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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먹튀 논란' MBK, 고려아연도 마찬가지?

"인위적 구조조정 없다" 약속 무색…미국 정계서도 '적대적 M&A 우려' 확산

조택영 기자 | cty@newsprime.co.kr | 2025.03.07 14:01:46
[프라임경제] '홈플러스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지 10년 만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해 '먹튀' 논란이 일고 있어서다. 이에 업계에서는 고려아연(010130)에 대한 적대적 M&A(인수합병)를 강행하고 있는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인수할 경우 '제2의 홈플러스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중 하나로 꼽히는 MBK는 지난 2015년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캐나다공무원연금(PSP Investments) △테마섹(Temasek) 등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 7조2000억원에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당시 MBK가 인수전에서 시장의 평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계약을 따내 고가 인수 논란이 인 바 있다. 특히 인수 금액 중 많은 부분을 외부에서 조달했다는 점에서 향후 MBK가 홈플러스를 분할 매각하거나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것이란 우려가 잇따랐다. 그러나 김광일 MBK 부회장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문제는 이런 약속이 무색해졌다는 점이다. 홈플러스는 인수 차입금 이자 등의 부담이 커지자, 알짜 자산을 하나둘씩 팔기 시작했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영업이 종료됐거나 종료를 앞둔 점포는 무려 25개에 달한다. 이 중 완전히 폐업한 점포는 14개다. 이에 따라 홈플러스의 기업 경쟁력은 갈수록 악화했다.

여기에 더해 MBK가 자구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회생 절차에만 기댄 모습을 보여서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의 실질적인 성장을 추구하기보단, 인수 차입금을 빨리 갚고 매각하는 '엑시트'에만 혈안 돼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대주주인 MBK가 선제적으로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것부터 비정상적이라며 회생을 책임지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업 사냥꾼 사모펀드 MBK에 의해 홈플러스가 산산조각이 날 위기에 처했다"며 "MBK는 홈플러스를 죽이는 그 어떤 구조조정의 시도도 해선 안 되며, 최고 부자인 김병주 MBK 회장은 양심이 있으면 자산을 출원해서라도 책임을 다하라"고 꼬집었다.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앞. ⓒ 연합뉴스


이런 MBK의 행보를 두고 업계에서는 향후 고려아연도 상황이 마찬가지일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MBK가 기업 경영 실패에도 다음 투자처를 찾는 데 몰두하고 있고,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를 강행하는 모습을 보여서다.

앞서 고려아연 노조는 "(MBK가) 인력 감축과 투자 축소 후 회사의 단기적 가치만 높여 외국자본에 매각할 것이다"라며 "노동자의 삶의 터전과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적대적 공개매수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홈플러스 사태로 업계에서도 고려아연 노조와 공통된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제2의 홈플러스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고려아연은 MBK가 투자금 회수 극대화를 위한 분할 매각 등을 진행해 회사 경쟁력을 훼손시킬 것이라 우려했으나, MBK는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해 왔다"며 "많은 분이 우려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인식을 못 하는 모습이었는데 이번 홈플러스 사태로 MBK의 한계와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고, 고려아연의 주장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MBK의 고려아연 적대적 M&A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중국 투자를 받은 MBK가 세계 최대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을 인수하면 광물·자원 분야에서 중국의 통제력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정부와 의회가 협력해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공화당 소속 마리아네트 밀러-믹스(Marianette Miller-Meeks)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상무부의 다이앤 패럴(Diane Farrell) 국제무역 담당 차관보 앞으로 서한을 보내 "최근 중국과 연결된 기업들이 MBK를 통해 세계 최대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의 지배권을 확보하려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비철금속 제련 산업은 중국의 영향력이 큰 분야로, 고려아연은 중국이 수출 통제를 한 핵심 광물의 공급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려아연은 중국이 수출 통제한 △안티모니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등을 모두 생산한다. 이 가운데 △안티모니 △비스무트 △텔루륨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한다. 구체적으로 방위·항공우주 사업의 핵심 소재인 안티모니를 연간 약 3500톤 생산해 국내 수요 전부를 충당한다. 또 전자부품과 반도체 분야에 쓰이는 인듐은 연간 90톤 이상 생산해 전 세계 생산량의 8.5%를 차지한다. 이와 함께 전 세계 비스무트 생산량의 약 6%, 텔루륨 생산량의 약 17.5%를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핵심 광물을 다수 생산하는 고려아연의 경영권이 중국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MBK에 넘어갈 경우, 탈중국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게 밀러-믹스 의원을 포함한 미국 정계의 판단이다. 현재 MBK는 펀드 6호를 통해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하고 있는데, 펀드 6호 출자자에는 중국 외환투자공사(CIC)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밀러-믹스 의원은 "MBK의 고려아연 적대적 M&A가 성공하면 공급망 문제를 악화시키고 기술 유출 위험을 증가시키며, 미국 산업과 방위 역량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미국은 우리 경제와 방위를 지탱하는 공급망이 적대 세력에 장악되지 않도록 단호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수의 미국 유력 정치인도 밀러-믹스 의원과 동일한 목소리를 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공화당 소속 잭 넌(Zach Nunn)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지난달 패럴 상무부 차관보에게 서한을 보내며 "중국이 MBK를 통해 고려아연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면 핵심 광물 공급망에서 중국 통제력이 더 강화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공화당 원로 인사인 빈 웨버(Vin Weber)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제프리 파이어트(Geoffrey Pyatt) 국무부 에너지자원 차관보에게 서한을 보내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하면 중국 기업들로 광범위한 기술 이전을 초래할 뿐 아니라, 중국에서 탈피한 핵심 광물 공급망을 보호하려는 한·미 양국의 공동 노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평가받는 로버트 오브라이언(Robert O’Brien)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에릭 스왈웰(Eric Swalwell) 미국 의회 핵심 광물 협의체 공동의장 겸 연방 하원의원 등도 탈중국 공급망 구축에서 고려아연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MBK의 적대적 M&A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고려아연 퇴직 임원 모임 '고수회' 역시 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고수회가 MBK 연합과 현 경영진 간 경영권 분쟁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수회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MBK가 이미 실패한 제련 기업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을 집어삼키려는 검은 야욕을 더는 지켜볼 수 없어 목소리를 낸다"며 "최근 홈플러스 사태에서 보여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와 근로자·협력사·소비자·채권단에게 피해를 떠넘기는 행태를 바라보며 고려아연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MBK는 50년 넘게 피와 땀으로 일군 고려아연의 산증인들과 역사에 최소한의 경의를 표한 적이 있느냐"며 "오직 5년 뒤, 10년 뒤에 어떻게 하면 비싸게 팔아 차익을 남길 것인지에만 골몰하는 자들이 어떻게 향후 50년과 100년의 여정을 이끌 수 있겠느냐"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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