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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경영 합리화' 실효성 있을까

정치권 강경책에 은행들 읍소중,여론은 '냉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8.10.22 12:55:21

[프라임경제] 은행들의 외환채무에 대한 지급보증을 골자로 한 19일 금융위기 종합대책이 발표된 가운데, 은행들에 대한 패널티 적용도 가시화되고 있다.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금융 위기 때마다 혈세지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압박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해외차입금 보증이 잘못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사용될 정부자금은 130조원대(추산), 따라서 투입이 그만큼 신중하고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은행들에 유동성공급을 하기로 나섰으나 그에 상응하는 자구노력을 요구하기로 했다. 사진=뉴스파트너>  
◆정부와 정치권, "돈 주는 대신 고삐 죌 것" 이구동성

이미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선진당 3당의 정책위원장 회동(21일)에서는 투입 자금 회수를 철저히 할 것에 대해 공감대를 표했다. ▲정부 보증동의안은 국내외 금융시장 상황을 감안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심의, 처리  ▲특히 우량 중소기업 등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서 ▲ 정부는 상기 보증에 대한 구상권과 관련하여 민법과 기획재정부령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을 다짐했다.

'눈먼 돈'처럼 방치하지 않고 채권자 노릇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선언인 셈이다.

이에 더해 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정부 개입을 불러온 데 대한 패널티도 속속 언급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21일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고액 연봉을 받아서야 되느냐"고 질책하고 나선 가운데, 임승태 금융위 사무처장이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려면 일정수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은행의 자구노력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의 지급보증 등 조치가 시아무 조건 없는 시혜가 아니라는 뜻이다.

임 처장은 "금융감독원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겠다. 은행장을 포함한 임원들이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고 연봉을 삭감할 필요가 있으며 은행원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할 것을 기대한다"고 구체적인 발언을 내놨다.

자구책을 충실히 이행하는 은행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는 당근도 제시됐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22일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정부 은행 채무 지급보증과 관련한 모럴해저드 방지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여러가지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들 당혹감 "임원 임금 삭감,직원 동결"…결의대회까지

은행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연봉 조정에 들어갔다. 22일 오전 시중 18개 은행장들이 모여 결의대회를 열고 자구 결의를 다졌다. 은행장들은 명동 은행회관에 모여, 고통분담 차원에서 우선 은행장을 포함한 임원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편, 직원 임금은 동결을 유도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국민들 반감 커, 진정성 있는 자구책 내놔야 공감할 듯

하지만 이러한 은행들의 자구노력과 정부 및 정치권의 패널티 부과에 대해 여론은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있다. 이미 자금 동원을 통해 은행을 살려낸 전례가 있는 국민들이 그간 은행의 행태에 대해 마뜩찮은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11년 전 외환위기 때 시중은행들은 45조원의 공적자금으로 회생하면서 퇴출, 구조조정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은행들의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는 10여년새 다시 '요요 현상'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선 지난 번 '9월 위기론'을 낳은 외환 유동성 경색 논란 등을 보면 국내 금융기관들이 이화 자산과 부채 관리 시스템에서 기대치에 미달해 시장과 외국 투자자, 외신들의 의혹을 샀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22일 한국은행 이성태 총재가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려면 1차적으로 금융기관들의 철저한 외화 자산과 부채 관리 시스템이 확보돼야 한다"고 에둘러 이야기한 것도 그간 미스매칭이나 단기 외화 유동성 부족 사태 등의 문제를 낳을 방만운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은행들은 그간 소액 예금에 대한 0% 이자 제공, ATM기에서의 높은 수수료 논쟁 등으로 불만을 사 왔다. 수익성 지향도 좋지만, 공적자금으로 살려놓은 은행이 일반시민들을 상대할 때에는 '장사 논리'만 내세우는 것이 옳으냐는 불만을 끊임없이 낳아 온 셈이다. 서민들에게 여전히 높은, 혹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높아진 문턱도 비판 대상이 돼 왔다.

   
  <이번 은행지원 방침에 대해 "고액연봉자들에게 왜 또 혈세를 지원해야 하는데?"라는 냉소가 높다.>  
아울러 은행원들의 높은 연봉은 외환위기를 한 고비 넘기며 슬그머니 원위치했다. "위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만 결국 좋은 셈이 됐다"는 비판이 높다. 네티즌들은 주요 은행들의 임원 급여는 평균 10억원에 육박한다거나, 주요 은행들의 초봉이 4000만원대라는 등 비판 자료를 제시하면서 '방만 경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노조가 22일 직원 임금 동결 결의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는 소문은 일반시민들의 불만에 불을 당겼다. 단순히 '나보다 더 버는 사람에 대한 질투'에서 '위기 상황 속에서 자기 잇속만 챙기는 집단에 대한 뭇매'로 비판에 공공성이 부여되면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그간 은행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에서는 인색한 반면에 정규직끼리 파티를 벌여왔다는 지적도 높다. 민주당 신학용 의원실이 1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31.6%(국민은행)에서 16.7%(신한은행)에 이르기까지 높은 비정규직 고용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임원을 제외)과 비정규직간 연봉 차이가 큰 폭으로 벌어지고 있다(외환은행의 경우 양집단간 임금평균 차가 5020만원인 것으로 나타나 은행 중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우리은행 등에서 비정규직 해소 대책이 강구된 바 있으나 아직 일반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결국 미국 구제금융법안이 처음 부결됐을 때 미국 시민들 사이에 돌아다닌 "왜 탐욕스런 은행원들을 살리는 데 내 돈을 써야 하느냐?"라는 비판이 우리 은행들의 구제와 금융유동성 공급 국면에서 우리 국민들 입에서도 반복될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은행 보증대책 마련을 둘러싼 은행들의 자구 노력은 지난 11년전보다 더 높은 강도를 요하는 쪽으로 밀려갈 공산이 크다. 청와대와 정치권, 정부당국이 여론을 적절히 활용하는 쪽으로 내심 방향을 굳힌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은행들은 어느 해보다 쌀쌀한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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