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초선에 비례대표인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와 그 정책 태도를 '한센병'에 빗대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말단 신경이 마비돼 수지 탈락 등 다양한 부작용을 겪는 병으로, 일명 '문둥병'으로 알려진 게 바로 한센병.
심한 표현이라는 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및 민주평화당 등 야권 일각의 지적이지만, 한국당에서는 문제를 빨리 수습하는 데 뜸을 들이고 있다. 일부 요구처럼 높은 수위의 대처와 사과(민주당 논평에서는 '석고대죄' 등을 거론했다)를 즉각적으로 할 뜻이 한국당에겐 없어 보인다는 것.
오히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7일 오전 민주당 등의 한센병 발언 반발에 대응해 "자기들에게 불리한 용어는 일반인들에게 확산되기 전 극우가 사용하는 나쁜 용어라는 프레임을 씌어 막으려는 의도"라고 논평했다. 그는 "이것이 전체주의의 시작이고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이라며 에둘러 김 의원 발언 지지에 나섰다.
왜 그럴까? 일명 '소득주도성장'에 청와대 측이 반성과 속도 조절 등을 단행할 뜻 대신 '족보 있는' 이론이라며 방어에 나서고, 향후에도 정책 기조를 대체로 고수할 것이라는 신호를 여럿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당의 거부감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경제 전반을 중추 신경부터 말단 신경까지 모두 서서히 망가뜨리는 한센병에 문 대통령과 그의 정책 태도를 빗대지 못할 바 아니고, 그런 표현의 자유마저 난타하려는 여권과 일부 야당의 태도에 강하게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이는 향후 경제 정책을 놓고 한국당이 강하게 어깃장을 놓는 식으로 청와대 등에 맞설 가능성을 높여 더욱 주목된다.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부진한 경기를 되살릴 재정 확대 투입 논의 전반에 반대표를 던질 수 있는 것.
이런 한국당의 추경 난도질 가능성은 이론적으로도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특히 최근 정부와 여당 사이에서 추경 정당화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이 같은 강경함과 자신감을 피력하는 한국당의 거친 태도에는 여러 정책 지표와 전문가 전망 등 '대세'가 자신들에게 있다는 믿음도 한 몫을 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6일 "단기 재정 투입으로는 구조적인 저성장세를 탈출하기 어렵다"는 고언을 보고서 형식으로 내놓은 게 좋은 예다.
KDI는 근래 문재인 정권의 경제 인식에 대해 여러 차례 더 강한 우려 신호를 보내는 식으로 활동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적어도 다음 정부 때, 문재인 정권에 무책임하게 부역하거나 침묵으로 동조했다는 점을 확고히 면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도 있지만, 순수하게 학자적 양심으로 보고를 이어가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는 해석이 더 힘을 얻는다.
다만 16일 보고서의 경우만 놓고 보면 확실한 반발 기류가 국책연구기관인 KDI에서도 조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같은 날 문 대통령이 추경 통과를 촉구하며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정계에 던진 터에 경제계에서 국책연구기관이 반대 의견을 내놓은 것.
대략의 정치적 스케쥴 등을 고려하고 파악해 뒀을 것임을 염두에 두면, 정권의 방침이나 레토릭 발표를 모르고 던진 게 아니고 정부의 추경 강조에 작심하고 반대표를 띄울 준비를 차곡차곡 해 뒀다 터뜨린 것으로 풀이된다.
KDI 보고서의 메시지는 추경 필요성과 정당성을 강조한 문 대통령과 사뭇 결이 달랐다. 권규호 KDI 연구위원은 우선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하락 추세를 우려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생산성(총요소생산성)이 차지하는 기여도는 2001~2010년 연평균 성장률(4.4%) 중 1.6%포인트였지만 2011~2018년(3.0%)에는 0.7%포인트로 뚝 떨어졌다. 생산성이 낮아진 만큼 평균 경제성장률 추락도 분명히 예측 가능하다는 것.
보고서는 지속적인 제도 혁신으로 경제에 대한 생산성 기여도가 높아질(2010년대 0.7%포인트→2020년대 1.2%포인트) 경우 2020년대 한국의 성장률은 연평균 2.4%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2020년대 성장률은 1.7% 수준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최근 수년간 지속되는 저성장 국면은 세계경제 둔화 같은 일시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갈수록 생산성이 낮아지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지적이다.
보고서는 또 이를 탈피하려면 '경기 살리기'를 위한 재정 확대보다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각종 정책 단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KDI는 △기업규제 △노동규제 △금융제도 △국제무역 자유도 등의 제도 개혁이 더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한센병처럼 경제 전반을 좀먹는다는 공세가 정치권은 물론 연구자들 입에서도 나오고 있는 셈이다. 직접 '문재인=나라를 좀먹는 한센병'으로 공격하는지 그게 무례한지의 논란보다 사실상 표현만 다를 뿐 이심전심으로 우려 공감대가 높아지는 것을 어떻게 수용할지 청와대의 다음 수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고로 권 연구위원은 "1년 정도의 단기간만 보면, 재정으로 성장률을 높이는 정책까지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이런 정책이 반복될 경우, 구조적인 변화를 끌어내기보다는 재정에 부담만 가중시킬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한 해까지는 어떻게 기존 정책 고집을 받아 넘길 펀더멘탈이 우리 한국에겐 남아 있으나, 그 뒤는 안 된다는 '골든타임 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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