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 많은 의약품을 아직도 사람이 직접 확인해야 하나?"
조제대 위에 빼곡히 놓인 알약들을 손끝으로 세어가던 조성훈 대표. 그의 머릿속엔 늘 같은 의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10년 넘게 약국을 운영하며 매일 반복하던 의약품 검수 업무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 약사의 집중력과 체력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그는 이 비효율적인 구조의 개선을 위해 스스로 대체 방법을 모색했다.
"조제 검수를 하면서 항상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약국 현장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기술로 해결할 방법을 매일 고민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제이엔제이테크의 출발점이 됐다.
조 대표는 인공지능(AI) 객체 인식 기반의 의약품 자동 계수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약국의 재고관리·반품·마약류 점검·주문 업무를 지원하는 디지털 플랫폼 '약매니저'를 운영하고 있다.
플랫폼은 많은 성원에 힘입어 출시 2년만에 가입자 5만명을 돌파했다. 현재는 약국 업무 디지털 전환을 선도하는 대표 솔루션으로 자리매김했다.
조 대표는 조제 검수 과정에서 반복되는 비효율과 휴먼에러 가능성에 주목했다. 처음엔 자동 계수 하드웨어를 직접 제작하며 실험을 이어갔다. 하지만 고비용과 유지보수 한계를 깨닫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AI 객체 인식 기술로 방향을 전환했다.
"가격이 비쌌고 유지보수도 어려웠죠. 그래서 완전히 방향을 틀었습니다. 약국에 이미 있는 스마트폰, 그 안에 기술을 담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의약품을 자동 인식·계수하는 앱 서비스 약매니저가 탄생했다. 현재 약매니저는 단순한 계수 기능을 넘어 △재고관리 △의약품 검색 △대체조제 간소화 △마약류 점검표 자동 작성 등 약국 운영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약매니저'는 업무 자동화로 약사의 시간을 환자 상담에 돌려주는 혁신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 제이엔제이테크
현재 플랫폼은 현재 병원과 보건소, 의약품 도매업체에서 활용되고 있다. 약학대학 실습 현장에서도 실제 약국 업무를 체험할 수 있는 '실감형 교육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처음엔 저도 이렇게 빨리 자리 잡을 줄은 몰랐어요. 사용자들이 '계수가 정말 빨라졌다' '정말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피드백을 주셨죠. 실제 현장에서 필요로 했던 기능을 하나씩 담아가며 서비스가 완성됐습니다."
하지만 약국 운영과 스타트업 경영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조 대표는 기술개발에 집중하던 초기 단계를 지나, 조직 운영·투자·인사 등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그는 이를 약사에서 경영자로 성장하는 훈련의 과정으로 표현했다.
"약국에서는 제가 모든 결정을 내리고 스스로 해결해야 했지만, 회사를 운영하면서는 서로의 역량을 믿고 협력하는 문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혼자 일하던 약사가 함께 성장하는 리더로 바뀌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이엔제이테크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청년창업사관학교·글로벌창업사관학교, 인천테크노파크(ITP),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 IBK기업은행(024110) 창공(創工) 프로그램 등을 거치며 현실적인 조언과 네트워크를 확보했다.
최근에는 인천테크노파크 주관, 엑셀러레이터 탭엔젤파트너스가 운영 중인 '2025 인천 블록체인 산업 내재화 컨설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의약품 유통의 투명성을 높이는 블록체인 기술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현실적인 조언과 네트워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의약품 유통을 데이터 기반으로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블록체인을 실제 약국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다음 목표입니다."

조성훈 대표는 블록체인 도입으로 의약품 유통의 투명성까지 높이는 비전을 제시했다. © 제이엔제이테크
조 대표가 그리는 비전은 명확하다. 약매니저는 단순한 앱 서비스가 아니라 약업 현장의 디지털 전환을 완성하는 플랫폼이다. AI와 데이터 기술을 통해 약국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의약품 유통의 투명성과 환자 안전성을 함께 확보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는 기술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한다.
"기술이 약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약사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도구로 작용해야 합니다. 약사의 시간을 검수나 서류 작성에 빼앗기지 않고, 환자 상담과 복약지도에 돌려드리는 것이 진짜 기술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제이엔제이테크는 약사의 전문성을 지키면서도 약업 생태계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는 약국의 문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봐왔고, 그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팀입니다. 약매니저는 약사의 하루를 바꾸는 기술이며, 결국 환자의 삶을 바꾸는 기술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