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자체 개혁을 통해 이른바 '가락동 발언'의 화를 피해가려고 노력했던 농협은 그러나 22일 2009년도 업무보고에서 정부의 개혁 의지가 결국 농협의 모든 힘을 빼는 방향으로 설정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사실상 전면 수술이다.
◆"이빨 뽑아라" 농림수산식품부 총대 맨 개혁 드라이브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22일 2009년도 업무계획을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내년에 농협을 전면 개혁하고 산하 공공기관들도 인력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농협 지배구조 개편 차원에서 중앙회장의 대표이사 등에 대한 인사 추천권을 없애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중앙회장을 명예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에 따라 이사회가 실질적인 의결기구가 되도록 하고 감사기구는 독립성을 키워 '견제와 균형'이 살아있는 농협이 된다.
또한 농림부는 중앙회의 전문이사가 가진 교육지원비 편성권을 경제 대표이사에게 넘겨 중앙회의 신용 이익금이 경제사업 활성화에 우선 지원되도록 해 농협이 농민들을 위한 자조조직이라는 근본취지에 더욱 부합하도록 할 계획이다.
인적 쇄신과 구조조정도 강도 높게 추진해 농협 중앙조직을 20% 이상 슬림화할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는 기존의 임원 10% 감봉, 중앙회 조직 및 산하기관 통합 등을 통한 농협 자체 개혁에 정부 당국이 사실상 실망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욱이 최원병 중앙회장의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읍소에도 청와대와 정부가 사실상 등을 돌린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어서, 이번 업무보고 파장은 최 회장 거취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치하는 농협" 논란에 주무부처 감사 거부 등 무소불위까지
이러한 개혁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가 그간 1년여 정권 운영과정에서 느껴온 뼈저린 교훈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농협은 감사 거부로 인해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의 통제마저도 거부하는 것이냐는 논란을 낳아왔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인사 및 일선 조합 자금 지원 적정성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으나, 농협중앙회는 노조를 바리케이트로 내세워 핵심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노조 역시 감사를 방해하고 있어 사측 대변인이라는 비난을 거세게 받은 바 있다.
이에 앞서서는 "농협이 정치를 하려 한다"는 이 대통령의 강한 질타를 받은 바 있는데, 전혀 개혁 의지가 없음은 물론 '정부 당국마저 핸들링 가능한 대상으로 보느냐'는 우려가 작동한 것으로 해석된다.
농협 스스로가 정부를 적으로 만든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이 벌어진 것은 비단 일회성 '이변'이라기 보다는 그 배경에 농협 스스로가 조직 비대와 그에 걸맞지 않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 그리고 농협이 농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복무 원칙론에서 점점 멀어지는 게 아니냐는 문제까지 겹쳐온 게 한꺼번에 터졌다는 해석이 더 유력하다.
결국 중앙회장 권력 집중, 농민에 대한 이익 사용 문제 등의 가장 큰 주안점에 이명박 정부가 초점을 두고 이 송곳니 두 개를 모두 뽑은 것으로 보인다. 인사추천권을 잃어 사실상 중앙회장이 명예직이 되고, 중앙회의 신용 이익금이 경제사업 활성화에 우선 지원되도록 해 농협이 농민들을 위한 자조조직이라는 근본취지에 더욱 부합하도록 할 계획만으로도 농협 대수술의 반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다.
◆농협, 농민에 대한 MB 애정 표현 도구로 부적절, 수술 필요하다?
이런 개혁 정국에서 중앙회 수장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은 결국 최악의 시대를 지휘한 수장으로 기록에 이름을 남기게 될 전망이다.
농협이 이 대통령의 '정치 논란'을 듣게 된 것은 최 중앙회 회장 전임자들의 휴캠스 매각 비리 등에 상당한 뿌리를 둔 것도 사실이지만, 최 회장 집권 이후에도 농협이 이 대통령과 정부의 기대만큼 쇄신의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화를 키운 것으로 읽힌다.
최 회장 집권 이후에도 농협은 "농협이 수입고기를 들여와 팔아 이익추구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국정감사 논란을 키워(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질타) '국정감사의 야당 강공 모드'에 일부 꼬투리를 제공하는가 하면, 자회사인 남해화학이 비료값 인상으로 농민 시름이 깊어지는 와중에 사상 최대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상황으로도 뉴스거리를 제공했다.
더욱이 최 회장은 회장 직선제 선거 당시 "대통령은 이명박, 농협회장은 최원병"이라는 구호를 공공연히 사용해 당선될 정도로 막강한 MB라인의 혜택을 누렸으면서도(동지상고 출신), 여러 개혁적 요구에 부응하는 데 미흡했던 것으로 알려져 더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특히 최근 청와대 은행지점 수주 문제 등에서도 우리은행을 배제하고 농협이 들어간 여건에 대해서,농협은 친MB인맥이라는 점, 그리고 농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정국에서 상심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농협에 더 점수를 준 것이라는 분석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업무보고의 강도높은 수술 예고는 농협이 농민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애착을 전혀 전달하는 도구로서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당국은 하고 있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번 정부 업무보고에서 적시된 개편이 모두 실행되는 경우 최 회장 이후의 농협은 기존 농협과 전혀 다른 슬림하면서도 농업인 지원 업무에 충실한 기구로 축소개편될 전망이다. 이번 개혁 문제로 이른바 청와대 및 당국의 의중이 측근으로 평가받은 최 회장까지 '읍참마속'의 심경으로 겨냥한 만큼, 농협이 발빠르고도 확실한 개편의 시기를 맞이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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