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밖에 한 고객이 서 있다. SVB는 캘리포니아 규정에 의해 폐쇄됐다.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국내증시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에도 선방했다. 그동안 글로벌 증시의 발목을 잡았던 기준금리가 SVB 여파로 완화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면서 예상과 달리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스타트업들의 돈줄을 표방하던 SVB가 지난 10일(현지시각) 파산했다. 미국 16위 은행인 SVB가 무너진 것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역대 두 번째 규모다.
SVB의 파산은 위기가 나온 지 불과 이틀도 채 안 돼 벌어졌다. SVB는 주요 고객인 스타트업들의 예금이 줄어든 탓에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18억달러의 채권 손실에 대응하고자 22억5000만달러의 자금 조달 계획을 발표했지만,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뱅크런(예금 인출)'으로 약 14시간 만에 파산을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SVB 파산에 세계 증시가 출렁거렸다. 당시 뉴욕증시 3대지수는 물론 유럽증시는 1% 이상 빠졌다. SPDR S&P 지역은행 상장지수펀드(ETF)도 4% 이상 급락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4% 이상 떨어졌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구원투수로 등장하면서 시장의 불안은 사그라들었다. 12일(현지시각)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고객이 SVB에 맡긴 돈을 보험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보증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또 이번 SVB 사태가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는 달리 미국 은행들의 자본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전문가들도 같은 시각이다.
최보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VB 사태가 미국의 시스템 리스크로 연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SVB는 리먼 브라더스보다 총 자산 규모가 작고, 개인 리테일 고객 비중이 낮으며, 미국 지역은행 중에서도 예금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VB 사태가 국내에 미칠 영향도 적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SVB는 주고객이 기업이기에 예금자보호한도(25만달러)를 넘는 고액 예금이 많다. 반면 국내 은행은 고액보다 소액 예금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이날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연 '시장 상황 점검 회의'에서 SVB 사태가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도 "SVB는 국내 은행의 사업모델과 다르기 때문에 국내 은행의 유동성 위기로 번질 우려는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평가에 13일 국내증시는 우려를 딛고 상승 마감했다. 특히 코스피 지수는 전장 2394.59대비 16.01p(0.67%) 상승한 2410.60을 기록하며 2400선을 다시 회복했다.
이날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장초반 혼조세를 보이던 국내증시는 미국의 적극적인 SVB 리스크 완화 개입,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50bp 금리인상 가능성 둔화 기대감 등에 힘입어 상승 전환했다"고 진단했다.
미국 정부가 급한 불을 끄면서 당장은 일단락된 모습이다. 다만 주목할 점은 SVB가 파산한 원인이다. 이를 두고 시장은 연준이 지난 1년간 밀어붙인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초저금리로 넘쳐나던 유동성이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스타트업들의 돈줄이 말라붙으면서 이번 SVB 사태가 벌어졌다는 까닭이다.
로이터통신은 "SVB의 파산 이후 시장 참여자들이 그간 금리 인상으로 인해 값싼 자금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고 경제 취약성이 드러났다고 보고 앞으로 더 혼란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요 외신을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SVB 파산이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지목되면서 이달 금리인상 폭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러한 전망은 국내증시가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신호로도 읽혀지고 있다. 즉 이번 SVB 사태가 연준의 긴축 완화에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미국 기준금리 전망을 집계하는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22일 연준이 '빅스텝(0.5%p 금리인상)'을 밟을 가능성은 '제로(0)'로 바뀌었다. '베이비스텝(0.25%p 금리인상)' 가능성은 93%를 차지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금리 동결이나 베이비스텝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금융의 몰락은 결과적으로 실물을 압박해 통화 긴축이 과도했음을 드러내 줄 것"이라며 "연준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금리인상 속도 둔화, 일시적이나마 유동성 재공급을 고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는 시장에 완화적 시그널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