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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경쟁' 국내 LCC 9곳, 붕괴 전조에 정리정돈 시급

외항사 공세·공급과잉에 무너지는 구조…정부 주도 재편 불가피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5.11.04 09:21:25
[프라임경제] 국내 하늘 길이 혼잡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항공 수요가 회복되자 저비용 항공사(Low Cost Carrier·LCC)들은 앞 다퉈 노선을 확대했지만,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한정된 슬롯과 수요를 두고 벌이는 출혈경쟁은 결국 시장 붕괴를 부르는 소모전으로 치닫고 있다.

국내 LCC는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트리니티항공) △에어서울 △에어프레미아 △에어로K △파라타항공(구 플라이강원)까지 총 9곳이다. 한 국가의 항공시장 규모 대비 LCC 숫자가 이렇게 많은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현재 시장 안팎에서는 "지금의 9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수요 대비 과도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의 LCC 다중 구조는 정부 정책의 산물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항공시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양분했다. 정부는 독과점 완화와 지방공항 활성화를 명분으로 지역 거점 항공사 허가를 잇달아 내줬다.

그 결과 전국 각지에 소규모 LCC가 등장했고, 비슷한 시기에 민간 자본도 관광·물류 수요 확대를 기대하며 뛰어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진입은 쉬운데 퇴출은 어렵다'는 점이었다. 항공산업이 고용·안전·지역경제와 직결된 만큼 정부가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고, 그 결과 오늘날의 9개 LCC 공존이라는 비효율적 산업 구조가 고착됐다.

지난 10월 추석 연휴 제주국제공항에 귀경객과 관광객 등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항공 수요가 폭발적으로 회복하자 LCC들은 경쟁적으로 기단을 늘리고 노선을 확대했다. 그러나 유가 상승·환율 불안·인건비 부담이 겹치며 비용은 급등했고, 탑승률은 평균 80% 밑으로 하락했다. 운임은 팬데믹 이전보다 15~20%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공급은 늘었지만 수요는 한정적이어서, 팔면 팔수록 손해인 구조가 형성됐다. 이는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니라 '착시 회복' 속에서 폭발한 공급과잉의 결과다.

최근에는 저비용 외항사들이 한국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 베트남의 비엣젯항공, 필리핀의 세부퍼시픽 그리고 중국계 LCC들이 인천·김해·청주·대구 노선에 잇달아 진입하며 초저가 요금을 앞세우고 있다.

이들 외항사는 한국보다 낮은 인건비·정비비·공항 이용료를 기반으로 국내 LCC보다도 낮은 운임을 제시하며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 중이다. 특히 인천~방콕, 인천~하노이, 인천~세부 노선은 이미 국내 LCC보다 외항사 점유율이 높아진 대표 구간으로 꼽힌다.

항공 자유화 협정(Open Sky) 체결 이후 정부가 외항사 운임이나 슬롯을 규제하기 어려운 만큼, 국내 LCC의 시장 방어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구조조정 가능성을 공식 언급했다. LCC 간 중복 노선 해소, 지방공항 슬롯 조정,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이후의 자회사 재편이 주요 검토 과제다. 특히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 대형 항공사(Full Service Carrier, FSC) 자회사 LCC의 향후 통합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를 단순한 재무 악화로 보지 않는다. 문제의 근본은 국내 LCC의 사업모델 자체의 한계다. 대부분 단거리 노선에 집중하고 동일한 기종·서비스·운임 전략을 쓰는 탓에 차별화가 불가능하고, 외항사 공세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대형 LCC만이 버티고, 중소형 항공사는 퇴출되거나 인수합병으로 흡수되는 '양극화 재편' 시나리오가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고민이 깊다. 항공은 고용·지역균형·국가 교통망이 얽힌 공공재적 산업이기에 퇴출은 정치적 부담을 수반한다. 다만 이대로 두면 출혈경쟁이 장기화돼 산업 경쟁력 자체가 무너진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중복 인프라 조정, 슬롯 재배분, 지역 거점 재설계 같은 정책적 개입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지금의 LCC 시장은 확장의 끝이 아니라 구조 전환의 시작점에 서 있다. 외항사 공세와 비용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필요한 건 단기 경쟁이 아니라 산업의 체질 개선이다. 정부의 시장 정비와 업계의 선택적 통합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LCC 산업은 '저가 항공'이 아닌 '저가 생존'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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