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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개선론 솔솔 한국은행,어떻게 변신할까

한은법 개정,경제침체 해결사 역할·권한강화 대신 ‘독립성’우려도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8.12.21 20:31:24

[프라임경제] 최근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은행의 위상 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위기 정국에서 대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한국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각국 중앙은행 역할변화 흐름에 한은개편도 수면위로

한국은행이 이번 정권 들어서면서부터 기획재정부와 엇박자를 내거나 불만을 들으면서도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온 것은 한국은행이 그간 한국은행법에 충실해 왔기 때문이다.한국은행은 발권력(은행권, 즉 화폐를 찍어낼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만, 그간 한은법 제 1조를 충실히 이행하는 기구로서 정책 수립과 감독에 치중해 왔다.

한국은행법 제 1조는 “이 법은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하고 있다. 이는 과거부터 한국은행을 통해 물가관리 등을 하면서 수출위주 경제성장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한 시스템을 당국이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위기 등이 현실화되면서, 한국은행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유동성 위기 정국에서 급기야 한국은행이 돈을 풀어 위기를 해소해 달라는 주문이 음으로 양으로 가해졌고, 이러한 정치권과 정부측, 그리고 시중은행들의 압박에 한국은행측은 그간 소극적으로 따르는 수순을 밟아왔다. 이런 한국은행의 자세에는 지금 시장에 자금을 늘렸다가 수년 뒤 유동성이 너무 넘치게 되면 향후 통화정책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기본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는 여러 경로의 한국은행 역할론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제를 완전히 포기하는 건 위험하지만, 지금처럼 체제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금융체제 안정을 위한 포괄적 임무를 맡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 이미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역할모델 찾기에 나서고 있는데, 한국은행도 이런 흐름을 타야 한다는 요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해 금융권 구제금융 등을 통해 직접 공급한 자금만 2조달러(약 3,000조원)에 달한다. 일본은행(BOJ)도 지난 9월과 10월 3차례에 걸쳐 ,2500억달러의 자금을 공급했고 현재 미국의 제로 금리 선언에 대응한 대책 마련에도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필요성에 따라, 현재 국회에는 한은법 개정안들이 상임위에 제출돼 있다.박영선(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한은법 개정안은 한은의 목적조항을 확대하는 게 주안점이다. 기존 조항에 ‘금융제도 안정’이라는 포괄적 목적을 추가해 지금 같은 위기 때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영란은행의 목적조항에 성장과 고용목표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성남(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한국은행에 비은행 금융사에 대한 자금 지원 및 외환시장 안정에 대한 협의 기능을 부여하자”는 제안이 나온 것도 눈여겨 볼 만 하다. 외환정책에 대한 권한을 강화하자는 것으로 일단 해석될 수 있는 안이기 때문이다.

◆금융위와 업무 중첩 가능성, 독립성 문제도 ‘촉각’

하지만 이런 한국은행법의 개정 움직임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도아니다. 우선 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과 설립 목적이 중첩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 의원이 제안한 외환정책 참여 방안은 이미 법률상 외환정책 기능이 기획재정부에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은행까지 외환정책에 참여하면 자칫 혼선만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으로서는 과거 재정부처에 종속돼 있다가 독립기관으로 위상을 다져왔기 때문에 이런 개편이 전부 마음에 들 수 없다. 과거 한국은행은 독립적인 기관이라기 보다는 재무부 정책을 따르는 기관으로 인식됐던 적도 있다. 옛 재무부 시절에는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말도 공공연했을 정도다.

그러다가 한국은행은 두 차례 한국은행법 개정을 통해 은행감독기능을 은행감독원(현재 금융감독원으로 통합)으로 떼어줬지만 금리권한을 얻어냈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정부와 협력 체계를 구성해야 한다면 반대급부로 독립 검사권 등이라도 부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검사권 부여 등에는 시중은행들이 난감한 눈치지만 이 정도는 지원해 줘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 도입이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 ‘워룸’에서 적극적 역할 모색할 듯

이렇게 각종 개편 요청이 이구동성으로 나온 터라, 이제 한국은행은 기존의 중앙은행 역할에 더 이상 안주하는 어렵게 됐다. 뭔가 다른 상황으로 역할모델과 존재가치를 이어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우선 가장 큰 한국은행의 변신이 시작될 무대는 바로 청와대 서별관이다. 금융권의 경색 문제와 실물경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부처 수장 비공식 회의가 이제 아예 ‘정책총괄 기구’로 격상될 태세다.

각 경제부처 수장들의 비공식 협의기구인 일명 ‘청와대 서별관회의(거시경제정책협의회)’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워룸(War Roomㆍ종합상황실)’으로 격상된다는 것이 발표된 바 있다.

정부측 공식 설명은 “현재 비공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별관회의를 경제위기극복대책을 총괄하는 기구로서 공식화하고 공식명칭도 변경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를 맞아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명실상부한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총재가 이 자리에 참여하는 것이 독립성 침해 차원에서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도 있으나, 전쟁 상황에 비견될 정도의 위기경제라는 점에서 한국은행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기준금리 1% 대폭 인하로 봇물이 터진 한국은행의 업그레이드 바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은행이 유동성 해소를 위한 첨병으로 나서는 상황으로 고속질주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한 펀드 조성에 한국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과거와 다른 역할을 정립하는 변신 과제와, 물가안정이라는 기존의 가장 큰 역할을 동시에 잡는 운용의 묘를 어떻게 얻어낼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금융위, 금감원 등과 조율을 통해 새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될지, 과거와 같은 독립성 감소로 회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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