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주거 안정을 위해 마련된 주택도시기금의 여유자금이 4년 만에 사실상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며 재정 운용에 빨간불이 켜졌다. 기금의 수입은 제자리걸음인데 공공임대 확대 등 지출이 빠르게 늘면서 구조적 부담이 누적된 결과로 분석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주택도시기금의 여유자금은 약 12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말 49조원에 달했던 여유자금은 2022년 말 28조8000억원, 2023년 말 18조원으로 내려앉더니 올 들어서만 다시 6조원가량이 줄었다. 정책대출 금리 인상과 대출 총량 조절로 일시적으로 숨을 고른 시점도 있었지만 전체 흐름은 명확한 감소세다.
이 여유자금은 예정된 사업 외에도 돌발 변수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비상 자금'으로, 청약저축 해지 요청이 급증하거나 시장 불안이 심화될 때 대응 능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잔고가 얇아질수록 정책 대응 폭이 좁아져 기존 사업을 축소하거나 신규 계획을 미룰 가능성도 커진다.
최근 몇 년간 원금이 빠르게 소진된 배경에는 전세시장 불안, 공공임대 사업 확대, 청약저축 감소, 기금 수입 정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전세보증과 전세금 반환대출이 급증하면서 상당한 재원이 빠져나갔고, 공공임대 공급 확대와 리츠 출자 등 신규 사업에 배정되는 자금도 꾸준히 늘었다.
여기에 청약저축 해지 건수가 증가하고 신규 가입은 줄면서 기금 흐름이 약해졌고, 부동산 거래량 감소로 국민주택채권 발행액이 기대치를 밑돌자 수입원도 동시에 위축됐다. 한동안 이어진 세수 결손 국면에서 기금의 일부가 전용된 점도 여유자금 축소에 영향을 줬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에도 재정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이재명정부는 매입임대 등 공공임대 물량을 대폭 늘리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적주택 공급 계획은 내년에만 19만4000가구에 달한다.
관련 예산은 올해 15조4272억원에서 내년 22조7858억원으로 약 48% 늘어난다. 기금 여력이 넉넉지 않은 만큼 신규 공공분양에 투입되는 자금을 줄여 균형을 맞추겠다는 계획이지만, 공공임대 확대 흐름이 유지되는 한 기금 지출 압박은 계속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기금 여유자금 감소에 국토교통부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HUG를 통해 기금이 보유한 대출채권을 자산유동화증권(ABS)으로 발행해 현금을 확보하는 절차를 준비 중이다. 최근 1조원 규모 ABS 발행 주관사로 KB증권이 선정됐으며, 초기 대상은 LH에 공급된 임대주택 건설자금 가운데 비교적 금리가 높은 대출 채권이 중심이 될 전망이다.
다만 국토부는 당장 유동화를 단행하는 것은 아니라며, 위기 시 활용 가능한 '비상 수단' 정도로 성격을 규정했다. 단기적으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아울러 국민주택채권의 만기를 다양화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도 이뤄졌다. 부동산 거래 때 자동으로 매입되는 국민주택채권은 그동안 5년 만기 단일 구조였으나, 지난해 국토부와 기재부 간 협의를 거쳐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다양한 만기 구성이 가능해졌다. 이는 한 시점에 대규모 만기가 쏠리는 것을 방지해 기금의 현금 유출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주택도시기금의 재정적 여유가 줄어드는 가운데 공공임대 확대라는 정책 방향이 맞물리며 앞으로도 기금 운용의 어려움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수입 기반 확충과 지출 구조 개선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과제가 한층 무거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