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2023년 국내 배터리업계는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전반적으로 실적이 개선됐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삼성SDI(006400)의 성장세가 두드러졌고, SK온은 적자 폭을 줄인 모습이다.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업계가 홀대했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중국 기업들의 맹추격과 외국우려기업(FEOC) 규정 등 새로운 우려를 마주하게 된 해이기도 하다.
내년에도 국내 배터리업계는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질적 성장에 몰두할 방침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더욱 고조되면서 업계의 '탈중국' 기조는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혜택을 받기 위해선 중국의 의존도를 낮춰야 하고, 미국 내 제조 설비 확대에 나서야 해서다.
이에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계묘년(癸卯年)에 벌어진 국내 배터리업계의 주요 이슈들을 정리해 봤다.
◆홀대받던 LFP 배터리의 '반격'
올해는 국내에서 홀대받던 LFP 배터리가 전 세계적인 대세 제품으로 떠오른 해다. 이에 따라 국내 배터리업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LFP 배터리는 용량이나 출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인 양극재에 인산·철을 쓰는 이차전지를 말한다. 중국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한국 기업은 주로 삼원계 양극재 NCM(니켈·코발트·망간)을 쓰는 배터리를 생산한다. 이 외에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도 있다.

지난 3월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3'에서 참관객들이 SK온 부스 내 LFP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만에도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LFP 배터리 점유율은 27.2%였다. NCM·NCA 배터리 점유율은 69.8%였다. 아직까진 NCM·NCA 배터리가 우세하지만, 최근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2020년까지 LFP 배터리의 점유율은 10%에 불과했다.
완성차 기업들의 LFP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내년 LFP 시장 점유율이 국내 배터리 기업의 주력 제품인 삼원계 배터리 점유율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LFP는 에너지 밀도가 낮고, 주행거리가 짧다는 단점으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삼원계 배터리보다 뒤처진 기술로 평가됐다. 국내 배터리업계가 에너지 밀도가 높은 삼원계 배터리 성능을 개선해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주력해 온 이유다.
그러나 중국 기업이 LFP 에너지 밀도를 대폭 개선하면서 가격이 저렴한 LFP 배터리의 위상이 달라진 상태다. 갑작스럽게 시장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국내 배터리업계는 LFP 배터리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태다.
◆활발한 전기차 보급…배터리 시장도 함께 성장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전기차 등록 대수는 약 1377만대로 예상된다. 이는 전년 대비 30.6% 증가한 수치다. 전 세계 전기차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배터리 시장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25조7441억원, 영업이익 1조8250억원을 달성하면서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지난해 연간 매출 25조5986억원, 영업이익 1조2137억원을 경신했다.

서울 시내 한 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들. ⓒ 연합뉴스
삼성SDI는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17조1435억원, 영업이익 1조321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1%, 0.3% 늘어난 수치다.
SK온은 같은 기간 5623억원의 영업손실을 거뒀다. 흑자 전환에는 실패했으나, 지난해 1조726억원 적자 대비 손실 규모를 대폭 줄였다.
더욱 주목할 것은 수주 잔고다. 올해 국내 배터리 3사의 누적 수주 잔고는 1000조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진다. LG에너지솔루션은 440조원을 넘었고, SK온은 290조원에 달한다. 삼성SDI도 260조원 안팎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것으로 추산된다. 중장기 일감이 충분히 확보된 셈이다.
◆미국 IRA 수혜…북미 증설 행보
국내 배터리업계의 역대급 실적 배경에는 IRA가 있다. IRA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공급망을 끊고, 미국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해 시행한 규제다.
전기차용 배터리 부품 중 50% 이상을 북미에서 제조하거나 배터리 핵심 광물 40% 이상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하면 3750달러씩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한국 배터리의 품질과 기술력을 앞세워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선택을 받은 영향과 함께 IRA가 국내 배터리 업계의 글로벌 배터리 시장 내 선전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인터배터리 2022' SK온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NCM9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배터리업계는 IRA를 적극 활용해 중국 업체가 미국 진출이 어려워진 틈을 타 좁혀지는 격차를 벌리겠다는 복안이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지난해 IRA 발표 첫해부터 완성차 업계와 합작공장을 통해 미국 현지 진출에 속도를 내왔다.
올해에도 국내 배터리업계의 북미 증설 행보가 지속됐다. 올해 하반기 전기차 수요 둔화 영향으로 일부 북미 배터리 공장 프로젝트가 연기되기도 했으나, 장기적으로 대규모 생산설비 신·증설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탈중국' 과제 빠르게 해소해야
국내 배터리 업계의 북미 진출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우려를 맞이하게 됐다. 지난 1일 미국 정부에서 외국우려기업(FEOC) 세부 규정을 발표한 것. FEOC 세부 규정을 준수하려면 국내 배터리업계는 중국과의 합작법인 지분율 조정 등 공급망 '탈중국' 과제를 빠르게 해소해야 한다.
이 때문에 내년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숙제는 탈중국일 수밖에 없다. FEOC 해당 여부를 결정하는 세부 규정 초안에 따르면 우려국 정부와 기관 지분율이 25% 이상이면 FEOC로 분류된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지분율 수치를 50% 정도로 예상하고 중국기업과의 합작 사업을 추진하는 등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미국이 이번 세부 규정으로 국내 기업들의 긴밀한 원자재 확보 계약을 차단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기업들이 중국 지분율을 낮추려면 수천억원을 들여 지분을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 재정적 타격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IRA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라며 "탈중국 기조를 이어가면서 여러 시나리오를 미리 짜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