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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 금리 인하…한국은행 변신 신호탄?

워룸 참여·유동성 전면전 맡는 新중앙은행모델 변신유력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8.12.11 10:59:46

[프라임경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또다시 낮췄다. 11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1%포인트 대폭 하향조정했다. 이는 한국은행 사상 최대 인하치이며 지금까지 단행되어온 단계적인하를 이어가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는 한국은행이 금융 유동성 확보에 주력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동시에, 정치권과 정부가 요구해온 금융 유동성 문제 해결에 한국은행이 주력해 달라는 압박을 한국은행이 수용한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한국은행, 한은법 울타리 외부요인으로 깨졌나?

한국은행이 그간 정책총괄 기구로서 위상을 가져오면서도 이번 정권 들어서면서부터 기획재정부와 엇박자를 내거나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온 것은 한국은행이 그간 한국은행법에 충실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발권력(은행권, 즉 화폐를 찍어낼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만, 그간 한은법 제 1조를 충실히 이행하는 기구로서 정책 수립과 감독에 치중해 왔다.

한국은행법 제 1조는 이 법은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하여, 한국은행이 물가안정 등을 업무로 하고 있다. 이는 과거부터 한국은행을 통해 물가관리 등을 하면서 수출위주 경제성장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에서 한국은행이 자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틀을 한국은행이 고수하는 것이 이번 정권 들어서면서부터는 큰 마찰음을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부가 정권 인수 초기에 고성장, 수출위주를 주요 경제정책 뼈대로 세우면서 고환율 정책 등을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이러한 기획재정부 판단은 당시 안정적 기조를 원하는 한국은행측과 여러 차례 크고작은 충돌을 내 왔다.

특히 금융위기 등이 현실화되면서, 한국은행의 이런 행보는 정부 당국 내부에서 여러 불평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한국은행이 돈을 풀어 위기를 해소해 달라는 주문이 음으로 양으로 가해졌고, 이러한 정치권과 정부측, 그리고 시중은행들의 압박에 한국은행측은 그간 소극적으로 따르는 수순을 밟아왔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는 여러 경로의 한국은행 역할론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다.

더욱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로 푼 돈이 그대로 시중은행들이 다시 한국은행 금고로 맡기다 시피 한 상황으로 연결되면서, 이제는 한국은행이 뭔가 강도 높은 조치를 내놔 달라는 여망이 암묵적으로 한국은행측에 전달됐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이번 기준금리 인하는 한국은행이 모두 한국은행만 쳐다보는 상황에 대해 초강수를 두면서 사실상 ‘항복’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풀이다. 이는 한국은행이 금융위기라는 세계적 위기 상황으로 인해 그간 기획재정부와 함께 두 개의 머리로 경제정책을 주도해 온 지위에서, 정부의 전략 시스템 우산 안쪽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풀이돼 눈길을 끈다.

◆한국은행, 워룸에서 무슨 역할할까?

이번 금리 인하 문제로 파격적으로 정부의 로드맵에 전폭적 지지선언을 하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는 한국은행. 이제 한국은행은 기존의 중앙은행 역할에 안주하기보다는 뭔가 다른 상황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우선 가장 큰 한국은행의 변신이 시작될 곳으로 보이는 지점은 바로 청와대 서별관이다. 금융권의 경색 문제와 실물경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부처 수장 비공식 회의가 이제 아예 ‘정책총괄 기구’로 격상될 태세다.

각 경제부처 수장들의 비공식 협의기구인 일명 ‘청와대 서별관회의(거시경제정책협의회)’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워룸(War Roomㆍ종합상황실)’으로 격상된다는 것이 9일 발표된 바 있다.

정부측 공식 설명은 “현재 비공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별관회의를 경제위기극복대책을 총괄하는 기구로서 공식화하고 공식명칭도 변경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를 맞아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명실상부한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 재정부와 한국은행간 권한 조정 문제 등 여러 문제를 뭉뚱그려 원스톱으로 해결하자는 정부의 교통정리로 읽힌다.

그동안 청와대 경제수석과 국정기획수석,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한국은행총재, 금융감독원장 등 경제부처 수장들이 고정멤버로 참여해 온 것을 감안할 때, 그리고 이번 금리 인하 등으로 인해 한국은행 총재와 기획재정부 장관 간의 역학 관계가 재정부쪽의 바람과 밑그림에 한국은행이 따라주는 것으로 정리되는 것으로 읽히는 상황임을 보면 이번 워룸 개편은 한국은행이 정부 정책에 충실하게 추수하는 상황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제현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배경으로, 금융위기 해결을 위한 새 중앙은행상을 정립하도록 요구받는다는 점이다.

이미 유럽중앙은행, 영란은행(영국은행) 등이 금융위기 해소를 위해 중앙은행의 새 전범을 그려가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고 미국 재무부가 금융위기의 급한 불을 끄는 과정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긴밀하게 공조한 것을 봐도, 각국 중앙은행은 고유의 역할론에서, 금융위기 특급소방수로 나서고 있는 게 오히려 메인 스트림으로 읽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이번 금리 1% 대폭 인하로 봇물이 터진 한국은행의 업그레이드 바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은행이 유동성 해소를 위한 첨병으로 나서는 상황으로 고속질주할 가능성이 높다.

즉 워룸의 한 구성기관으로서 기능하는 면이 강해져, 한국은행이 기존에 누려온 위상이 일부 변화될 수 있고, 우선 유동성 위기 해결을 위해 기존보다 더 넓은 폭으로 회사태를 사들이거나, 최악의 경우 발권량을 늘리는 등의 조치도 단행될 것으로 예견된다.

◆한은 고유 업무와 충돌, 당분간 진통 불가피

하지만 이러한 한국은행의 변화는 당분간 속도 조절을 받을 수도 있다. 우선 한국은행이 이번에 금리 인하에 대한 내외적 압력을 인정한 것이 일회성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고, 한국은행이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시스템을 새 역할론에 맞추는 데도 당분간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성태 한은 총재 시대에 이르러 한국은행은 급격한 시대조류에 한국경제를 보호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중앙은행 이상의 역할을 강요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역할을 모두 소화하기에는 기존의 한국은행틀만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은 이미 금년 여름 이후부터 여러 경로로 탐지돼 왔다. 이번 금리 대폭 인하 조치가 한국은행 스스로 원한 것이든, 압력의 수용이든 간에 한국은행이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내디딘 것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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