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손님은 좀 줄었지만, 다들 분위기가 좋아요. 불편해도 나라 큰일이 잘되면 좋죠."
경주역에서 기념품샵을 운영하는 A씨의 말처럼,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시는 활기와 긴장으로 가득했다.
천년고도 경주는 이미 'APEC 2025 KOREA'의 상징색으로 물들었다. 역과 도심, 행사장 곳곳에서는 세계인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었다.
본지는 APEC 정상회의를 사흘 앞둔 경주가 어떤 모습으로 세계를 맞이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광명역에서 출발해 경주역-엑스포문화센터-화백컨벤션센터(HICO)-국제미디어센터(IMC)로 이어지는 도시의 흐름을 따라 이동했다.

한복 차림의 안내 요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며 기념 촬영을 돕고 있다. = 김주환 기자
◆경주역, 환영과 경계가 공존하다
이른 아침, 광명역을 출발한 열차가 2시간여 만에 경주역에 도착하자 도시의 공기는 달라져 있었다. 역 광장 한복판에는 'APEC 2025 KOREA - 경주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주변에는 경찰과 폭발물처리반(EOD) 인력이 배치돼 있었고, 순찰차와 사이카도 규칙적으로 이동하며 긴장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역 내부로 들어서면 'WELCOME TO GYEONGJU'라는 문구가 새겨진 LED 기둥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화면에는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 등 경주의 대표 명소가 연이어 등장했다.

대형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안내 요원에게 길을 묻는 등 세계 각국의 손님들로 활기가 넘쳤다. = 김주환 기자
한복을 입은 안내 요원들이 외국인 방문객을 안내하고, 갓을 쓴 직원들이 기념 에코백을 나눠주는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장면이 펼쳐졌다. 또 외국인 전용 호텔 셔틀 안내 부스도 따로 설치돼 도시 전역이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도로 위에서 본 경주의 질서
경주역 앞 셔틀버스 정류장에서도 사람들은 질서정연했다. 외국인 관광객과 취재진이 뒤섞여 있었지만, 안내요원의 지시에 따라 차례대로 줄을 섰고, 셔틀 간격이 짧아 대기 시간도 길지 않았다.
본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차량을 운전해 이동했다. 경주역을 벗어나 보문단지로 향하는 길목 곳곳에서는 교통 통제가 이뤄지고 있었지만, 시민과 차량 모두 비교적 침착하게 움직였다. 신호마다 교통경찰이 배치돼 있었고, 순찰차와 사이카가 일정한 간격으로 도로를 순회했다.

경주 전역에는 순찰차의 경광등과 경찰의 무전음이 끊이지 않았다. = 김주환 기자
이동 중에는 APEC 준비기획단과 경주시가 마련한 환승 주차장도 눈에 띄었다. 안내 표지판이 잘 정비돼 있었고, 현장 안내요원들이 외국인과 취재 차량의 동선을 구분해 관리하고 있었다. 주차 구역과 셔틀 연결 동선이 깔끔하게 분리돼 있어, 대규모 방문객을 고려한 세심한 준비가 돋보였다.
그 사이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심은 고요했다. 주요 교차로와 상가 앞에는 경비 인력이 서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APEC 2025 KOREA' 안내 표지가 행사장 방향을 알리고 있었다. 통제와 이동이 동시에 진행되는 와중에도 도시 전체가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였다.

비표를 받기 위해 몰린 각국 기자들이 로비를 가득 메웠다. = 김주환 기자
기념품샵 운영자 A씨는 "며칠째 경찰이 많아지고 도로가 막히긴 해도, 외국인 손님이 찾아와 물건을 고르는 모습이 새롭다"라며 "덕분에 도시가 활기를 되찾은 느낌이고, 이번 행사가 끝나면 경주가 더 알려질 것 같다"라고 전했다.
보문단지행 셔틀 정류장에서도 질서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한 시민은 "사이카가 계속 돌아다니니까 조금 긴장된다"라며 "하지만 오히려 도시가 정돈된 느낌이 들었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준비하는 분위기라 괜히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엑스포문화센터, 외신 기자들로 붐빈 등록처
비표 수령을 위해 도착한 경주엑스포문화센터 1층은 각국 기자들로 붐볐다. 로비 한편에서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뒤섞여 들려왔다. 경찰 인력도 출입구마다 배치돼 있었다. 내부에서는 포럼과 세미나가 동시에 진행돼 취재 열기가 더해졌다.
엑스포에서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HICO로 향하는 길목에는 2~3m 높이의 'APEC 2025 KOREA' 펜스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차단된 채 입구에는 금속탐지기와 신분 확인 검색대가 설치됐다.
행사장 인근 도로는 이미 부분 통제 중이었고, 차량 검문 장비와 안내 표지판이 줄지어 세워졌다. 순찰차와 경호 인력이 회전하듯 돌며 상황을 점검하는 모습도 지속해서 목격됐다.

경주 화백컨벤션센터 뒤편에 위치한 국제미디어센터(IMC) = 김주환 기자
HICO 뒤편에 위치한 국제미디어센터(IMC) 입구에서는 공항 검색대 수준의 보안 절차가 이어졌다. 기자들은 가방과 장비를 일일이 개봉해 검사를 받고, 신분증과 비표 확인 절차를 마친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내부는 1층에 브리핑룸과 취재 지원 데스크, 2층에는 방송 중계실과 편집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수백 명의 기자들이 모니터를 주시하며 각국 정상단의 동선을 체크하느라 분주했다.

국제미디어센터(IMC) 내부, 분주한 취재진의 모습. = 김주환 기자
한편, 이날 경주 시내에서는 APEC CEO 서밋의 일부 세션이 시작되며 정상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행사장에는 'Bridge · Business · Beyond'라는 올해 포럼 주제가 새겨진 현수막이 내걸렸고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맷 가먼 AWS CEO △호아킨 두아토 존슨앤드존슨 CEO 등이 참석해 AI 혁신과 공급망 안정, 탄소중립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행사장 한쪽에서는 'Future Tech Showcase' 부스가 운영돼 △로봇 △모빌리티 △디지털 헬스케어 등 한국 스타트업들의 기술이 소개됐다. 외국 참가자들은 한식 디저트와 전통 다과를 즐기며 교류했고, 경주 시민들도 외국인 방문객에게 길을 안내하며 자발적으로 ‘작은 외교관’ 역할을 했다.
경주는 지금 환영과 경계, 질서와 긴장이 공존하는 도시다. 시민들은 불편함 속에서도 묵묵히 협조하며 세계 외교의 무대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었다. 보문호의 물결처럼 잔잔하지만 단단한 이 도시의 질서는 오는 31일 세계 정상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