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천년고도 경주가 세계 외교의 중심으로 변했다.

해가 저문 뒤 IMC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본 보문단지의 풍경. = 김주환 기자
3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공식 개막하면서 도시는 고요한 긴장감과 분주한 열기가 교차하는 거대한 무대가 됐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내일'이라는 주제 아래, 자유무역 질서 복원과 인공지능(AI) 협력 그리고 인구구조 변화 대응이 핵심 의제로 올랐다.
◆긴장과 기대가 교차한 경주의 아침
이른 아침, 경주 보문단지 초입은 이미 '통제된 환영의 무대'로 변해 있었다. 주요 진입로에는 경찰 병력이 빼곡히 배치돼 수신호를 보냈고, 취재 차량들은 지정된 차량용 비표 없이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른 아침, 보문단지 진입로 곳곳에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취재, 관계자 차량이 차례로 검문을 받고 있다. = 김주환 기자
"오늘은 차량이 평소보다 다섯 배는 많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항상 대비하고 있어요."
경찰관의 짧은 한마디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보문호수를 따라 이어진 도로에는 드론 탐지기와 폭발물 탐지견, 차단벽 차량이 줄지어 배치됐다. 그 옆으로 소방차와 구급차, 순찰차가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로 셔틀버스와 취재 지원 버스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APEC 2025 KOREA T1 서편환승주차장. = 김주환 기자

서편 환승주차장에 설치된 임시 비표 발급소 앞. 취재진들이 긴 줄을 이루며 신원 확인 절차를 밟고 있다. = 김주환 기자
정상회의 첫 세션이 열리는 오전 9시부터 10시30분까지는 보문호 일대가 전면 통제됐다. 경북경찰청은 1만명의 경비 인력을 투입해 주요 시설을 통제하고 첨단 장비를 총동원했다. 이날의 경주는 철저히 '세계 정상회의의 도시'로 기능했다.
◆IMC 가득 메운 취재진 열기
삼엄한 경호를 뚫고 도착한 경주엑스포 서편 주차장에도 긴장감이 흘렀다. 도로 신호 체계는 무의미했다. 취재진은 경찰의 손짓에 맞춰 발걸음을 옮겼다.

이른 아침, APEC 정상회의를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 김주환 기자
국제미디어센터(IMC)와 화백컨벤션센터(HICO) 주변에는 방송 중계 차량이 빽빽이 들어섰다. 각국 방송사 앵커들도 생중계에 나섰다. 이 자리에는 러시아 RT, 일본 TBS, 중국 CCTV 등 20여개국 취재진이 속보 경쟁을 벌이며 경주의 하루를 전 세계에 송출했다.

각국 취재진들이 쉬지 않고 보도를 이어가며 분주한 현장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 김주환 기자
일본 교도통신 기자 A씨는 "한국이 이번 APEC을 준비한 수준이 기대 이상이었다"라며 "경호와 취재 동선이 명확해 취재하기가 훨씬 수월했다"라고 말했다.
IMC 내부 공기는 전날과 확연히 달랐다. 440석 규모의 메인홀은 이미 만석이었다. 각국 기자들은 노트북 앞에서 원고를 다듬거나 화상 송출을 준비했다. 카메라 셔터음, 통역기의 음성, 기자들의 속삭임이 한데 섞여 '정보의 전장'을 방불케 했다.

전날보다 더욱 삼엄해진 보안 속에서 경찰과 경호 인력이 행사장 주변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 김주환 기자
◆세계의 이목, 다시 경주로
한편, 현장을 찾은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홍콩에서 온 B씨는 "오늘 차은우가 경주에 온다는 게 사실이냐"라며 "부산 근처에 K-POP 관련 명소가 있다면 추천해 달라"고 말했다.
국제무대에서도 K-콘텐츠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IMC 건너편 푸드스테이션. 다양한 음식이 준비돼 취재진들의 호응을 얻었다. = 김주환 기자
콘텐츠에 이어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이어졌다.
IMC 건너편 푸드스테이션에는 치킨, 떡볶이, 곰탕, 찰보리빵 등 한국의 대표 먹거리가 준비돼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곰탕 트럭 앞에 외신 기자들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짧은 휴식시간 동안에도 각국 기자들의 언어가 뒤섞였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경주는 이날 하루, 문화와 외교, 경제가 한데 어우러진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모했다. 회의장 밖에서는 한식과 K-콘텐츠가 대화의 주제가 됐고, 회의장 안에서는 자유무역과 AI 협력 등 글로벌 의제가 논의됐다.

IMC 건너편에 마련된 야외 식사 공간. 취재진들의 편의를 위해 간단한 식사와 음료가 제공됐다. = 김주환 기자
트럼프 대통령의 출국으로 미·중·한 3국 외교전의 전반전이 마무리되고, 시진핑 주석의 공식 일정이 본격화된 이날, 세계의 시선은 다시 경주로 모여들었다. 천년고도는 오늘, 다시 한번 '세계의 중심'으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