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불거진 이동통신 3사의 '번호이동 담합 의혹'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입장이 갈리는 모양새다.
이동통신 3사는 "방통위의 행정지도를 따랐을 뿐"이라며 당혹감을 드러낸 반면, 공정위는 판매장려금이 아닌 번호이동 가입자 수를 서로 조율하고 경쟁을 회피하기로 합의한 행위 자체가 담합이라는 입장이다.

위 사진은 기사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 픽사베이
19일 업계에 따르면 이동통신 3사는 타사로부터 가입자를 빼앗아 오는 '번호이동' 경쟁을 피하려 7년간 담합한 혐의로 지난 12일 공정위로부터 총 114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과징금 규모는 SK텔레콤(017670)이 426억62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KT(030200)와 LG유플러스(032640)가 각각 330억2900만원, 383억3400만원을 부과받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통 3사는 2014년 12월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시행과 과도한 판매장려금 지급에 대한 방통위의 제재를 받은 후 자율규제의 일환으로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와 시장상황반을 운영했다.
공정위는 이같은 상황반이 담합의 무대가 됐다고 파악했다. 이통 3사 직원과 KAIT 직원들 간 상호 제보와 시장 모니터링으로 특정 회사의 과도한 판매 장려금 지급이 확인되면 장려금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담합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정위는 2015년 1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번호이동 가입자가 특정 사업자에 편중되지 않도록 조정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실행했다고 봤다. 이들은 매일 상황반에서 각 사의 번호이동 상황, 판매장려금 수준 등에 대해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를 들어 한 이통사의 번호이동이 순감할 경우 다른 사업자들이 판매장려금 인하를 합의하거나 해당 사업자가 판매장려금을 높이는 식으로 담합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통 3사의 일평균 번호이동 총 건수는 2014년 2만8872건이었으나 담합이 시작된 이후인 2016년에는 약 1만5000건으로 절반 가까이 급감했고, 2022년에는 약7000건 정도로 떨어졌다.
이에 통신 3사는 단통법 준수를 위해 방통위 지도를 따랐을 뿐, 공정위의 이번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3사 모두 입장문을 통해 "타사와 담합한 사실이 없다"며 공정위 의결서를 수령한 이후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특히 LG유플러스 측은 "당사는 방통위의 규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시행 중이던 단통법에 의거해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면서 "이번에는 단통법을 지키고 방통위의 규제를 따랐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담합으로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듯 규제기관 간의 규제 충돌로 불합리한 제재 처분을 받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서울 시내 한 휴대폰 매장 모습. ⓒ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같은 행위에 대한 정부 부처 간 불협화음이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방통위의 행정지도와 공정위의 경쟁법 집행 사이에 혼선과 충돌이 발생했다는 게 그 배경이다.
방통위는 단말기 시장 안정화를 위해 판매장려금 상한선을 설정하고 과열 경쟁을 막으려 했지만,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통신사들이 번호이동 가입자를 서로 나눠 갖기로 합의한 점까지 문제삼았다.
실제로 이통 3사는 이 상황반을 운영하면서 단통법 미준수로 20여차례 1500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징수당했으나, 이번엔 공정위가 상황반 자체를 담합의 무대로 지목한 것이다.
앞서 주무부처인 방통위는 판매장려금 경쟁으로 불법보조금이 성행하자 2014년 단통법 시행과 함께 판매장려금 상한선을 30만원으로 정하도록 행정 지도에 나섰다. 이와 함께 시장상황반을 운영, 통신사별 판매장려금 현황을 공유하고 방통위 가이드라인에 맞춰 자율규제를 진행했다. 이같이 집계된 조정 현황은 방통위에도 공유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이번 공정위의 처분과 관련해 방통위는 실무 협의에 참여하는 동시에 담합이 아니라는 의견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과징금 처분을 두고 주무부처와 갈등을 빚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2년 해운사들의 한~동남아 항로 운임 담합 사건을 두고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와 입장차를 나타냈으며, 최근에는 국내 4대 은행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담합 의혹에 대해 금융위원회와의 갈등 조짐도 보이고 있다.
더욱이 공정위 측은 이번 담합 관련 '방통위와 정면 충돌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즉각 설명자료를 통해 반박에 나선 만큼, 부처 간 미묘한 '힘겨루기'가 감지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다만 공정위 측은 지난 13일 설명자료를 통해 "공정위는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민생품목 등과 관련하여 담합 발생 가능성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제보, 신고 등을 통해 구체적 담합 혐의가 포착되는 경우 조사에 착수하고 있다"며 "이번 이통 3사 담합 건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혐의를 발견하고 조사에 착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처분과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사실상 정부 기관 간의 불협화음을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법원의 판단으로 시시비비가 가려질 전망이다. 이통 3사는 이미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공정위 역시 충분한 증거와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과징금 규모가 예상보다 줄어들면서 규제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초 업계에서는 과징금 규모가 최대 5조5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하나증권은 "올해 3~5월 국내 통신사 주가 전망은 밝다"며 "과징금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크게 낮게 나타냄에 따라 주가 반등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신한증권도 "이통업계의 가장 큰 리스크였던 공정위 과징금이 예상보다 적은 수준에서 마무리되면서 배당주·방어주로서의 투자 매력이 더욱 높아졌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