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내수가 살아나며 경기 회복세가 완만하게 이어지자 경제성장률도 상향 조정됐다. 시중금리 하락과 재정 지원이 맞물리며 소비가 개선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내년에는 미국의 관세 인상 여파로 수출 둔화가 예상돼 성장세가 다소 제한될 여지는 남아 있다.

김지연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왼쪽)이 11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하반기 경제전망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5년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존 0.8%에서 0.9%로 상향 조정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6%에서 1.8%로 올렸다. 이는 소비 회복과 재정 효과를 중심으로 경기 개선 흐름이 반영된 결과다.
KDI가 발표한 올해 성장률 전망(0.9%)은 지난 8월 제시한 수치보다 0.1%포인트(p) 높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공식 전망치(각 0.9%)와 동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9월 전망(1.0%)보다는 다소 낮은 수준이다. 다만 대외 여건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만큼, 회복세의 지속 여부는 변수로 남아 있다.
◆소비·투자 중심 회복세…수출은 관세 영향으로 둔화
KDI는 올해 경제 상황을 "완만한 회복 국면"으로 진단했다. 소비와 수출이 동시에 개선되며 3분기 GDP가 전기대비 1.2% 증가했고, 이로 인해 연간 성장률 전망도 상향 조정됐다.
민간소비는 올해 1.3%에서 내년 1.6%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금리 하락과 소비쿠폰 지급,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소비심리를 끌어올린 영향이다.
설비투자는 반도체 수요를 중심으로 2.0% 증가하고, 올해 큰 폭(-9.1%)의 감소를 보였던 건설투자도 내년에는 2.2% 증가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방 주택시장 침체가 장기화되고, 건설수주가 실제 공사로 이어지는 속도가 더딘 점은 여전히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반면 수출은 올해 4.1%에서 1.3%로 둔화될 전망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 인상과 중국 부동산 경기 침체 등 대외 변수로 인해 하반기에는 0.2% 감소세로 전환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경상수지는 반도체 가격 상승과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교역조건 개선으로 대규모 흑자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분석됐다. 상품수지는 1030억달러 내외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경상수지는 올해(1160억달러)에 이어 1040억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2.1%)와 비슷한 2.0% 수준으로 예상된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에서 63달러로 하락하면서 에너지 비용이 안정되고, 근원물가(식료품·에너지 제외)는 내수 회복의 영향으로 2.2% 정도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KDI는 물가가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겠지만, 환율 상승이 지속될 경우 상방 압력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고용 완만 개선…실업률 2.8% 유지
고용은 내수 개선 영향을 받으며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취업자 수는 15만명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올해(17만명)보다 다소 줄어들지만 구조적 요인으로 인한 영향이 크다. 실업률은 2.8%로 낮은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세계경제 성장률은 올해 3.2%에서 내년 3.1%로 완만하게 둔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통상 갈등 지속이 교역 위축으로 이어지고, 특히 미국 관세 인상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반영되면서 한국의 주요 수출품에도 하방 압력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국가채무비율 © 기획재정부
KDI는 이같은 대외 여건을 고려해 내년 한국경제가 '수출 둔화·내수 회복'이라는 구조적 전환기를 맞을 것으로 분석했다. 관세 인상의 영향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면서 수출 기여도가 줄어드는 반면, 금리 하락과 재정 확장이 소비 회복을 유도하며 내수가 성장의 중심축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다.
김지연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은 "최근 낮은 실업률은 고용 여건 개선보다는 구직 포기 인구의 증가와 매칭효율성 개선 같은 노동시장 구조 변화가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라며 "기업 생산성 향상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한편, 산업 수요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고등교육 체계를 개편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청년층의 구직 의욕을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
◆재정 정책, 점진적 정상화 필요
정책 방향과 관련해서는 확장적 재정기조의 점진적 정상화를 주문했다. 국가재정운용계획(2025~2029)에 따르면 향후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이 매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4%를 넘고, 국가채무비율도 연평균 2.2%포인트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KDI는 경기 회복에 맞춰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고 적자 흐름의 고착화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재정부담에 대응하기 위해 조세와 재정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학령인구에 연동하고, 기초연금은 취약 노령층 중심으로 지원 대상을 조정하는 등 재정 효율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통화정책은 현 수준의 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 근처에서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재정이 확장적으로 운영되는 만큼 금리 인하의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보았다. 향후에는 물가의 상·하방 위험을 점검하면서 환율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금융시장은 대체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통상 갈등이나 투자협정 불확실성으로 환율과 주가의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주요 금융기관의 리스크를 면밀히 점검하고, 필요시에는 긴급 유동성 공급 등 안정화 조치를 통해 금융시스템의 불안 확산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총생산, 국내총소득 및 교역조건 © 한국은행
KDI는 끝으로 경기 회복이 예상되는 국면에서도 단기 부양책보다 생산성 향상 중심의 구조개혁 노력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잠재성장률 하락이 경기순환보다는 생산성 둔화에서 비롯된 만큼, 혁신기업의 진입을 촉진하고 한계기업은 퇴출될 수 있는 유연한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KDI는 내년 한국경제를 '완만한 회복세 속의 구조전환기'로 진단하며, 수출 의존형 성장에서 내수 중심의 균형 성장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수출 둔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금리와 재정의 조합이 소비를 견인하겠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의 관건은 생산성 개선과 재정건전성 관리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정규철 KDI 거시ㆍ금융정책연구부장은 "국내 자본수익성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해외투자를 통해 소득 감소를 완충하고 있다"라며 "해외투자 자체를 제약하기보다 그 원인이 되는 국내 생산성 둔화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망한 혁신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고 한계기업은 퇴출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 생산성을 개선할 수 있는 경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