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통적 우방 미국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고,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여전히 불편하다. 중국은 사드 진통으로 관계가 경색돼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도 우리 측 정책에 힘을 흔쾌히 실어주지 않고 있다. 러시아 역시 아직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지난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북방외교'로 대화 채널을 열었지만 여전히 말이 잘 통하거나 살갑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와의 협력을 도모하고, 더 나아가 유라시아 경제공동체(EAEU) 협력까지 추진한다는 일명 '신북방정책' 구상이 이번 정부에서 추진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동방경제포럼 참석을 계기로 신북방정책의 구체적 추진 방안을 제시했다.
◆자원 바탕 웅비 노리는 불곰 등에 올라타
동방경제포럼은 극동지역을 러시아의 경제수도로 개발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이 직접 창설한 것으로, 지난 2015년 1차 포럼 개최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이미 제정 러시아시대에 추구됐던 시베리아개발정책의 종착역이자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군항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 같은 엄숙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에 두고 신북방정책을 제시한 점은 현재 러시아 정부가 '신동방정책'을 내걸고 있는 점에 정서적 교감과 실질적 당근을 제시한다는 양 측면 모두에서 의의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양국 상징 인형을 안고 있다. ⓒ 청와대
러시아는 과거 공산주의 폐지 후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편입되는 와중에, 글로벌경제 상황과 환율 등의 변동에 따라 경제 상황이 크게 부침을 겪는 것을 경험했다. 자원부국이면서도 제대로 위상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제정 러시아의 동방정책에 견줘 한층 확고하게 자국 이익을 가져올 프로젝트로 자원의 보고인 시베리아 일대의 경제 협력 강화 모델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제안은 이런 러시아식 구상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뜻이 있음을 타진하는 것이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양국 정상회담에서 우선 현안인 북핵 제재 문제에 대한 적극적 도움 타진에 일단 푸틴 정부는 선을 그은 상태다.
하지만 과거 경제 협력 등이 제한적인 규모로 추진되고 외교 및 경제 협력 기반이나 정서적 교류 역시 100% 원만히 구축되지는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당장 이런 성공을 기대하는 게 무리라는 점도 분명하다.
우리로서는 냉엄한 국제 현실에서 러시아에 도움을 줄 것은 주고, 우리가 블루오션 개척 대가로 얻을 것은 얻겠다는 비전을 보여줌으로써, '다음'을 기약한다는 인상을 깊이 남기는 정도의 수확을 이번에 거두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밝힌 이번에 동방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천명한 경제 협력 구상 즉 신북방정책은 러시아를 주요 파트너로 하지만 그 너머 구소련 국가들과의 협력도 염두에 둔다. 러시아로서는 동방(시베리아) 개발 더 나아가 구소련권 경제 개발과 협력 강화에 우리가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어 한층 더 반갑게 느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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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경제 전쟁 국면에서도 서로 윈윈 제안한 셈
러시아 신동방정책과 중국 '일대일로'구상 사이에서 한국의 신북방정책이 제 몫을 찾으면서 균형추 역할을 할 가능성도 높다.
신북방정책은 러시아 극동 지역과 중국 동북 3성, 중앙아시아 국가와 몽골 등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체계적으로 활성화한다는 구상이므로, 신동방정책과의 호흡이 잘 맞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은 중국이 현재 추진하는 경제 발전 가능성에 치일 여지가 있는 주변국에 긍정적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는 또다른 의의를 갖는다.
중국은 일대일로 포럼을 통해 현재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 G2 위상을 한층 더 공고히 하려는 생각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일대일로는 육상과 해상에 새로운 실크로드를 건설하려는 구상. 지난 정권 말 사드 논란으로 우리와 관계가 불편해진 중국은 일대일로 문제를 놓고도 우리와 원만치 않다. 일대일로 포럼에 한국을 배제했다가 새 정부 출범이 확정된 직후 전격 초청으로 방향을 급선회한 게 불과 지난 5월의 이야기다.
노력은 하지만 중국이 원하는 대로 전적으로 맞춰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장기적 측면에서 대중국 외교 채널 가동력의 저하를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고질병이 될 수 있는 것. 여기에 러시아 역시 당장은 북한 문제 등에서 외교 채널을 통해 로드맵 공감대를 구축하고 있지만, 중국의 경제 주도 구상까지 전적으로 흔쾌히 따르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많은 동북아국가, 구소련권 국가들의 경우에도 중국의 확장과 독주 현상을 방치할 경우, 경제적 포위를 당할 가능성에 대한 위기감은 존재한다.
일대일로 논의 발전에 뒤쳐지지 않는 견제력을 갖는 수준에서만이라도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 운영될 수 있도록 돕고 그 반대급부를 유용하게 쓰고 싶은 나라들이 많을수록, 우리의 노력도 음양으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북핵 등 외교안보 현안의 조력자로 삼을 수 있는 문제와 별도로, 지역경제 발전과 주도권 이슈에서 한층 긍정적이고 다양한 옵션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정치 이념과 국경에 막혀 잠재력을 살리지 못한 측면들을 극동 발전 추진이라는 측면에서 시도하는 신북방정책과 신동방정책의 컬래버레이션이 시작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우선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의 적극적 도움과 참여 가능성이 주목된다. 우선 대한상공회의소는 러시아연방상공회의소와 한·러 자유무역협정(FTA) 등 양국협력으로 유라시아 경제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문 대통령의 기조연설과 같은 7일 밝히고 나섰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한·러 비즈니스 다이얼로그'에서 한·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의 FTA에 대한 기대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EAEU FTA가 체결되면 주춤하고 있는 양국 간 교역을 비롯해 조선, 수산업, 인프라, 관광 등 극동지역 산업 다각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