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장판파(長阪坡)를 혼자 수비하며 적을 도륙하는 '삼국지연의' 속 장비의 기상.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를 바라보는 여당의 속내는 마치 용맹한 장수 장비를 바라보는 적군의 시선과 흡사할 수밖에 없다.
국회 상임위원장들은 대체로 법률이 부여한 직권에 따라서만 정확히 업무를 추진한다는 태도지만, 상임위원장의 회의 진행권은 사실상 대단히 막강하다. 더욱이 기획재정 문제를 소관업무로 다루는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의 경우 더 그렇다.
예를 들어, 기재위에서는 현재 궐련형 전자담배의 담뱃세를 올리는 문제가 걸려있다. 조경태 기재위원장의 반대로 급제동이 걸렸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기재위는 8월23일 전체회의를 열어 궐련형 전자담배의 개별소비세를 일반 담배 수준으로 올리는 개별소비세법 개정안(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 법안 중심의 대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여야 만장일치로 이뤄진 기재위 조세소위원회 합의가 위원장 반대로 하루 만에 뒤집어졌다. 28일 열린 전체회의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담뱃세 인상에 비우호적인 의사진행이 힘을 발휘했다는 해석을 들을 수밖에 없다. 여당이 기재위의 진행 길목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현재 법인세 인상 문제 등 현안에 목마르기 때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안 안건이 이번 가을에 첨예한 여야 간 대결 구도를 형성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조 위원장은 현재 자유한국당 소속이지만 '원조 친노'로 한때 현재의 민주당과 한솥밥을 먹던 처지였다. 그의 경륜과 소신이 한때의 친정에 대단히 뼈아프게 작용하는 점은 이번 가을 국회의 주요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
조 의원은 4선의 관록을 쌓는 동안 '서민정치' 키워드를 자기 정치의 꾸준한 모티브로 삼아왔다. 전·월세 상한제 추진, 전기세 누진제 등급 단순화 등 다양한 입법 활동을 해왔다. 사법시험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고 관련 법안을 추진했던 것도 부자학교와 특혜시비로 얼룩진 로스쿨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흙수저 보호'를 꾀한 결과로 읽힌다.
궐련형 전자담배 문제에 비추자면 서민증세 우려에 입각한 판단임을 알 수 있다. 여권의 법인세 인상 추진에 반대하는 것 역시 현재 각국의 정책 맥락과 추세에서 볼 때 우리나라 일자리를 줄이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
◆톱다운 정치의 소신, 법인세 태도 전환 이해는 가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맥락을 잡고, 이를 위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는 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저런 입법을 필요에 따라 실용적으로 처리하다 보니 어떤 패턴이 형성되고 전문성도 날로 성장하는 '바텀업 의사진행'보다는 주제에 따라 쾌도난마하는 '톱다운 판단방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옥의 티랄까 문제가 있다면 확고한 주제와 입장을 정하고 밀어붙이는 만큼 다른 문제와의 절충이나 전체적 맥락에서의 마리아주(궁합) 등을 배려하는 데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독선의 정치학으로 빠질 수 있다거나 자가당착 혹은 모순 우려를 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지만, 그는 2011년 8월만 법인세 인하 주장을 하는 경제 단체들에게 미국의 부자 워런 버핏을 배우라고 호통을 치던 인물이었다. 그는 "감세정책의 이득은 대기업에 돌아가고, 그 부담은 국민이 지고 있다. 국가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부유층 증세를 주장하고 있는 워렌 버핏을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옛 민주통합당 행사에서 나란히 선 문재인 현 대통령(왼쪽)과 조경태 현 자유한국당 의원(오른쪽, 국회 기재위원장). ⓒ 뉴스1
법인세를 한층 더 하향처리해 주자, 낮은 선으로 유지해주자는 입장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낙수효과 기대에 입각한 대기업 중심 정치다. 아울러 법인세 부담을 기업들에게 지우지 않아도 쓰임새에 필요한 부분을 충당가능하다는 전제가 서야 옳은 정책방향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한눈에 보는 대한민국 재정 2016'에 따르면 조 위원장이 이 같이 태도를 바꿀 원인이 크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이 자료에 의하면 추경 예산 편성 등으로 인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의 재정적자 규모는 약 95조원에 이른다. 이는 MB정권 5년 동안의 재정적자 약 98조원에 이미 육박한 것이다. 아울러 참여정부 5년 동안 기록된 약 11조의 9배다.
특히 참여정부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4.48%로, MB 정부 5년간 3.2%, 박근혜 정부 3년간 성장률 2.9선% 대비 더욱 높다.
◆저축은행 사태 와중 포퓰리즘 논란? 순수성·추진력 '타의추종 불허'
결국 현재 대기업 중심 경제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의견이 득세하고, 국가의 재정 현황도 친기업 경제정책으로 감내할 상황이 아니다. 조 위원장이 애초 법인세 인상을 주장할 때보다 상황이 더 나빠진 셈이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손쉽게 노선전환을 한 것이 돼 자신의 논리 구조에 따라 이를 외면하고 역행했다는 반대파의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런 톱다운식 정치관이 빚은 '흑역사(부끄러운 구석, 감추고 싶은 일을 말하는 용어) 논란거리'라면 저축은행 사태 수습 과정의 포퓰리즘 논란을 들 수 있다. 2011년 한국을 떠들석하게 한 저축은행 문제는 부산저축은행 등에서 예금자보호가 되지 않는 상품을 서민들에게 불완전판매한 사건이다.
이에 대처하고자 특별위원회 구성 등 국회가 발빠르게 대응해 서민피해를 어루만지려 노력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 다만 이 사안 처리 와중에 조 위원장 등 정치인들은 예금자보호법 구조를 전면 초월한 2억원 보상안 등 특별법 추진 무리수를 뒀다.
정부 당국의 강력한 반대와 여론의 비판에 유야무야됐다. 다만 조 위원장은 이때의 정책 공부 경험을 살려 예금자보호액을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리자는 다른 안건을 추진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다시 돌아가 궐련형 전자담배 문제를 볼 때도 이런 톱다운 정치 뚝심에 대한 우려가 없을 수 없다. 의사진행권은 각 상임위의 위원장에게 있고, 상임위 내 각당 간사와의 협의에 따라 처리한다는 명분도 있다. 그러나 이를 십분활용해 신중한 처리를 매번 강조하거나, 일부 의원들로부터 의사진행 편파성 지적을 받을 정도로 진행한다면 절차적 정당성 궤도 이탈 염려까지 연결된다.
정부의 조세 공백 우려와 발의한 정치인의 논쟁거리가 아직 있으나 이런저런 이유에 따라 빨리 대응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 사유, 조세소위에서 심의를 다룬 의원들의 절충안 필요 공감 등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소신 내지 뚝심의 정치인'과 '우김이' 차이가 종이 한장보다 얇을 수 있는 이유다.
서민세상을 꿈꿔온 원조 친노로 그의 행보는 변화가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문재인정부와 그는 이제 시선을 달리 두고 있다. 이런 관계가 페어플레이와 선의의 경쟁으로 대미를 장식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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