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고구려는 기원전(BC) 37년이 아니라 서기(AD) 32년에 건국됐고, 백제는 기원전 18년이 아니라 서기 51년에, 신라는 기원전 57년이 아니라 서기 76년에 건국됐습니다. 사실, 삼국의 왕계에서 이러한 인위적인 변형은 '삼국사기'가 편찬되기 이전에 이미 완성돼 있었고, 김부식도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역사연구가 황대용 작가에 따르면, 고구려는 기원전이 아닌 서력 기원 한참 이후로 건국 시기를 고쳐 써야 한다. 백제와 신라 역사의 시작도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 각각 약 70년 내지 130년 오차가 있다는 놀라운 주장도 뒤따른다.
황 작가는 '삼국기년의 변조구조와 실제시대'를 조심스럽게 펴냈다. 하지만 막상 그 내용은 연구에만 매달려온 정통 학자 출신이 아닌 기업인 출신 연구자가 내놓은 성과물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이다. 사실 삼국시대 역사의 초반부는 상당한 오류가 포함돼 있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황 작가는 그런 일종의 '금기'를 정면으로 건드린 셈이다.
그는 공대를 졸업한 후 옛 현대전자(오늘날의 SK하이닉스) 등 여러 기업에서 일해온 경제인 출신이다. 이런 삶의 궤적이 책 곳곳에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박또박 중국 등 외국 역사서를 근거로 우리와 일본 역사 기록 중 변조가 들어가 있는 부분들의 계산 오류를 밝히고 주장하는 모습은 공학도다운 면이고 일본인들이 왜 기록을 변조하고 나섰는지를 일종의 심리적 효과 즉 넓은 의미의 '권위 세우기'로 접근하는 것은 마케팅 개념을 고려한 듯하다. 생생한 사람들 사이의 문제를 기업 일선에서 활동하며 살펴 온 경제인 출신 이력도 고스란히 책에 반영된 셈이다.
◆김부식조차 '알면서도 알지 못한' 기년 변형, 밝혀낸 비법은?
그는 1957년 부산 출생으로 부산대학교 공대를 나와 현대전자 등 여러 기업에서 근무해 왔다. 2021년 퇴직 전까지는 일본이나 중국의 현지 기업에서도 활동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해외 근무 경험은 그에게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역사 연구의 계기가 됐다.
황 작가는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고 자신이 남보기에 다소 독특한 길을 걷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지금 생각해 보면, 문제의 제기만 있었을 뿐 영원히 해답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은 소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실, 이쯤 되면 단순히 학창 시절 이것저것 잠깐 발을 담그는 정도의 관심사나 애착 대상이었다고 하기에는 넘치는 감이 있다.
직접 공부하는 전공 대상으로 택하진 않았으나, 전자회사 근무 경험은 그에게 풍성한 계기를 제공했다. 중국과 일본 등에서 해외 주재원으로 26년간 생활하면서, 중국과 일본의 역사기록에 눈길을 줄 기회가 열린 것이다.
황 작가는 "10여년 전쯤부터 '삼국사기'의 해당 부분을 직접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 계기라면 계기였다. '일본서기'를 구입해서 정독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고 '삼국기년의 변조구조와 실제시대'를 탄생시키게 된 첫걸음을 회상했다.
그는 고대 일본인들이 '일본서기'에서 역사 기록을 변조했고 이것이 다시 우리나라 삼국 역사 편찬자들에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줬다는 시각을 갖고 있고, 일본의 기년 변조가 이뤄진 점을 여러 서적을 대조해 꼼꼼히 입증제시하고자 노력했다.
황 작가의 역사 변조 실마리 찾기는 어찌 보면 간단하지만, 대단히 방대하고 지루한 작업을 꼼꼼히 계산하고 검증하는 여정이었다.
삼국의 왕계에서 인위적인 변형은 '삼국사기'가 편찬되기 이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삼국사기'를 펴낸 김부식도 이를 알지 못했다고 그는 설명한다. 다만 일정한 문제점이 있다는 자체는 김부식도 눈치채고 있었다는 게 황 작가의 부연설명이다.
황 작가는 "'삼국사기'의 태조왕 94년조에는 우리의 기록인 '해동고기'와 중국의 기록인 '후한서'가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고 김부식도 이런 부분을 일일이 적시하면서도 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하는 내용의 주석이 있다"면서 "결국, 김부식으로서는 중국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의 기록인 '해동고기'의 기년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셈"이라고 일본쪽에서 먼저 만들어낸 오류가 우리 역사에서 계속 확대재생산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삼국사기'를 편찬할 당시 김부식이 가졌던 관점과 정보량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 '해동고기'와 '후한서'가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고, 이러한 상황은 8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뒤틀린 삼국기년, 일본 측 변조 다양한 근거로 꼼꼼히 입증해
하지만 해법은 남아 있었다. 황 작가는 "다행히도 우리 고대사의 적지 않은 파편이 중국이나 일본의 사서에 화석으로 남아 있다.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 개방적으로 이러한 화석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긴 시간이 들어간 자신의 작업을 겸손하게 표현했다.
황 작가는 일본인들이 자기 역사와 조상들을 위대하다고 포장하는 과정에서 기년을 실제보다 '올려치는' 변조가 고의로 이뤄졌다고 짚는다. 그는 여러 다양한 검증을 통해 변조를 입증해 냈는데 이 과정은 혼잡하고 불규칙적으로 거짓말을 뒤섞어 놓은 게 아니라 일정한 기년을 인상하면서, 언젠가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마무리 단계의 흔적을 일정하게 남겼다고 본다. 나중에 이름이 비슷한 임금들을 같은 인물로 처리해 연도 고치기를 합리화하거나, 역사적 인물을 대단히 장수한 것처럼 만들어 이상한 논쟁거리를 만들어 봉합하는 식이다.
황 작가는 "일례로, '일본서기'의 기록에는 많은 왜곡과 과장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공기(神功紀)와 그로부터 이어지는 응신기(應神紀)에는 적지 않은 백제왕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고, '삼국사기'와 대조해볼 때 그 백제왕들은 '일본서기'가 기록하고 있는 시간보다 정확히 120년 후대에 실제로 재위하던 왕들로 확인됩니다. 말하자면 일본서기는 신공기와 응신기에 해당하는 실제시대를 묘사하면서 그 기록의 시간을 실제로부터 120년을 인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실제로 '일본서기'는 신공 46년에 처음으로 등장시킨 근초고왕을 초고왕이라 호칭한다. 앞서 말한 고이왕 3대와 병립하던 초고왕 부자의 왕계구조에서 신공 46년에 해당하는 기록상의 시점에 실제로 초고왕이 재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것이라는 식이다.
한편 일본 측의 이런 역사 올리기를 접한 우리의 삼국 역사 관련 편찬자들도 이런 모순을 모른 척 하거나 해서 우리 역사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대응 상황이 연출됐다. 일본이 기록 변조를 하는데 우리만 기록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논리가 작용했으리라는 설명이다. 이것이 고려시대 김부식으로서는 이미 증명이 어렵게 문제가 꼬여 있었던 이유다.
◆일본 역사서, 편견없이 바라봐야...역사 전문가들 대중 위한 콘텐츠 개발 필요
여기저기 남아있는 이런 미세한 파편과 흔적들을 하나하나 중국 등의 역사서와 확인하면서 문제의 근원(?)인 '일본서기' 변조 내력을 밝혀낸 것은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일본 역사 서적들을 폭넓게 편견없이 참고할 필요가 이제는 있다고 당부한다.
황 작가는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 개방적으로 일본과 중국 기록에 흩어져 있는 우리 역사의 화석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하면서 "특히 '일본서기'는 '삼국사기'가 간행된 이래 한반도에서 너무 오랫동안 하나의 역사서로서 참조되지 못한 것 같다. 여기에는 물론 너무나 뚜렷한 왜곡과 과장이 포함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속에 있는 모든 개별적인 서술에 대한 사료가치까지 통째로 부정해 버리는 것은 너무 과격하고 거친 인식"이라고 짚었다.
아직 이런 그의 입증 노력이 기존 사학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거나 큰 반향을 일으키는 상황은 아니다. 그는 "서둘러 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언젠가 저의 관점이나 주장에 공감하는 분들이 나타나게 된다면 다행한 일이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면 역시 전문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전문가가 먼저 학습하고 먼저 창의적인 관점에 서서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어야 대중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소구력이 있지 않을까"라며 기존 학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이번에 그가 밝혀낸 삼국 역사 초반의 오류 바로잡기 등 많은 과제에 치열한 논쟁과 대중들도 관심을 갖는 저변 확대가 실제로 이뤄질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