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국제유가가 이틀 조정을 보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더 급락하지 않는한 사실상 ‘3차 오일 쇼크’의 도래라는 위기의식이 전세계에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미 7 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경우 우리 경제는 지난 1980년 2차 오일 쇼크와 같은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를 내보냈다. 물가상승률, 석유집약도(생산단위당 석유 투입량)를 감안하면 당시 유가가 지금의 150달러에 해당한다는 분석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외에도 이미 우리 경제는 오일 쇼크의 영향권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미 석유수출국기구 쪽에서는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고유가 시대에 맞춰 사는 방법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수입국들에게 전달했다. 과거 오일쇼크는 이스라엘과의 전쟁 등 정치적 요인에 의한 것이어서 일시적으로 압박카드로 유가를 사용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제는 수요가 공급을 초과(투기 수요도 있다고는 하나)하는 만성적 상황을 풀어야 한다는 보다 어려운 과제를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3차 오일 쇼크의 영향은 과거 1, 2차 때보다 훨씬 길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발빠른 ‘대책 발동’,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유가 150달러 시대가 가깝다는 판단에 따라 이미 지난 5일 ‘제 1차 고유가 비상대책’을 조기에 발동했다. 150달러선을 넘으면 후속 조치에 돌입하라는 이명박 대통령 지시도 정부당국에 내려진 상황이다.
정부는 이미 공공부문의 차량 홀짝제 운행과 엘리베이터, 조명 등을 규제한다고 밝혔다. 경차로 관용차를 바꾸는 장기부제 운행과계획도 선보였다. 유가가 150달러를 넘으면 민간에도 강제성을 띤 조치를 발동한다는 복안이다. 유흥업소, 골프장 등의 에너지 사용제한을, 수급에 차질을 빚을 경우에는 지역난방 제한공급 등 초강수도 둘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적으로는 에너지절약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공기관부터 에너지절약대책을 선보여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고 권고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수요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대책을 내놓고 후속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게 정부의 본분이지만, 예상을 벗어난 유가 움직임에 사실 정부가 더 허둥대는 모습이다. 김동수 기획재정부 제 1 차관 내정자는 7일 오전 한 라디오방송에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70달러 이상으로 상승하면 우리 경제성장률은 4%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제 지표를 대폭 수정할 수 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불과 이번 달 초인 2일, 기획재정부는 ‘2008년 하반기 경제 운용 방향’을 발표하며 연간 유가를 110달러로 상정하고 경제성장률을 4.7%, 물가상승률을 4.5%로 전망했다. 그러나 발표문을 채 열흘도 못 넘기고 궤도 수정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정부 스스로 경제를 보는 눈에 심각한 장애가 있음을 시인한 셈이다.
◆근시안 대책,시장 안심시킬 조치는 없어 불안감 커져
정부가 경제 대책을 세움에 있어서 근시안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비단 고유가 비상대책 뿐이 아니다. 이에 앞서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 처리에 있어서도 미숙한 일면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화물연대가 내놓은 요구 조건 중 상당 부분은 토론이 되풀이되는 만성적 논점이다. 지입차주의 노동자 성격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와 함께, 유가 보조, 운송비 표준 요율제 등 기존의 제도와 시각 프레임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인 셈. 그러나 ‘실용주의’를 강조하면서 집권한 이명박 정부조차도 과거와 같이 미봉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했다.
고유가 대책으로 내놓은 세금 환급 역시 세계 각국이 이미 효과가 미미하다고 판단한 제도로, 비용 대비 효율 면에서 우려를 낳았다.
이번 고유가 대책 역시 마찬가지다. 유가 문제 고비를 넘기 위해 일단 수요를 줄이자는 데에 주목한 것은 나름대로 평가할 만 하지만, ‘그 다음’에 대한 해법이 없다.유가가 더 오르면 석유 소모가 많은 업종에 대한 영업 규제 등을 단행한다는 것인데, 그 이후 서민경제에 대한 대응책이나 물가 안정에 대한 고민도 부족해 보인다. 주가 급락에 따른 패닉에 대해서도 모르쇠에 가깝다.
사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대목은 국제 유가의 상승에 따라 물가가 오를 가능성을 어떻게 차단하는가에 있다. 고유가로 인한 물가 급등이 인플레이션 효과를 단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가격 상승이 짧은 파동을 일으키며 전 부분으로 확대되면 경제 전반에 쓰나미가 덮치는 것과 같은 위험한 파급 효과가 올 수 있다. 이때 정부의 경제사령탑에서 할 가장 큰 과제는 정책적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계속 보내 투자자(작게는 외국인 투자자, 크게는 시장 전체)를 안심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이명박 정부는 묘하게도 초지 일관 외면하고 있다.
김동수 기재부 제 1차관 내정자가 8일 회견에서 “주가가 급락하는 것은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다”라면서 과민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진화에 나서기는 했다. 그러나 이 회견은 관계기관 간에 대책을 협의하겠다는 전제만 확인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지난주에 밝힌 하반기 경제운영방안을 착실히 이행할 경우 인플레 기대심리 확산을 막고 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올드보이’ 강만수 장관,철학과 고뇌 보여줄 때
일단 이번 7·7 개각이 소폭에 그치면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유임되는 것으로 귀결됐고, 이는 이명박 정부의 기존 정책 프레임이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강 장관의 유임은 경제 정책이 언제든 고환율 수출 위주 성장 지향 정책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대통령의 내심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강 장관은 3일 언론 인터뷰에서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해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의 세금 감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가 다시 해명자료를 내는 등 곤욕을 치렀다. 또 같은 날 인터뷰에서 ‘대운하 정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다시금 드러내는 등 좌충우돌하고 있다.
당국이 환율 방어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강만수식 경제정책이 강건함을 방증한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강 장관이 익숙한 관치위주,성장위주 정책보다는 내외적으로 ‘안전 드라이브’가 주문되고 있다. 더욱이 그가 그간 구사해온 외환정책 등도 80년대에 통용되던 방식이라는 지적도 있어 변신과 업그레이드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 장관을 위시한 경제사령탑은 무사안일 상황이 아니냐는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침묵보다는, 정책적 고민과 변신을 계속하고 있다는 비전 제시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디스가 지난 6월 21일 이미 동아시아 각국에 “외환보유고를 팔아 치우는 실수를 하지 말라”면서 경제위기에 대비한 ‘안전 드라이브’를 당부한 것은 경제 회복까지 ‘장기전’을 각오해야 할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즈에도 최근 “인플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는 볼프강 몬초의 칼럼이 실린 바 있다.이미 미국 언론조차 “고통의 터널이 반 이상 남았다”고 표현하는 등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들어선 것이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사령탑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대응하고 있을 뿐 철학이 없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안전 드라이브로 환승했다는 신호는 차치하고라도, 거시적인 전망을 제시해 적어도 정책실패까지 겹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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