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위스키 전쟁'이 시작됐다. 편의점 혹은 하이볼 전문점에서, 이제는 집 안에서도 위스키가 흔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시장의 판도는 여전히 수입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다. '홈술' 트렌드 확산으로 위스키 소비가 급증했지만, 국산 브랜드는 여전히 존재감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수입 절대강자, 여전히 수입 위스키 중심
국내 위스키 시장은 하이볼 열풍에 힘입어 빠르게 확대된 측면이 있다. 실제로 미국 농무부(USDA)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위스키 수입액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약 17.1% 증가했다. 지난해 수입 물량은 약 2만7441톤으로 2020년 대비 약 연평균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급 과잉, 경기 둔화 및 소비 트렌드 변화 탓에 성장세가 다소 둔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 사진은 기사 본문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 픽사베이
시장 주도권은 여전히 페르노리카, 디아지오, 브라운포맨 등 글로벌 주류사들이 쥐고 있다. 반면 스타트업과 중소 증류소 중심으로 국산 위스키 브랜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인지도·유통망·원가 경쟁력 측면에서는 글로벌 브랜드에 비해 아직 열세다.
최근 몇 년간 위스키 소비 확장을 이끈 것은 단연 '하이볼'이다. '가볍게 한 잔' 문화가 확산하며 MZ세대를 중심으로 위스키 소비층이 빠르게 확대됐다. 특히 편의점 하이볼 세트 판매량이 전년 대비 70% 이상 늘었다는 보도와 함께 외식업계에서도 '하이볼 바'가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흐름 속에서 국내 브랜드가 주도 위치로 진입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감성 프리미엄' 이미지를 앞세워 새로운 세대의 분위기형 주류로 진화하고 있다.
◆대기업 '철수' vs 스타트업 '도전'
이 가운데 대기업의 위스키 사업 철수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칠성음료(005300)는 위스키 신사업을 위해 추진했던 제주 증류소 설립 계획을 지난 7월 이사회에서 전면 철회했다.
신세계 L&B 역시 작년 위스키 사업을 중단했다. 신세계F&B가 제주소주 부지에서 위스키 생산을 검토했지만 결국 무산됐고, 이후 제주소주 매각까지 이어졌다. 그룹 전반적으로 수익성 중심의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장기 투자가 필수인 위스키 사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린 셈이다.
반면 스타트업을 중심으로는 'K-위스키의 새 물결'이 일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 백봉산 자락에 자리한 '기원(Ki One)'은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로 2020년 설립 이후 단 5년 만에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았다.
기원은 한국산 효모와 스코틀랜드 효모를 3대 7 비율로 혼합하고, 일반 증류소보다 2~3배 긴 150시간 이상의 발효를 통해 복합적인 향과 풍미를 구현한다. 남양주의 여름고온·겨울한파라는 극단적 기온차는 숙성 속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1년 숙성 = 스코틀랜드 5년 숙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기원은 2023년 '호랑이·독수리·유니콘' 등 세 가지 시그니처 위스키를 출시했으며, 대표 제품인 유니콘은 글로벌 주류품평회에서 선두권에 오른 바 있다.
◆'롱텀 비즈니스'의 벽…종가세도 굴레
대기업 철수의 배경으로는 위스키 사업의 구조적 한계가 있다.
위스키는 맥아나 곡류를 증류한 뒤 오크통에서 최소 3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 숙성 기간이 길수록 품질은 높아지지만, 그만큼 자금이 묶인다. 이 때문에 투자 회수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롱텀 비즈니스(Long-term Business)'로 분류된다.
단기 실적을 중시하는 상장 대기업 입장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물가와 소비 위축 등 구조적 여건 변화도 영향을 미치며, 최근 위스키 수입액 및 물량도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국내 위스키 산업이 더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선 제도적 과제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국내 위스키에 적용되는 과세 방식 중에는 출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ad valorem tax) 구조가 지적된다. 원재료 품질을 높이거나 숙성 기간을 늘릴수록 세금이 함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현재 위스키의 주세율은 72%로, 출고가 1만원 기준 주세만 7200원이 붙는다. 여기에 교육세와 부가세가 더해지면 소비자 가격은 거의 두 배로 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종가세는 고품질 프리미엄 제품 생산을 어렵게 만든다"며 "비싼 제품일수록 세금이 늘어나 가격 경쟁력을 잃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국산 위스키 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내 증류소 다수가 연간 1~2만병 수준의 소규모 생산에 머물고 있으며, 원액 수입 의존도가 높다. 그럼에도 '한국형 테루아(terroir)'와 장인정신을 내세운 수제 위스키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점차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