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출퇴근을 한다. 고객 정보를 다룬다. 강사 지시를 따른다. 이런 사람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
수년간 컨택센터 업계의 문제점을 들여다봐 온 하은성 노무사는 '근로자가 아닌 교육생'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무급·저임금 구조를 이같이 비판한다. 그는 법률 개정보다 시급한 과제로 행정해석의 전환을 꼽는다. 교육생의 실질적 노동 실태부터 정부·원청의 책임까지 차근 차근 짚어봤다.
◆ 실무와 다를 바 없는 교육
컨택센터에서는 채용 전 일정 기간의 직무 교육이 일반화돼 있다. 교육생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사내 시스템에 로그인한다. 상담 스크립트를 익히고 모의 상담은 물론 동석 상담까지 수행한다. 그러나 상당수는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거나, 소액의 '교육 수당'만 지급받는다.
하 노무사는 "노동을 제공하면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은 주지의 사실로 알려져있다"며 "기업들이 '교육'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상황은 더 분명해졌다. 감염 우려와 상담 수요 급증 속에 교육생이 빠르게 현장에 투입됐다. 단순 참관 수준을 넘어 사실상 상담 인력으로 활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교육생의 지위는 모호하다. 채용 내정과 시용, 수습 개념이 뒤섞여 있고, 많은 기업은 근로계약서 작성 없이 교육을 시작한다. 노동청이나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례도 반복된다.
하 노무사는 이 현상이 행정해석의 혼선과 판례·연구의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특히 '시용'과 '수습'의 개념 혼용이 문제를 키운다. 시용은 조직 적응력·근태 등 포괄적 평가가 목적이며, 수습은 업무 숙련을 위한 교육 기간에 가깝다.
그는 "단순 노무 직종에서는 짧은 기간만 봐도 업무 습득이 가능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이하 지급을 허용하지 않고, 단순 노무 직종이 아니더라도 1년 이상의 계약이 체결돼야 임금 감액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는 수습계약을 반복해 임금을 낮추는 관행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라는 의미다.
교육생 제도의 뿌리는 IMF 외환위기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입사 시점을 미룬 채 합격자에게 연수를 자율적으로 참여토록 했다. 일부 연수비가 지급되긴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임금이 아니었다.
하 노무사는 "이 시기 '입사 전 교육에 일정 금액을 준다'는 문화가 형성됐고, 이후 '임금은 아니지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관행이 굳어지면서 무급 교육의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진단한다.
이 흐름은 컨택센터에 국한되지 않는다. 운송, 항공 승무·조종, 카드·금융 등 다양한 업종에서도 입사 전 교육이 수주간 이어진다. 실무와 다를 바 없는 교육이 이뤄지지만, 근로계약 부재를 이유로 교육생은 임금·퇴직금·4대 보험 등 보호에서 벗어나 있다.
◆ 정부 훈련비 수천억…교육생 손에는 '조건부 지급'
많은 컨택센터 운영기업은 '채용예정자 직업능력개발훈련' 제도를 활용한다. 1인당 시간당 단가로 환산된 하루 5만3000원 (1일 8시간 기준) 상당의 훈련비가 지원되며,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기업 계좌로 지급된다.
그러나 하 노무사는 "이 제도는 실제 채용을 전제로 직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며 현장에서는 "합격자에게 일정 기간 근무를 조건으로 지급하거나, 중도 퇴사 시 교육비를 반납하게 하는 사례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훈련비가 교육생의 노동 대가가 아니라 인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 노무사가 특히 강조하는 지점은 '누구를 위해 일하느냐'는 정체성의 문제다. 상담사와 교육생은 카드사, 항공사, 유통사 등 원청사의 브랜드를 대표해 상담한다. 상담 스크립트·품질 기준·실적 지표 모두 원청의 규정을 따른다.
그는 "원청이 브랜드만 챙기고 사람 문제는 떠넘기는 구조"라고 비판한다.
하 노무사는 모든 문제의 구조적 책임이 원청 기업에 있다고 강조한다. BPO 기업은 낮은 도급 단가 안에서 운영되며, 교육생에게 정상 임금을 지급할 여유가 없다.
원청이 결정하는 △커리큘럼 △교육 기간 △정착금 기준 등 거의 모든 것이 계약 단계에서 설정된다. 반면 책임은 모두 하청에 전가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우리는 도급비를 지급했다"는 원청 측 논리는 불공정 구조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변명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하 노무사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공급망 전체와 함께 최종 브랜드까지 비판받는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컨택센터 역시 예외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원·하청 계약 단계에서 교육 기준, 임금 수준, 인력 운영 방식에 대한 최소 기준을 명시하고 위반 시 제재 장치를 두는 대신, 원청이 교육생의 교육비를 부담해야 구조가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임금 문제뿐 아니라, 교육생에게 민감한 고객 정보를 다루게 하는 관행도 문제다. 카드사·금융사 상담 업무에서는 개인 신용, 소득, 직장 정보, 계좌 정보 등이 포함된다.
일부 센터는 정식 채용 전 교육생에게 이를 노출하고 실제 상담을 맡긴다. 하 노무사는 이를 "회사 주장대로 근로자가 아니라면 면접을 위해 방문한 사람에게 고객 정보를 노출시키는 것"이라며, "사고 발생 시 결국 원청 브랜드가 여론의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해결책으로 그는 "교육 단계에서는 개인정보가 들어가지 않는 시뮬레이션과 케이스 스터디 중심으로 재구성하거나, 교육생도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 노무사는 근본 해법으로 법 개정보다는 행정해석의 변화를 제시한다. 그는 "출퇴근 관리, 지휘 감독, 실제 수행할 직무와 밀접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실질적 근로 관계"라며, "실제 업무 수행과 관련된 직무 교육에 참여하는 것이 강제된다면 그때부터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10년 '사업주 직업능력 개발훈련' 총 예산·실집행비, 지원 업체 수 ⓒ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가 이를 반영한 행정해석을 마련하면 현장은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덧붙였다. 그는 나아가 "교육생의 근로조건은 당연히 원청에게 요구할 수 있는 단체교섭의 대상"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현재 하 노무사는 관련 단체와 함께 행정해석 변경 요청서를 제출하고, 9월에는 노조·시민단체와 공동 의견서도 제출했다. 국정감사에서도 해당 사안이 다뤄진 바 있다.
그는 쿠팡 일용직 퇴직금 분쟁을 예로 들며,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닌, 제도 공백과 방치된 관행을 기업이 활용한 것"이라는 시각을 전한다.
끝으로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20년 넘게 방치된 교육생 구조는 개별기업에 대한 시정지시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교육생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원청, BPO, 정부가 각자 책임을 나눠야 고객 신뢰도 회복되고, 기업 이미지도 바뀔 수 있다. 지금이 구조를 되돌릴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