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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유커에게 통했다, 체류 소비' 신세계 시내면세점의 생존법

무비자 첫날 중국인 관광객 1500명 방문…K-푸드·K-뷰티 결합한 '머무는 면세'로 전환

이인영 기자 | liy@newsprime.co.kr | 2025.10.31 16:45:27
[프라임경제] 10월21일 서울 명동 한복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10층은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중국 단체 무비자 첫날 1500명이 몰렸다"는 말이 몸소 와닿는 순간이었다.

지난 21일 오후 3시경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10층 모습. = 이인영 기자


무엇보다 눈에 띈 건 '머무는 시간'이었다. 예전처럼 매대를 휙 둘러보고 사라지는 대신, 사진을 찍고 체험 부스를 거쳐 결제까지 이어지는 '체류형 소비'가 자리잡고 있었다.

신세계면세점에 따르면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9일까지 명동점 매출은 전주 대비 25% 증가했다. 카테고리별로는 화장품이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이어 주류·담배·식품, 패션, 럭셔리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선물 수요가 몰리는 주류·식품 카테고리가 호조를 보이며 매장 전체 트래픽을 끌어올렸다.

신세계면세점은 중국 국경절 연휴에 맞춰 빨간색 리유저블백에 '복(福)' 문구를 넣은 '포춘백' 마케팅을 펼쳤다. 자사 캐릭터 '폴앤바니(paul+bani)' 체험 부스와 사은품 증정, K뷰티·식품·패션 팝업스토어도 함께 운영하며 현장 반응을 이끌었다. 

회사 측은 이번 무비자 정책 시행으로 4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10~20% 증가하고, 2026년 상반기에는 20~30%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테이스트 오브 신세계' 전경. ⓒ 신세계면세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1층으로 올라가면 변화의 흐름이 더욱 뚜렷해진다. 올해 7월 중순 문을 연 '테이스트 오브 신세계(Taste of Shinsegae)'는 명동점 전체 전략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과거 'K-명품' 일변도였던 면세 매장은 이제 SNS 입소문 브랜드, 지역 기반 F&B, 건강식품, 캐릭터 굿즈가 어우러진 'K-컬처 복합존'으로 재편됐다.

특히 식품 카테고리는 지난해 상반기 대비 올해 상반기 40% 성장하며 신세계면세점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했다. 

북촌·성수·홍대 등 로컬 인기 브랜드를 엄선해 입점시킨 결과, 브릭샌드·만나당·그래인스쿠키 등 단독 입점 디저트 브랜드 판매량은 140%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건강기능식품과 홍삼 등도 약 2배 가까이 성장했다.

매장 구성은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기억과 체험'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북촌 디저트 시식 팝업, 한정 굿즈 패키지, BTS 전시존 등이 관광객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과거 면세점이 구매 목적지였다면, 이제는 '관광 통로'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다양한 브랜드로 테이스트 오브 신세계가 꾸며져 있다. = 이인영 기자


10층 뷰티층에서는 전략 전환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단독 입점한 '메디큐브' 팝업스토어는 체험형 디바이스 시연과 오프라인 전용 혜택을 결합해 '구매 확신'을 이끌어내는 구조다. 단순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제품 신뢰'와 '체험 설득'을 내세운 것이다.

이밖에 '본투스탠드아웃(BORNTOSTANDOUT)' 등 신세계면세점 단독 입점 브랜드도 눈길을 끈다. 한국발 럭셔리 향수로 파리, 런던 등 해외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이 브랜드는 구조적인 오브제와 강렬한 컬러 인테리어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백화점 1층을 연상케 하는 메이크업 시연 공간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춰 세우는 요소 중 하나다.

인근 '화해' 협업존에는 인공지능(AI) 리뷰 분석 시스템이 적용돼 제품 장단점을 투명하게 안내한다. 실제 1차 행사 당시 외국인 고객 매출은 전월 대비 56% 늘었다. 과거 면세점이 '정보 비대칭'을 기반으로 팔던 시대에서 '데이터 기반 신뢰 판매'로 전환하는 흐름이다.

이같은 변화는 고객 트래픽 구조 재편과도 맞닿아 있다. 신세계면세점은 기존 대규모 단체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기업 출장 △포상관광 △의료·뷰티 MICE 단체 등 객단가가 3~4배 높은 고부가 단체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올해 8월까지 누적 단체 입점객은 약 8만명으로, 연말까지 비즈니스 관광객 6만명을 포함해 중국인 단체 14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지난 21일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미디어파사드 웰컴보드 모습. = 이인영 기자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이들을 대상으로 명동점 미디어파사드 웰컴보드 등 VIP 환영 서비스를 제공해 '체류형 소비 경험'을 극대화하고 있다"며 "특히 명동점은 화장품·식품·잡화 비중이 확대되며 점진적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개별 관광객(FIT) 유치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항공사·호텔과의 제휴를 늘려 재방문을 유도하는 식이다. 2023년 말 캐세이퍼시픽 운영사인 캐세이그룹과 업무협약을 시작으로, 중국남방항공·메리어트 본보이 등으로 제휴를 확대했다. 멤버십 혜택과 쇼핑지원금, 전용 프로모션 등을 통해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SNS 인지도가 높은 K뷰티 신흥 브랜드를 선제적으로 발굴·입점시키며 MD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제 면세점의 경쟁력은 '얼마나 싸게 팔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고 무엇을 경험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다만 이 모델이 업계 전체의 정답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K-컬처 허브 전략은 명동이라는 특수 입지의 수혜를 보고 있으며, 관광 수요가 꺾일 경우 트래픽 둔화 가능성도 있다. 콘텐츠·마케팅 투입 대비 회수 구조 안정성도 검증 단계다. 무엇보다 임대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은 여전히 상수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신세계면세점의 방향은 분명하다. '구매 목적지'에서 '머무는 공간'으로, '할인 경쟁'에서 '경험 가치'로의 전환이다. 이 변화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지, '지속 가능한 관광 플랫폼'으로 정착할지는 향후 수요 흐름이 결정할 것이다. 앞으로 시내면세점의 생존 조건은 가격이 아닌 '머무는 가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한편 전날 신세계디에프는 이사회 결정을 통해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DF2(주류·담배) 권역 영업을 정지한다고 공시했다. 이는 신라면세점의 DF1권역 철수에 이어 또 한 번의 대형 면세점 철수 사례다.

신세계면세점은 2023년 객단가 연동형 임대료 계약을 맺었으나, 소비 패턴 변화와 구매력 약화로 적자가 누적됐다. 임대료 조정을 지속 요청했지만 인천공항공사는 법원 강제조정안에도 불구하고 조정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결국 소송·유지·철수 사이에서 고심 끝에 사업권 반납을 결정했다.

회사 관계자는 "시내면세점인 명동점과 DF4(패션·잡화)에 역량을 집중해 면세점의 체질 개선을 도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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