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금융위기 이후 M&A시장이 개방된 이래 미국식 인수합병 관련 계약이 널리 도입되고, 지식재산권 관련 법령 등에서도 영미법의 내용이 도입되고 국제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국내에서도 영미법상 손해전보 조항(Indemnity Clause)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손해전보 조항이란 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미리 약정한 특정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로 인하여 상대방 당사자 또는 제3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거나 비용을 보상하는 약정을 의미한다.
손해전보 조항은 당사자간에 손해나 비용을 발생시킬 일정한 사건에 대하여 위험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여부(Risk allocation)에 관한 문제이다.
반면 우리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은 귀책사유에 따라 손해를 분배하는 제도, 즉 과실책임주의를 취하고 있어 차이가 있다.
애당초 영미법상 채무불이행은 채무자의 귀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불법행위의 성립요건으로서 과실(Negligence)이 요구될 뿐이다.
국내법을 준거법으로 하여 이러한 손해전보 조항을 규정하는 경우 이는 책임에 따라 손해를 분배하는 원칙을 수정하는 것으로서 우리 법체계 내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손해담보계약으로 볼 수 있다.
손해전보 조항은 귀책사유를 중심으로 한 손해배상책임 성립범위를 일부 완화하는 성격이 있으므로 이러한 내용을 규정하면 어느 당사자에게 무조건 유리한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나 이는 오해이다.
손해전보 조항에서 규정된 사건이 발생하여 이와 관련된 분쟁이 일어나더라도 곧바로 어느 당사자에게 무조건적인 배상 또는 보상책임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고, 결국 귀책사유(고의 또는 과실) 또는 선의·악의와 같은 기존 법체계 내 요소들이 개입하여 개별 사건에서 구체적인 책임범위가 따져지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 대법원은 손해담보계약과 관련해 담보권자에게 손해 발생에 악의나 중과실이 있음에도 손해담보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합의는 신의칙에 반하여 무효라는 입장이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M&A계약에서 규정된 손해전보 조항에 대하여도 당사자 일방에게 손해전보 발생 사유(주로 진술과 보장의 위반)에 관하여 악의가 있는 경우 손해전보를 구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던 것이다.
손해담보계약이 계약에 규정된 사유의 발생과 그에 대한 이행이므로 그 과정이 명확할 것이라는 통상의 인식과 달리, 실무에서 발생하는 사례는 각 당사자간의 귀책과 그로 인해 발생한 위험이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히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다수이다.
신의칙을 고려하는 법원의 기본적인 태도 역시 계약의 문구 이외에도 책임범위 확정에 구체적인 타당성을 기하겠다는 것이므로, 손해전보 조항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국내법의 체계를 함께 고려한 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강송욱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