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 지난해 고용노동부 부천지청은 한 공공기관 컨택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업체 교육생의 근로자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채용을 전제로 출퇴근을 하고 고객 관련 교육을 받았다면, 그 자체가 임금을 전제로 한 노동이라는 판단이다.
#. 올해 서울지노위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데이터라벨러 교육생에 대해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명칭은 '교육생'이지만 실제 내용은 채용을 전제로 한 업무 수행에 가깝다고 본 것이다.
#. 전남지노위는 H카드의 교육생 해고를 부당해고로 판단했다. 채용 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출퇴근과 상담 실습을 요구하면서, 임금과 해고 보호는 빼놓았던 관행에 처음으로 제동이 걸린 셈이다.

컨택센터 교육생의 교육비 관련 판정에 오랜 해석의 금이 가기 시작했다. ⓒ 챗GPT 생성이미지
컨택센터 교육비를 둘러싼 오래된 관행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채용을 앞둔 교육 과정에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회사 전산망에 접속해 고객 정보를 다루는 교육생에게도 근로자성이 인정돼야 한다는 판단이 노동위원회와 지방고용노동관서에서 잇따르고 있다.
앞선 1·2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컨택센터 교육비 논란은 새삼스러운 이슈가 아니다. 하루 3만~5만 원 수준에 그치는 교육비, 주 15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쪼개 놓은 교육시간, 내정자도 시용근로자도 아닌 애매한 ‘교육생’ 신분은 업계에서 오랫동안 반복돼 왔다. 이제 초점은 이 구조를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 잇따른 교육생 근로자성 인정…기준은 '실질'
최근 몇 년 사이 교육생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판정이 하나둘 쌓이고 있다. 채용을 전제로 한 콜센터 교육생 사건을 다룬 지방고용노동관서 결정, 데이터라벨러 교육생을 근로자로 본 지방·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요소는 △정해진 출퇴근 △회사 지정 장소와 시스템 사용 △실제 업무와 유사한 상담·라벨링 실습 △불참·중도 포기 시 불이익 등이다. 명칭은 교육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업무를 준비·수행하는 과정이라는 판단이다.
노동계는 "현장에서 체감해 온 현실을 제도 영역이 뒤따라가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한다.
현진아 든든한콜센터노조지부 부지부장은 "교육생으로 불리지만 하는 일은 정규 상담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지금 나오는 판정들은 20년 동안 굳어져 온 해석에 작은 균열을 내는 신호"라고 말했다.
노동 전문가들도 근로자성 판단의 기준이 형식이 아닌 실질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은성 노무사는 "대법원 판례는 일관되게 사용종속관계, 지휘·감독, 임금성 등을 종합해 근로자성을 판단하도록 제시하고 있다"며 "정해진 시간·장소에서 회사 지시에 따라 업무와 유사한 활동을 했다면 근로자로 볼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노동위원회와 일부 지방관서에서 교육생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정이 나오고 있다.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교육생 근로자성 여부는 개별 사안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종합해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 원청·BPO·정부 입장 엇갈리는 교육비 구조
교육비 논란을 둘러싼 책임을 한쪽에만 묻기는 어렵다. 구조는 원청, BPO, 정부가 함께 만들어 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원청 기업들은 "전체 도급비 안에서 인건비·시설비·교육비 등을 감안해 계약 단가를 산정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예산 제약 때문에 도급 단가를 무한정 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 교육비를 별도 항목으로 높게 책정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BPO 기업들은 "도급비와 노동부 행정해석 범위 안에서 교육비를 운영해 왔다"는 설명을 내놓는다. 한 BPO 업계 관계자는 "교육비를 더 지급하고 싶어도 계약 구조상 여력이 크지 않은 곳이 많다"며 "도급비 구조와 노동부 해석이 함께 바뀌어야 실질적인 개선이 가능하다"고 했다.
현진아 부지부장은 "예산과 경쟁 논리 뒤에 교육생이 놓여 있다"라며 "원청·BPO가 갈등하는 사이 가장 취약한 교육생의 피해가 극심하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와 현장 의견을 종합하면 △원청의 도급비 개선 △노동 당국의 판단 기준 정리 △국회의 입법 검토 등으로 나뉜다.

컨택센터 교육생 근로자성·시용 근로 시기별 연표. ⓒ 프라임경제
컨택센터 교육비 논란은 특정 업종의 민원에 그치지 않는다. 회사는 이들을 교육생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회사 시스템을 익히고 고객 데이터를 다루며 민원을 처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어디까지를 교육, 어디부터를 노동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한 현장 상담사는 "교육 기간에도 전화를 받고 고객의 불만을 듣는 건 정규 상담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한쪽은 급여를 받는 근로자로 인정받고, 다른 쪽은 교육비 몇 만 원에 그치니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이가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노조 관계자는 "저부가 가치로 판단되는 컨택센터 산업의 인식 전환을 위해서라도 제대로된 교육비를 제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