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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도의원님 무서워서 공공웨딩 하겠습니까?"

 

박비주안 기자 | lottegiants20@gmail.com | 2024.05.31 15:00:31
[프라임경제] 지난 주 토요일 기자는 옛 경기도청사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경기도에서는 우리 부부에게 '옛 경기도청사 1호 공공 웨딩'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었다.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기사 너머로 정작 우리 부부는 불쾌한 기분으로 한 주를 보내야했다. 불쾌의 진원은 다름 아닌 '경기도의원'이라는 사실이 더욱 황당하기만 하다.

신랑은 독일에서 프렌치 호른 석사과정을 밟고 돌아온 연주자다. 독일 유학파라 유럽식 유쾌한 결혼잔치에 로망이 있었다. 우리 결혼도 웨딩홀이 아닌, 야외이면서 자유로운 연주를 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자고 합의해 2월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그래서 야외가 열려있는 공공 웨딩에 관심을 갖게 됐고, 서울 수도권 내 거의 모든 공공 웨딩이 가능한 장소를 일일이 찾아가보며 자료를 수집했다. 신혼집에서 차로 불과 20분 거리에 있으면서, 가장 넓은 공간이었던 옛 경기도청사 잔디마당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잔디마당은 사전에 '경기공유서비스' 시스템을 통해 예약해야했는데, 우리는 결혼식이다보니 일반적인 예약으로는 장소 확정이 어려울 것 같아 해당부서 공무원들과 자주 소통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해당 공무원 역시 1호 결혼식이라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주셨다. 특히, 우리 부부는 다른 기획사나 웨딩 디렉터의 도움 없이 오롯이 부부가 직접 하나씩 준비한 것이라 더욱 협의에 적극적이었다. 

결혼식에 필요한 소품 하나하나까지 신부의 손으로 다 만들어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던  공공 1호 결혼식은 결혼식 당일에 모든 문제가 터졌다. 

경기도에서 자랑했던 넓은 주차장은 인근 다른 웨딩홀과 등산객들로 이미 만차 상태로, 우리 결혼식의 하객들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잔디마당이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주차를 한 후 다시 잔디마당으로 올라와야하는 불편함을 겪어야했다. 

예식이 음악회 형태로 이루어진만큼 브라스밴드 앙상블을 뒤에서 받쳐줄 음향 믹싱기가 중요했는데, 전기를 끌어쓸 수 있는 거리가 100미터 이상이라 음향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음향팀이 항의하기도 했다.

결혼식 도중 축하화환이 몽땅 사라지는 화환 절도도 겪었다. 결혼식 화환을 돌려막는 것이야 관행이었으니 이해한다 하더라도, 결혼식 도중에 화환을 몽땅 들고갔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들은 적이 없을 정도로 황당했다. 이런 절도가 옛청사라는 공공기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을 정도다.

하이라이트는 '도의원님'의 등장이다. 해당 경기도의원은 결혼식 하객들에게 제공된 뷔페에서 '고기를 구웠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결혼식이 진행됐던 2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당일 최고온도 28도를 기록한 초여름 날씨였다. 해당 뷔페측에서는 높은 기온이 걱정되어 갈비 1종만 '굽는' 것을 택했는데 이것이 발단이 됐다. 

이를 두고 해당 도의원은 "식품위생법 위반사항으로 신고하겠다"면서 뷔페 사진을 찍고, 공공 웨딩 1호라 현장에 나와있던 경기도청 직원들을 불러 '신고사항'이라며 큰 소리를 냈다. 뷔페 측은 "갈비만 제공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고 이내 불을 끄면서 소동은 일단락이 됐지만, 그 후에도 해당 도의원은 도청 공무원에게 지속적인 항의를 했다. 그 과정에서 뷔페가 중단된 것은 물론, 결혼식 진행 중이었던 신랑에게까지 '도의원이 신고하겠다고 한다'는 메시지가 전달되어 결혼식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결혼식 사회자의 기치로 중단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신랑의 불안한 표정은 하객들까지 불안하게 만들었다. 신랑이 그토록 바랬던 '함께 춤추며 함께 노는' 결혼잔치는 물건너갔고, 우리 부부는 해당 도의원에게 자기 소개는 물론, 사건의 전말이나 신고의 이유 등에 대한 소란의 사유는 끝내 듣지 못했다. 

식약처는 2022년 식품의약품 안전처를 통해 '옥외 영업장에서의 조리행위를 주거지역과 인접하지 않아 환경 위해 우려가 적은 장소로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정한 기준에 적합한 경우라면 옥외 영업장에서 조리행위가 가능하도록 함'이라고 하여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한 바 있으나, 지자체가 별도 조례 마련에 소극적이다하여 문제점으로 꾸준히 지적되어 온 '옥외 조리'의 문제였다. 

아직 조례로 반영되지 못한 부분이었다면 이를 지적할 수는 있겠으나, '본인의 신분은 도의원이고, 주변의 민원을 받아서 급히 결혼식장을 찾게됐다' 정도의 기본적인 설명도 없이 본인 얼굴을 아는 공무원들만 붙잡아놓고 신고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뷔페 업체에는 "사진 찍었으니 신고하겠다"는 말까지 불필요하게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묻고싶다.

"민원이 들어와서 그런데, 좋은 날 불 사용은 자제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라는 말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혹은 경기공유서비스를 통해 해당 업체의 정보와 안전배상책임보험 5억원 가액의 보험증서를 이미 제출했음에도 결혼식 이후 다시 확인해보겠다는 의지조차 없었을까.

'옥외 조리' 문제 외에도 주차 문제, 전기 배선 문제, 화환 절도 사건 등 다른 안전 사고 위험은 눈에 안들어왔던 것일까. 그래서 굳이 '경기도의원'임을 경기도청 공무원의 입을 통해 들어야했고, 굳이 결혼식이 '도의원님' 때문에 중단되었어야 했을까. 

이번 결혼식을 준비하는데 111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이 긴 과정은 SNS를 통해 매일 공개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해주어 더욱 화제가 됐던 결혼식이었다. 그런데 이 111일이라는 준비 기간이 무색하게 '도의원님'의 도 넘은 결혼식 중단사건은 '공공 웨딩 1호' 자부심을 깎아내리기에 충분했다.

SNS를 통해 공공 결혼식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나는 그때마다 이렇게 답할 수 밖에 없었다. 

"경기도의원님 얼굴 다 외워서 가세요. 누가 언제 어디에서 본인 소개도 없이 결혼식을 신고하겠다고 난리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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