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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식 정치 확장판 도모하는 문재인-천정배

날카로운 충돌 불사해 주변과 불편함 겪기도…원칙·소신 중심주의 한국정치에 공급할까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4.06 11:22:16

[프라임경제] 5일 법리 해석면에서 묵직한 발언들이 정치권에서 연이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이 경호처에서 이희호 여사 관련 업무를 경찰로 이관해야 한다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주장을 경호처가 수용하려는 데 제동을 걸었다.

경호처장이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 예외적으로 경호에 나설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 것을 활용하라 짚어주면서, 혹시 적용 무리수 논쟁이 붙을 수도 있으니 법제처의 유권해석도 받으라고 제언했다.  

행사에 같이 참석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보는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천정배 의원. ⓒ 뉴스1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도 5일 아침 개헌 정국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제기했다.

그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개헌 추진 과정에서 국민투표법을 국회가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국민투표법을 고치지 않으면 개헌 등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임 실장은 이미 지난 번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위헌 상태에 빠진 국민투표법조차 개정하지 않으면서 국회 독자 개헌안을 언급하는 건 모순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런데 천 의원은 개헌 국면에서 "이 문제는 부수적일 뿐"이라고 임 실장의 발언 상황에 대해 일갈했다.

5일 '출발 새 아침' 라디오 방송을 통해 천 의원이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절차적 문제를 통한 국회 압박으로 볼 수도 있고, 대통령발 개헌안이 이미 기정사실인 양 오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 등 일각의 우려를 잘 반영했다는 진단이 따른다.

한편 꼭 천 의원의 강력한 비판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6일 아침 문 대통령은 국회의장 및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는 식으로 국민투표법 개정 촉구를 요청하는 추가 움직임을 보였다. 

톱다운 방식으로 큰 틀 접근

이런 맥락에서 보듯 두 정치 지도자는 대단히 강력한 의지와 논리 자신감으로 현 정치 상황을 보고 있다.

상대방의 일처리에 문제점을 찾아 이 불만을 강경한 어조로 표출했다는 해석들도 이들 발언에 각각 나오기도 했지만 거친 언사로 '거리의 정치'를 하려는 일부 운동권 출신 정계 인사들의 기류와는 결이 다르다.

두 정치인은 공교롭게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을 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변호사 시절부터 부산에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인연이 있다.

천 의원은 무명 정치인 '노짱'의 존재와 의미를 발굴해 제도권 정치에 안착하게 도운 인물이다. 법무법인 해마루를 이끌었던 그는 국회에 진출했고 참여정부에도 합류, 한때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물론 이런 인연의 공통분모가 있다고 둘 사이가 원만한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노사모 계열의 정통 라인이 자기 지지층으로 흡수, 변화되는 국면에서 수혜를 봤다면 천 의원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추진 반대를 위해 단식을 불사하는 등 이미 노 전 대통령 생존 시부터 각을 세웠다.

부산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문 대통령과 호남정치의 부활을 꿈꾸는 천 의원의 입장이 다르기도 하다.

실제로 문 대통령 등에 반발, 일부 정치인들이 이탈하고 결국 국민의당을 만들 때 갈라선 인원 중 하나로 천 의원을 저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이 문제는 호남 구태 정치인들의 공천 배제 반발로 조명됐으나 전체 그림을 아우르지 못하는 해석론이라는 반론이 있다.

그런 점에서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다르니 특정 문제를 놓고도 해석이 엇갈리는 게 아니냐는 정치적 이해관계론 설명도 분명 유효하다. 다만 이들은 각자 자신이 보는 해석 관점에서 이런 점은 문제라며 공격 혹은 방어에 나서는 것.

특히 근래 유행하는 판례 중심 영미법 학습론 대신 독일법 중심으로 공부한 세대인 이들은 사례를 맞추는 귀납적 해석이나 사례나 작은 부분에서 전체 해결을 찾아올라가는 바텀업 사고관보다 해석의 근거를 찾고 일에 적용하는 톱다운으로 풀어내려가는 데 익숙한 세대다.

같은 법학을 공부한 주요 인사 중에서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발언한 것과 그림이 다른 게 그래서다.

공통적인 생각부터 먼저 해결하고 이견은 나중에 정리하자는 일명 구존동이(구동존이라고도 함. 중국 저우언라이가 말하면서 널리 알려진 구동존이는 중국 외교정책 기본전략으로 회자)를 그는 제언했다. 조 수석은 비법조인 출신 순수 법학자로 입각했고, 미국 유학파다.

정명사상, 자칫 잘못하면 적 만든다?

이런 해석론과 사고 잣대와 무관치 않은 게 정명 개념이다. 모든 것에 자기 이름이 정확히 붙어야 한다는 개념인데, 유교식 정치 관념에서 가장 중요한 관념이다. 그로 인해 작은 일로도 명분 싸움이 붙고, 때로는 이것이 변질돼 상대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다는 극한적 대립의 정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런데 법학적 관점에서도 정명 개념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문 대통령은 더러 이런 모습을 보여왔다. 이희호 여사 경호 갈등에서만이 아니라 종종 그의 언어에 대해 어렵다는 논의와 고집을 세운다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됐던 게 그래서라는 풀이가 가능하다.

한 정치권 관계자가 '변호사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문제점'을 거론한 것이 언론 보도로 회자된 적도 있고, 상대와 타협이 안 되는 것, 때로 과도한 정의 내리기에 일부 언론의 악의적 해석 빌미를 주기도 한 것 등 다양한 문제점이 여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운명이다' 출판 무렵까지 본격적 정치 행보를 망설인 것처럼 정치를 하기 싫어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개입하게 되거나, 혹은 정치에 몸담아도 보스 정치를 혐오하고 의리 문제에 초연한 상황 등도 이와 무관치 않다.

더욱이 '사람'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은 갈등을 불러오기도 한다. 문 대통령의 정치 가담이 늦어진 문제에 대해 비판과 원망이 쏟아졌던 것이 그 예다.

'원조 친노' 거물 정치인이었던 염동연씨는 2015년 여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 등 일부 인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내용은 심각한 대목이 많아 아예 '노무현 정권의 첫 민정수석 문재인, 그게 제일 문제였다'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좀 지나친 평가가 나오는 건 개인 간 갈등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정치적 차원에서 인원 차출이 급할 때 도움을 거부하는 명분론은 혼자만 살겠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천 의원의 경우도 안산에서 오래 정치를 하고 송파에서 정치적 가능성을 타진해본 후에 광주 서구을로 내려가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국민의당 이탈 여부를 둘러싸고 당시 광주시의원 등 측근들이 실망해 떠난 아픈 기억이 있는 것.  

◆공들인 정치 과제, 정략적 행보·차별화 평가가 관건

그런 점에서 적잖은 정치인으로서의 약점도 가졌지만, 이들은 여전히 격변의 한국 정계에서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다. 장수 모델로 분류할 식견이나 정치적 경험도 쌓았고, 비중 측면에서도 대단히 큰 의미다.

지방선거와 관련한 선거구 조정 문제, 일명 4인 선거구 대 2인 선거구 갈등에서 천 의원이 발언한 내용이 소수파 정당임에도 널리 회자되는 상황이 좋은 예다.

천 의원은 독자 신당을 구축하려다 국민의당 추진 세력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후 일부 보수파와 결합하려는 안철수 의원 세력에 반발, 민주평화당으로 갈라섰다. 안철수 라인 정치인들은 자유한국당 탈당파 보수정치인들과 새로 바른미래당을 꾸렸다.

2015년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천정배 의원. ⓒ 뉴스1

천 의원은 최근 2인 선거구가 대폭 늘어난 것에 대해 '정치 개악'으로 규정하며, "더불어민주당의 폭거는 소탐대실로 적폐세력인 자유한국당의 부활을 돕는 역사적 과오이자, 실책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오명을 남기지 않고자 민원성 현안 대신 객관적으로 평가받아도 문제가 없을 아이템, 그리고 오래 공을 들이는 큰 이슈에 집중하는 경향도 이들 두 정치인 사이에는 발견된다.

경제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과 달리, 문 대통령은 경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사람중심 경제 구상에 골몰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경제 등 분배와 창조성을 겸비한 경제 성장 및 나눔의 틀을 그리고 있는 것.

문 대통령의 이런 경제 구상은 소득주도 성장 아이디어가 아직 큰 규모의 나라 경제에서 실제로 가동된 성공사례가 부족하다는 우려는 불가피하지만, 적어도 좌파식 구상이라는 비판에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 안목을 갖췄다.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의료보건 정책 대수술과 함께 양대 기틀을 내세워 한국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올 구상으로 기대와 우려를 한 데 받고 있다.

천 의원 역시 여성과 인권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비동의간음죄 신설 추진이 자칫 미투 열풍에 피로 현상을 느끼는 일부 남성층에게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이슈임에도 꿋꿋하게 이번에 추진한 게 그 예다.

제주도민의 한을 풀어준 청와대의 의미 있는 행보가 눈길을 끈다.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 ⓒ 뉴스1

지역 현안을 공들여 검토, 추진한 케이스로는 서촌호수 관련 7억원 특별교부세를 얻어낸 예가 꼽히는데 광주시 부근에서 이 같은 급의 이슈에 이런 치밀한 추진과 재원 규모의 성공이 일어난 예는 찾기 드물다.

전두환이 주는 판사 임명장을 도저히 받을 수 없어 변호사로 바로 개업을 했다던 정치인과, 여태 사태인지, 학살인지 제대로 정의도 없는 실정인 4·3에 이름을 정립해줄 때라는 문제 제기를 하며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사과 메시지를 전달한 대통령.

이들 두 지도자들의 행보는 같은 법조인 출신이어도 총명하긴 하나 당내 이익에 대한 충성과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대변되는 검사 출신 정치인들의 표준적 이미지와 상당히 다르다.

참고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검사 출신이긴 하나 전형적 틀에선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이들 둘과 오히려 약간 더 가깝다. 크게 봐서 문-천, 넓게 봐서 문-홍-천의 수혈 효과가 한국 정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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