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직설적인 협상 전략 구사가 이번 아시아 순방길에 화제가 되고 있다. 정통 정치인 출신이 아닌 사업가적 기질이 만든 그림이라는 풀이도 가능하지만, 무엇보다 자유무역주의를 해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미국의 각성과 피로 현상이 짜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 자체를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은 아시아 및 태평양 전략에서 충실한 파트너 역을 자임해 온 일본을 상대로 "무역 적자를 개선해야 한다"거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는 옳지 않은 선택"이라는 등 독설을 날렸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당장 불편함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불상사는 피했지만, 70억달러 상당의 무기 수출 선물을 확보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기고 있다.

달러화와 위안화 다발을 매만지는 금융 관계자.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와 협상, 일본의 움직임 등을 감안해 역내 경제질서 흐름을 탈 필요가 높다. ⓒ 뉴스1
사실 TPP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경제 구도로 꼽혀 왔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이 같은 TPP를 걷어찬 후 재가입 가능성마저 이번 순방에서 일축해 버려, 사실상 일본 주도로만 TPP가 이뤄질지 전망이 밝지 않다.
이번 10∼11일에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TPP 회생을 타결짓기 위한 노력이 이뤄질 예정이다. 중국에 대한 견제를 희망하는 일본이 TPP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가입국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어떤 결론을 낼지 단정하기 어렵다.
한때 세계 최대의 경제공동체 탄생을 예고했던 TPP의 현실치고는 허망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사정을 즐길 입장도 아니다. TPP 미가입이 굳이 불리하지만은 않은 상황이라 해도 이런 TPP 몰락의 어부지리를 중국이 모두 챙기는 블랙홀 현상도 우리에게는 유익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움직임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실제로 중국은 막바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띄우기를 진행한다. 중국 언론은 리커창 총리가 12∼16일 열리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기간에 열리는 RCEP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RCEP 정상회의 개최 사실을 확인하며 대대적인 홍보와 힘싣기를 한 것이다.
이 일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2박3일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난 뒤가 되므로, 사실상 '트럼프-시진핑 대화'를 통한 아시아 안보 및 경제 협상의 개괄적인 그림을 받아보고 RCEP 공략을 나서는 셈이기도 하다.
중국은 북한 처리 문제에서 어느 정도 협력을 하는 대가로 양국 무역의 윈윈을 어떤 식으로 보장받을지 미국과 줄다리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RCEP 협정이 발효되면 총인구 30억명, 전 세계 GDP의 1/3을 차지하는 경제권이 만들어진다. RCEP에 미국과 일본은 빠져있으므로 한때 중국을 견제하려 했던 TPP 구상에 대한 최종적 승리로 평가될 수도 있다.
하지만 TPP가 난항을 겪는 이상으로 RCEP 역시 많은 참여국들의 이해관계가 상이하다는 점에 발목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구상하는 '일대일로(새 실크로드 구상)'을 돕는 도구인 RCEP에 적극 동참하는 게 참가국에 반드시 득이 되는 해피엔딩이 될지 회의감 역시 높아지고 있다.
시진핑 2기 체제 완성으로 열린 장기독재 체제의 문제, 아울러 미국과의 사드 갈등 와중에 한국 등 주변에 보복과 화풀이를 하는 중국 외교의 거친 태도가 확인된 점 등도 부정적인 역풍 요소다.
일본으로서는 TPP의 추진과 RCEP의 난항이 가장 유익하겠지만, 우리로서는 기실 두 가능성 모두가 일정한 시간을 두고 지연되는 게 낫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을 풀기 위해 이른바 3불 약속을 했고, 과감한 미구간 무기 구매 지출을 감수하는 등 샌드위치 신세가 돼 있다.
그렇다고 국내 경제 사정이 수출을 모두 포기하고 내수 중심으로 먹고 사는 데 매달릴 정도로 확고하지도 못하다.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사람중심 경제'의 소득주도 경제나 혁신경제 등의 선순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려면 시간이 더 요청돼 수출 위주 대기업 경제를 당분간 운영해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미국이 3불 정책에 대해 양해를 하고 넘어간 양상이지만 꼭 이것이 완전히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도 있다.
결국 미국이 냉전 당시와 같이 우방국들에 일정한 편익을 보장해 주던 시기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실 냉전 중에도 미국은 독일과 일본에 플라자합의라는 팔 비틀기로 고통 감수를 요구한 전력도 있으므로, 오히려 트럼프 정부의 입장은 솔직한 민낯이 드러난 것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국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아는 인자한 대국이 아니라는 점도 나날이 명확해지고 있다.
일본이 TPP 무산과 트럼프 짝사랑의 사실상 실패 국면에서 RCEP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을 우리도 배울 필요가 그래서 높다. 양자 모두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필요한 경우 올라탈 준비나 나중에 이 구도에서 배척될 때의 플랜B는 무엇이 될지 등 펀더멘탈 강화와 전략 다양화가 주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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