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대자동차(005380)와 기아(000270)가 경기도 안성에 대규모 배터리 개발 거점 '미래 모빌리티 배터리 캠퍼스'를 구축하며, 전동화 전략의 중심축을 전면적으로 재편하고 나섰다.
이는 R&D 투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 전기차 경쟁이 가격에서 배터리 기술 내재화로 이동하는 국면에서, 현대차·기아가 앞으로의 10년을 좌우할 기술 자립과 생태계 확장을 공식화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28일 경기도 안성시 제5일반산업단지 내에서 진행된 '미래 모빌리티 배터리 안성 캠퍼스 상량식'은 단순한 설계 단계의 공개가 아니라 현대차그룹이 직접 셀 설계-공정-통합 제어-차량 실증까지 전 과정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차량 중심 배터리 기술'이라는 그룹의 전동화 철학을 실제 인프라로 구현한 첫 본격적 움직임이기도 하다.
안성 배터리 캠퍼스는 약 19만7000㎡ 대지에 연면적 11만1000㎡ 규모로, 총 1조2000억원이 투입되는 현대차·기아의 핵심 배터리 특화 단지다.
전극-조립-활성화 등 셀 제조 전 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춰 실제 차량에서 요구되는 물성·안전 기준·열관리 조건을 그대로 반영한 고난도 실증 환경에서 기술을 반복 검증한다. 기존 연구소가 기초 설계와 단위 공정 검증을 담당했다면, 이 캠퍼스는 실제 차량 탑재를 전제로 한 종합 검증을 담당해 전동화 라인업의 품질·성능의 최종 완성도를 책임지는 구조다.

현대차·기아 미래 모빌리티 배터리 안성 캠퍼스 조감도. ⓒ 현대자동차
이를 통해 현대차·기아는 △셀 설계 기술 △공정 기술 △차량과 연계된 통합 제어기술 △배터리 전 주기(소재-셀-모듈-팩-차량) 관점의 데이터 확보 등을 모두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전동화 기술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는 경쟁력 강화를 넘어 향후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속에서 배터리 기술의 OEM 주도권 확보라는 전략적 가치를 갖는다.
현대차·기아는 배터리 캠퍼스를 통해 우선 전기차와 EREV(Extended Range Electrified Vehicle,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등 차세대 전동화 차량에 탑재될 고성능 리튬이온 배터리 셀 개발에 집중한다.
추후에는 시장 흐름에 따라 다양한 배터리 형태·소재로 연구 범위를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로보틱스·AAM(Advanced Air Mobility, 미래 항공 모빌리티) 등 미래 신사업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배터리 수요를 겨냥해 차량 배터리 개발 중 축적한 기술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는 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 AI 기반 예측 모델, 시험 자동화, 디지털 검증 체계가 도입되면서, 배터리 성능·수명·안전성의 사전 예측 정확도를 크게 끌어올릴 전망이다. 이는 글로벌 OEM들이 최근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수명예측 알고리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다.
안성 배터리 캠퍼스는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125조2000억원 규모의 국내 투자 로드맵 중 세 번째 대규모 프로젝트다. 울산 수소연료전지 공장, 화성 기아 PBV 전용 공장에 이어 이번 배터리 캠퍼스는 전동화 전략의 심장부 역할을 맡는다. 특히 현대차·기아가 배터리 대규모 R&D 시설을 해외가 아닌 국내에 구축했다는 점은 산업적 함의가 크다.
이는 단순한 시설 투자를 넘어 △K-배터리 생태계 확장 △국내 배터리 기업과의 협업 강화 △핵심 인재 양성 △국가 전동화 경쟁력 제고로 이어지는 구조적 시너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가 확보한 방대한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게 공동 검증·기술 교류·신규 소재 실험 등 다양한 협업 기회가 열리는 것도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대목이다. 국내에서 배터리 내재화 R&D 인프라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만큼, 한국이 글로벌 배터리 혁신의 거점으로 재도약할 초석이 마련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양희원 현대차·기아 R&D본부장(사장)은 "배터리 캠퍼스는 국내 배터리 생태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산업 간 협업과 기술 고도화를 촉진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라며 "기업 경쟁력의 차원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전동화 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