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올해 증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기업공개(IPO) 시장까지 이어질 정도로, '역대급'이란 수식어로 가득 찬 한 해를 보냈다. 조 단위 대어가 줄상장하며, 연간 누적 공모규모가 20조원을 넘어섰다. 그렇다고 마냥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할 순 없었다. 크래프톤(259960) 등 일부 새내기주의 약세가 공모가 거품 논란에 불을 지폈고, 주관사는 따가운 눈총에 시달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장한 공모주는 총 115개사(스팩·코넥스 상장·재상장 제외)로 지난해 대비 20개사가 증가했다. 27일 기준 누적 공모금액은 20조5240억원으로 전년(4조7000억원)대비 4배 이상을 기록했다. 종전 IPO 최대 공모금액을 기록했던 지난 2010년(10조1453억원)과 비교해도 2배 이상 높았다.
◆크래프톤 등 1조원 이상 6개 기업, 증시 대거 입성
올해 IPO 시장 규모 확대의 원인은 대어급 공모주 입성에서 찾을 수 있다. 1조원 이상 공모에 성공한 새내기주만 해도 6개 기업에 달했다. 그 중 △크래프톤이 4조3098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컸으며 △카카오뱅크(323410) 2조5526억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SKIET) 2조2460억원 △카카오페이(377300) 1조5300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 1조4918억원 △현대중공업(329180) 1조800억원 등을 기록했다.
이들 모두 상장하자마자 코스피200에 편입하며, 대어임을 입증했다. 특히 크래프톤은 지난 2010년 4조8881억원을 기록했던 삼성생명(032830) IPO에 이어 단일 공모규모 2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덩달아 청약증거금에서도 기록이 쏟아졌다. 상반기 SK바이오사이언스가 청약증거금 63조6198억원을 끌어 모으며, 최고 기록을 썼는데, 불과 2개월 만에 SKIET가 80조9017억원을 모아 역대 최고 기록 타이틀을 가로챘다.
대형 새내기주는 화려한 증시 입성과 동시에 곧바로 대장주로 직행하기도 했다. 지난 8월 상장한 카카오뱅크는 전통적 금융대장주인 KB금융(105560)을 상장 첫날부터 밀어내고 왕좌의 자리를 꿰찼다. 지난 27일 종가 기준 카카오뱅크(28조1769억원) 시가총액은 KB금융(23조5763억원)보다 4조6000억원의 높은 수준이다. 이는 코스피 전체로 봐도 시총 11위 수준이다.
게임 업종에서도 크래프톤이 상장과 동시에 엔씨소프트(036570)를 밀어내고 대장주에 올랐고, 조선주에서는 현대중공업이 모회사인 한국조선해양(009540)에 앞섰다.
◆77개 상장사 '따상' 불발…'공모주 투자 불패'는 옛말
역대 최고 수준의 IPO 호황을 기록했던 만큼 공모주 수익률도 높았다. 지난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92개(스팩·재상장 제외) 종목의 공모가대비 현재 주가 평균 수익률은 45.5%에 달했다.
종목별로 살펴보면 메타버스 관련주인 자이언트스텝(289220) 주가가 공모가(1만1000원)대비 10배 이상 오르며 독보적 1위에 올랐으며 △지오엘리먼트(311320) 371.5% △맥스트(377030) 338.7% △나노씨엠에스(247660) 322% 등도 큰 수익률을 기록했다. 대어급에서도 선방한 종목이 많았다. SK바이오사이언스 283.1%, 카카오페이 117.8%, 현대중공업 79.1%, SKIET 67.6%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상장 초기 주목이 유지되지 못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43개 상장사의 주가가 상장 후 일주일 이내에 최고점을 찍고 내려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가치투자에 초점을 맞췄던 과거 IPO가 투자와 달리 단기차익을 노린 투자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3개 종목이 상장 첫날 100% 이상 수익을 기록한 데이터는 이 같은 분석에 힘을 더한다.
그러나 항상 투자자의 기대처럼 성공적 데뷔만 한 것은 아니다. 거래소 분석에 따르면 77개 상장사는 '따상(시초가가 공모가 2배를 기록 후 상한가)'을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 '공모주 투자 불패'란 신뢰가 만연하게 자리하며, 따상은 곧 '따 놓은 당상'이라 평가해 왔으나 이 같은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향후 IPO 열기는 다소 식을 수 있어, 올해 기록한 '최대 청약증거금' 기록은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투자자 대다수가 공모주에 대해 테마주처럼 맹신하며 접근하는 경향이 높은데 이는 가치투자와 거리가 멀다"라며 "공모가의 적정 여부를 판단한 뒤 가치투자를 하려면 상장 3~4일의 주가 변동을 파악한 뒤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크래프톤 공모가 거품 논란 점화…업계 "기업가치 평가 주관 증권사 역할 중요"
기대감에 공모주에 청약한 개인투자자가 실패를 겪으며, 고평가 공모가 논란을 겪기도 했다. 개인투자자는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증권사의 평가기준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하반기 상장한 크래프톤 공모가가 거품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난 8월 크래프톤 공모주 일반 청약 당시 개인투자자가 서울 증권사 창구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지난 6월 크래프톤은 첫 증권신고서 제출 당시 비교 기업으로 월트디즈니와 워너그룹뮤직 등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를 포함했다. 크래프톤은 게임을 배경으로 단편영화를 만들고, 캐릭터 사업을 하는 등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콘텐츠 사업을 하기 때문에 이들 기업과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히트작이 '배틀그라운드' 1개에 불과한 크래프톤이 세계 IP 시장을 주름잡는 디즈니와 워너뮤직과 비교대상이 되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원인은 기업 가치평가 시 동종업계의 PER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게임기업이지만 광범위하게 콘텐츠 기업으로 묶게 되면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게 크래프톤의 기대였을 것이다.
여러 논란 속에서 금융감독원의 공모가 정정 지시를 거쳐 공모가 49만8000원에 IPO를 진행했지만 일반 공모청약에서 7.8대 1의 경쟁률에 그치며 투자자에게 외면을 받았다. 27일 현재 크래프톤의 주가는 45만500원으로 공모가에 못 미친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업 가치 산출에 대한 논란을 해결하는 역할을 주관 증권사에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관계자는 "주관사가 공모가를 책정할 때 가치 측정에 대한 변수적용을 재량껏 한다"며 "즉, 주관사 마다 제각각인 가치 측정 모델이 공모가 책정 기준이 되며, 투자자는 여기서 산출된 공모가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 시스템에 대한 투자자 불신 해결을 위해 반드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공모가 고평가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내년 IPO 시장 열기는 여전히 뜨거울 전망이다. 역대 최대 규모인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해 △현대엔지니어링 △컬리 △CJ올리브영 △교보생명 △쏘카 등 조 단위 IPO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나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에도 올해 버금가는 상장 풍년이 예상된다"며 "내년 상장이 거론되는 기업 중 예상 기업가치가 1조원을 상회하는 기업만 13곳으로 2021년의 11개보다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