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 일본에 거주 중인 A씨가 모바일로 미국 쇼핑몰에서 마그네슘 영양제를 주문하자 인천에 있는 CJ대한통운(000120) GDC(Global Distribution Center)에서 물류 로봇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시스템으로 수출통관이 이뤄지자, 영양제가 담긴 보관 바구니를 로봇이 꺼내 건너편 작업자에게 가져다준다.
바구니에서 제품을 꺼내 배송박스로 옮겨 담자, 박스가 컨베이어를 따라 이동하며 포장 과정을 거친 뒤 발송 국가별로 자동 분류된다. 이러한 복잡한 물류과정이 진행되는 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후 박스들은 대형 간선차량에 실려 인천공항으로 이동해 화물 운송기를 타고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 현지 물류업체를 통해 통관·배송 과정을 거쳐 A씨 집에 도착한다.
CJ대한통운은 지난 9일 글로벌 이커머스의 물류 전진기지이자 국내 유일 글로벌 권역 풀필먼트 센터인 인천 GDC를 공개했다. 기자는 이곳에서 스마트하고 안전하게 이뤄지는 물류 시스템의 전 과정을 살펴봤다.
GDC는 소비지역 인접 국가에 미리 제품을 보관한 뒤 국가별 주문에 맞춰 포장·발송하는 물류센터다. CJ대한통운은 지난 2019년 국내 최초로 GDC 사업을 개시, 글로벌 건강 라이프 쇼핑몰 '아이허브(iHerb)'를 대상으로 이러한 글로벌 물류를 수행하고 있다.
이곳은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근로자의 일을 로봇이 빼앗는다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형태였다.

인천GDC센터에 방문한 기자단이 취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조택영 기자
CJ대한통운이 추구하는 바도 이러하다. 고강도 노동과 땀 냄새로 가득해 '지옥의 아르바이트'로 불리는 택배 물류센터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물류센터에서도 안전하고 수월하게 일명 '꿀 알바'를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이곳은 최첨단 물류 로봇 시스템 '오토스토어(Auto-Store)'를 도입해 최종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경진 CJ대한통운 CBE 운영팀장은 "증축에 따른 운영규모 확대와 함께 로봇·데이터 기반의 최첨단 기술력이 가미됨에 따라 GDC 운영의 초격차 경쟁력이 확보되고 있다"고 말했다.
GDC 물류 작업공간에 들어서자 16단으로 쌓여 있는 보관공간 위로 140대의 로봇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큐브 형태로 조립된 바구니들 위로 빠르게 지나가다 어느 한 곳에 멈춰 선다. 로봇은 그 자리에서 와이어를 수직으로 내려 바구니 한 개를 끌어 올렸다.
해외 소비자가 주문한 제품이 담긴 바구니다. 로봇이 바구니를 품고 건너편 작업자에게 전달한다. 이 로봇은 또 다른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뜨며 다른 바구니를 가지러 간다.
이는 CJ대한통운이 최근 센터 내 약 6264㎡(1895평) 규모의 공간을 증축하고 도입한 물류 로봇 시스템 오토스토어다. 소비자 주문이 들어오면 로봇은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물건이 담긴 Bin(보관 바구니)을 꺼내 출고 스테이션 작업자에게 전달한다. 제품이 사람을 찾아가는 'GTP(Goods-To-Person)' 방식이다.

오토스토어에서 로봇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조택영 기자
작업자 앞에 놓여 있는 화면에는 물건의 크기, 개수에 맞춰 최적의 박스가 표시된다. 작업자는 해당 박스에 소비자 주문 정보에 맞춰 제품을 넣기만 하면 된다.
이 팀장은 "처음 일을 시작한 근로자도 3분 정도만 교육을 받으면 바로 작업이 가능하다"며 "요즘 들어 근로자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누구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오토스토어에는 7만6000개의 Bin이 설치돼 있으며, 약 3만 종류의 제품이 보관되고 있다. 로봇은 10분 충전 시 4시간 동안 작업이 가능하다고. 충전 장비는 로봇이 분주히 움직이는 상단 쪽 기둥과 벽에 배치돼 있었다.
로봇은 자동으로 먼 곳에 이동할 때 가속하고, 가까운 곳에 이동할 때는 감속한다. 심지어 교통사고(?)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로봇 간의 목적지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어 서로 부딪힐 일이 없다고 한다.
오토스토어는 스스로 재고를 재배치하는 역할도 한다.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주문량이 많은 물건을 위쪽에 알아서 배치한다. 주문량이 많은 제품은 그만큼 출고 빈도가 높아지는데, 이런 제품을 상단에 배치해 로봇이 물건을 가져오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 팀장은 "고정식 철제 선반에 팔렛트 단위로 보관하는 '랙 방식'과 비교 시 공간을 더욱 촘촘히 활용할 수 있어 보관 효율성이 4배 향상될 뿐 아니라 출고 처리 능력도 2.8배 증가한다"며 "물류 현장에서 오토스토어를 실제 운용하는 곳은 국내에서 인천 GDC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오토스토어는 지난 9월부터 테스트 가동을 시작했고, 오는 12월부터 본격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가 QPS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조택영 기자
CJ대한통운의 또 다른 첨단 시스템도 눈길을 끌었다. 'OTP(Order-To-Person)' 방식의 QPS(Quick Picking System)다. 주문 정보가 입혀진 박스들이 컨베이어를 따라 이동하다 작업자 앞에 멈춰 서면 작업자는 화면에 표시된 주문정보를 확인 후 본인 앞에 놓여 있는 제품을 박스 안에 넣기만 하면 된다.
이 팀장은 "사람이 제품을 직접 찾으러 가는 'PTG' 방식 대신, 주문 정보가 담긴 박스를 자동으로 전달해 주는 OTP 방식과 제품이 사람을 알아서 찾아가는 'GTP' 방식의 시스템을 활용해 물류 효율성은 물론 작업 편의성도 극대화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QPS와 오토스토어를 함께 운영해 당일 최대출고량이 기존 2만 상자에서 3만 상자로 1.5배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작업장에서는 스마트패키징 시스템이 소개됐다. 자동 박스제함기들이 쉴 새 없이 박스를 접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크기가 서로 다른 7종류의 박스가 제함된다.
이 팀장은 "인천 GDC는 입고되는 모든 제품의 체적 정보를 데이터화하고 있으며, 소비자가 주문한 제품의 종류와 수량에 맞춰 7종 중 가장 적합한 크기의 박스를 현장에 투입한다"고 말했다.
최적 박스를 사용해 박스 내 빈 공간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박스 측면에 표기하는 박스바코드에 코팅라벨 대신 오징어먹물식 잉크를 사용함으로써 불필요한 종이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이 팀장은 "코팅라벨을 붙이면 선명도가 높고 비용도 아낄 수 있지만, 환경을 위해 라벨을 제거하는 절차를 없앴다"면서 "이를 통해 2019년부터 현재까지 2200만장의 코팅라벨을 줄이는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중량 검수대에서 장비가 오차가 있는 박스를 밀어내고 있다. = 조택영 기자
제함된 박스에 소비자가 주문한 제품이 모두 담기면 박스는 자동 컨베이어를 따라 검수공간으로 이동한다. 박스가 컨베이어에 설치된 중량 검수대를 지나는 즉시 화면에 무게가 표시된다.
이미 데이터화 한 제품별 무게 정보를 활용해 소비자가 주문한 제품이 알맞게 들어갔는지를 검수하는 과정이다. 오차 발생 시 작업자가 따로 검수하도록 장비가 박스를 밀어낸다.
현장 관계자가 이를 시험하기 위해 박스 안에 휴대전화를 놓자, 검수를 마친 장비가 해당 박스를 작업자 쪽으로 밀어냈다. 가끔 정상적인 박스도 장비가 배출할 때도 있다고 한다. 상품이 건강기능식품이다 보니 중량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어 작업자에게 다시 검수하라는 이유에서다. 작업자는 이를 확인 후 다시 박스를 올려놓으면 정상 출고된다.
중량 검수에서 정상 처리가 되면 3D 스캐너가 박스 내 빈 공간을 측정하고 최적량의 완충재를 자동으로 넣는다. 박스가 오면 장비가 레이저를 발사, 물품의 빈 공간을 3D로 측정해 얼마만큼의 완충재를 넣어야 할지 본 뒤 넣는 방식이다.
박스 테이핑, 송장 부착 작업도 모두 자동으로 이뤄진다. 이후 휠소터(Wheel-Sorter)가 국가별로 분류하면 작업자들이 간선차량에 박스를 싣는다. 작업이 마무리되면 간선차량들은 인천공항으로 이동해 국가별 노선에 맞춰 발송한다.
연면적 약 2만㎡(6117평) 규모의 인천 GDC는 500만개 이상의 제품을 보관할 수 있는 센터로 아시아 물류기업 GDC 중 가장 큰 규모다. 미국에서 받은 제품들이 보세상태로 보관돼 있다가 △일본 △싱가포르 △호주 △카자흐스탄 아시아·태평양 4개 국가 소비자가 주문하면 수출통관 및 물류과정을 거쳐 항공으로 운송된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물류비 절감은 물론 배송시간도 단축한다. 미국에서 직접 발송하는 것과 비교하면, 인천 GDC의 경우 동일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에서 발송하기 때문에 지리적 근접성으로 소지자에게 훨씬 빨리 배송할 수 있다.

CJ대한통운 인천GDC센터 전경. = 조택영 기자
이 팀장은 "인천 GDC가 '전진기지' 역할을 하면서 물류 효율성은 물론 고객사, 소비자의 만족도까지 높아지고 있다"며 "고객사와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CJ대한통운은 인천 GDC 운영 경험을 토대로 아이허브와 협력해 사우디에서 중동 지역 인근 국가로 발송하는 '사우디 GDC'도 구축하는 상태다.
영국 물류 시장 리서치 기업 TI에 따르면 전 세계 CBE(Cross-Border Ecommerce·글로벌 전자상거래) 물류 시장은 2026년 17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 2021년 97조원 대비 무려 83.5% 성장하는 규모다.
이와 함께 TI는 한국 CBE 물류 시장 규모가 2021년 1조1000억원에서 2026년 1조3000억원으로 약 21.4%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시장 전망에 따라 국내외 많은 물류기업이 한국에 GDC, 국제특송장을 구축하거나 해외 현지에 이커머스 물류센터를 확보하는 등 CBE 물류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GDC 사업 확대가 CBE 물류 시장을 견인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과거처럼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해외 현지에 직접 진출하는 대신,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는 국가에서 효율적인 GDC 운영을 펼치는 것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GDC를 운영하는 CJ대한통운이 글로벌 CBE 물류 시장에서 주목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경진 CJ대한통운 CBE 운영팀장은 "압도적인 GDC 운영역량을 바탕으로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뛰어넘는 '초국경택배' 서비스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며 "운영 프로세스에 최적화된 첨단기술 확대를 통해 물류 효율성을 높이고, 글로벌 CBE 물류 시장의 강자로 입지를 굳힐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