러, 기업들은 은행에 비해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폭이 크고 은행은 환율이 일정선을 넘게 변동하면 거래를 해지해 손해를 보지 않게 되는 '불공정성'으로 인해 특히 법리 논란이 예고돼 왔다.

또한, 그간 환율이 등락을 거듭하기는 했지만, 이번 금융 위기처럼 급격한 상황까지는 보통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환차손을 대비한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가입한 기업이 많았다. 이에 따라 '설명 의무 위반'도 문제가 됐다.

재판부는 "은행이 기업들에 키코계약 체결을 권유하며 적합성 점검의무, 설명의무 등 보호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설명 의무 이행 여부를 문제로 삼았다.

아울러, "계약 체결 이후 옵션 가치 산정의 기초가 됐던 원/달러 환율의 내재변동성이 급격히 커져 계약체결 당시의 내재 변동성을 기초로 한 계약 조건이 더는 합리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일부 인용 결정을 내린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신청인 기업들은 해지권 행사 이전에 만기가 도래한 구간에 관해 키코계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만, 해지권 행사 이후에 만기가 도래하는 구간에 관해서는 키코 계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해지권 행사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단 가입자들의 승리로 1차 판정을 받게 됐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 손해배상 오히려 해야 할 수도 여지, 관련 소송 봇물 가능성

이와 함께 재판부는 키코계약을 체결했던 기업들이 입은 손해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놔 관련 소송의 대거 제기가능성을 만들었다.

재판부는 "이미 거래손실이 발생한 부분에 관해서도 은행의 적합성 점검의무, 설명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ㅡ "다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경우 실제로 배상 받을 수 있는 액수는 신청인 기업들의 과실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 사정 변경 원칙, 상급심에서도 인정할지가 관건

이에 따라, 해당 사건 외에도, 여러 유사 사안들의 해지권 행사, 그리고 손해 배상 청구(를 통한 손실액과의 상계 청구) 등이 예상된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는 해석이다. 특히 이번 재판부가 주목한 "계약 체결 이후 옵션 가치 산정의 기초가 됐던 원/달러 환율의 내재변동성이 급격히 커져"라는 부분은 사정 변경 원칙을 인용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대법원 판례는 이 논리를 채용하는 데 극히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아직까지는 부당하게 조건이 변경된 계약은 내용을 다시 살피자는 융통성보다는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정신이 민사법원의 기본틀로 인정되고 있다.

은행들이 피해업체들 역시 환차손을 막아보려는 탐욕적 생각과 안일한 상황인식으로 설명내용을 숙지한 다음에 가입한 게 아니냐는 볼멘 소리를 내는 데에도 이러한 관례가 받침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같이 키코 피해는 사상 유례가 없는 금융난제로 인한 파생피해로 읽히는 만큼, 최종적으로 법원이 어떤 법논리를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이에 따라 1심이나마 완고한 법원 인식틀에 변화가 일부 생겼다는 점에서 해당 키코업체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받여들여지고 있어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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