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국내 정유업계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본업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어서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비정유 사업인 윤활유로 눈을 돌리고 있다. 주력 사업인 정유 부문을 뛰어넘는 수익을 거둔 데다, 시장 전망도 밝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GS칼텍스)의 작년 영업이익은 1조5821억원으로 전년 대비 71.3%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2~3분기 석유 제품 수요 감소, 정제마진 하락 등을 겪어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작년 SK이노베이션(096770)은 영업이익 3155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83.4% 급감했다. 에쓰오일(010950)은 4606억원으로 66% 감소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2580억원, GS칼텍스는 5480억원을 기록하며 각각 58.2%, 67.5% 줄었다.
4분기엔 모두 정제마진 개선에 힘입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정제마진 등락에 따라 실적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만큼, 정유업계는 돌파구 찾기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정유사들은 윤활유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윤활유는 정유업계의 대표적인 비정유 사업으로, 그동안 본업 대신 효자 노릇을 해왔다는 평가다.

에쓰오일 직원들이 서울 마곡 TS&D 센터에서 액침냉각유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 에쓰오일
작년만 보더라도 SK이노베이션은 △석유개발(5734억원) △석유(4611억원) △화학(1253억원) △배터리(-1조1270억원) 등 여러 사업 중 윤활유가 6867억원으로 가장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본업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정유사들은 휘발유·경유 등을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인 잔사유를 재처리해 윤활기유를 생산하는데, 윤활기유에 여러 첨가제를 넣으면 윤활유가 된다. 이렇게 제조된 윤활유는 마찰과 마모를 줄이고 과열도 방지해 기계의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내연기관·전기차용 등 여러 윤활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액침냉각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액침냉각은 전자 장비를 비전도성 냉각액에 완전히 담가 열을 식히는 기술이다. 기존 공랭 방식에 비해 에너지 효율성이 뛰어나고, 기기 손상 위험도 낮은 것이 특징이다.
시장 전망도 밝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액침냉각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5000억원에서 2040년 약 42조원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유업계는 전용 제품을 내놓으며 기술 경쟁에 나서는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 SK엔무브를 통해 지난 2023년 기술 검증에 성공했고, 작년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선박용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술을 개발해 실증에 나섰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고인화점 액침냉각유 '에쓰오일 e-쿨링 솔루션'을 출시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개시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작년 액침냉각 전용 윤활유 '엑스티어 E-쿨링 플루이드'가 글로벌 액침냉각 시스템 기업 GRC로부터 일렉트로세이프 프로그램 인증을 획득했고, GS칼텍스는 지난 2023년 액침냉각유 '킥스 이머젼 플루이드 S' 출시를 알렸다.
업계 관계자는 "윤활유는 정유·화학에 비해 안정적인 시장 등이 구축돼 있어 계속 커지고 있다"며 "다양하게 확장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업이라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