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때 '모빌리티의 미래'로 불리며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전기차 산업이 최근 성장세에 급제동이 걸렸다. 글로벌 판매량이 예상보다 부진한 상황 속 △주요국의 보조금 축소 △충전 인프라 부족 △높은 차량 가격 등이 수요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배터리 화재 사고가 잇따르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심화하고 있다. 업계는 이러한 현상을 '전기차 포비아(EV-phobia)'로 규정한다.
전기차는 배터리로 구동된다. 이 배터리는 양극(+), 음극(-), 전해질, 그리고 양극과 음극의 직접 접촉을 막는 얇은 분리막(세퍼레이터)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이 분리막이 열에 취약하거나 손상될 경우 내부 쇼트가 발생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에이에스이티(ASET, 대표 박석정)는 이러한 구조적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완전한 전고체 배터리보다는, 당장 적용 가능한 현실적 기술에 집중했다. 그 해법은 액체 전해질을 부분적으로 고체로 대체한 '복합계 전고체 전해질막'이다.
박 대표는 "초기에는 순수 전고체를 목표로 삼았지만, 현실의 벽을 체감했다"며 "지금은 시장이 요구하는 실용적인 기술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ASET는 이 복합 전해질막을 기존 분리막 대체 소재로 개발했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용되는 액체 전해질의 약 30%를 고체 물질로 치환해 화재 가능성을 낮췄으며, 고온 환경에서도 안전한 배터리 구조를 구현했다. 해당 소재는 분리막과 전해질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다층 구조를 갖췄다.
핵심 소재는 LLZO(Lithium Lanthanum Zirconium Oxide)이다. 여기에 고분자 물질을 더해 유연성을 확보했다. 다층 구조 설계를 통해 고온에서도 분해되지 않으며, 배터리 폭발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덴드라이트 침투에 대한 내구성도 향상됐다.
ASET는 창업 이후 짧은 시간 안에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 지난 2023년 평택시 창업경진대회와 제8회 G밸리 창업경진대회에서 각각 대상을 수상했다. 2024년에는 산업단지 오픈이노베이션 '최우수상'과 도전 K-스타트업 왕중왕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우수상)을 수상했다.

제품 양산을 앞두고 의견을 나누는 에이에스이티 연구진들 = 김우람 기자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작년 하반기에는 △키움인베스트먼트 △어센도벤처스 △퀀텀벤처스코리아 △탭엔젤파트너스 △신용보증기금 5개 기관으로부터 총 41억원 규모의 Pre-A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기술력과 시장성을 모두 입증하며 빠르게 성장 궤도에 진입한 셈이다.
ASET의 전략은 명확하다. 연구실에 머무는 기술이 아니라, 생산라인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든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우리는 믹싱, 코팅, 라미네이션, 셀 조립 등 기존 배터리 생산 공정에 그대로 적용 가능한 구조로 소재를 설계했다"며 "별도 설비 없이도 바로 사용할 수 있어야 시장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장형 기술’은 고객사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현재 ASET는 국내외 배터리 제조사들과 OEM 테스트 및 PoC(개념검증)를 진행 중이다. 특허 전략에 따라 제품 공개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글로벌 특허 출원은 올해 말까지 완료하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샘플링과 공동개발에 돌입할 계획이다.
ASET는 2026년부터 복합계 전고체 전해질막 양산을 시작하고, 2027년에는 음극 시드층 양산에도 나선다. 같은해 하반기에는 이 두 부품을 적용한 반전고체전지를 OEM 방식으로 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 배터리는 기존 흑연 음극 대비 에너지 밀도가 40~50% 높고, 화재 발생 위험이 없다. 또 고온 환경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한다. ESS(에너지저장장치)는 물론 전기차,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드론, 국방·항공 등 고신뢰성 시장에도 적용 가능하다.

직접 개발한 전고체전지 분리막을 들어 보이는 박석정 에이에스이티 대표 = 김우람 기자
박석정 대표는 LG화학 출신의 중대형 배터리 1세대 개발자다. 그는 개발 현장에서 수년간 배터리 화재 문제를 직접 목격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23년 ASET를 창업했다.
박 대표는 "현재 배터리는 구조적으로 폭발 가능성을 안고 있다"며 "BMS(배터리관리시스템)나 팩 수준에서의 제어는 한계가 있고, 결국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SET의 복합 전해질막은 2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하며, 외부 충격에도 발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 박 대표는 "실험실에서만 통용되는 기술이 아니라, 지금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쓰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재차 밝혔다.
그는 전고체 배터리의 완전한 상용화는 2030년 이후로 예상한다.그전까지는 고체와 액체가 혼합된 반고체 방식이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틈새를 ASET가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ASET는 오는 2027년까지 분리막 대체용 복합 전해질막의 양산을 완료하고, 이후 이 소재를 적용한 차세대 배터리를 OEM 방식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5년 내에는 전고체전지 핵심소재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화재 없는 배터리, 시장에서 즉시 사용 가능한 기술, 그리고 전고체 시대를 앞당기는 현실적 접근.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