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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日 소록도 인권유린 만 100년 재조명 천성래 감독

역사 소재 소설 쓰던 중 외도, 신인 발굴·민족 정기 함양 두마리 토끼 노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05.12 11:30:34

[프라임경제] 소설가 천성래씨가 영화감독으로 변신한다. 그는 1959년생으로 장편소설만 10편을 넘게 남긴 바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고전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 등 역사에서 주제를 찾고 고전을 깊이 연구하며 소설을 썼다. '천추태후'로 월인문학상, '단발령'으로 문예진흥원 창작기금을 받았다.

이번에 메가폰을 직접 잡기로 결심한 것은 다른 작가의 작품에 반했기 때문. 문호준씨의 '군도의 아침'에서 일제시대 나병 환자에 대한 탄압과 소록도에 스민 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견하고 감격, 문 작가와 협의 후 약 2년간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이 작품을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 영화에 관한 연구까지 틈나는 대로 해 결국 직접 맡을 수 있겠다는 작은 용기를 냈다.  

다음은 6월 중 캐스팅을 마치고 9월 크랭크인 예정인 영화 '소록도' 관련 일문일답.

-지난 3월, 전북소설가협회에서 연 세미나에서 '소설의 영화화 방안'을 강의할 정도로 영화 지식을 깊이 쌓았다는 평이 있는데, 비결은?

▲2년의 시나리오 작업 동안 죽은 글, 글로만 읽히는 '레제 시나리오'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수시로 다졌다. 이런 모습을 어여삐 여겼는지, 많은 영화인들과 작가들이 도와줬다. 그들의 배려로 영화 작업 귀동냥, 어깨너머 눈도둑질을 했다. 강의 내용은 내 독창적 내용이라기 보다는 단지 그런 분들의 비법을 내 식으로 요약, 정리한 것이다. 

-왜 '소록도'를 느아르 영화라고 정의하는가?

▲흔히 범죄 영화를 느아르 영화로 부른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계에서 만들어 현재 세계적으로 쓰고 있는 이 단어는 원래 음울한 사회 소재를 다루는 영화 전반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소록도'는 느아르 영화다. 하지만 흥행만을 위해 느아르 영화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천성래 작가가 감독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 프라임경제

독립운동가 출신 나환자가 소록도에서 일본의 생체실험 등 자료를 빼내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고 악질 일본인을 직접 처단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1942년 소록도에서 일어난 일본인 의사 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흔히 영화판에서는 지나치게 어둡고 혐오스러운 소재는 잘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처음 영화화를 결정했을 때, 나병 환자를 조명해야 하기 때문에 과연 잘 되겠느냐는 우려를 많이 내놨다.

하지만 멋진 경찰과 우수에 찬 폭력조직을 다룬 것만 느와르가 아니다. 가혹한 질병에 시달리는 인간의 운명, 제국주의의 식민지 탄압을 다루고 그 와중에 치열한 독립운동도 있다. 그런 점에서 '소록도'는 진지한 느와르 영화다.

-생체실험 등 다루기 어려운 주제가 많았을 텐데, 시나리오화에 특별히 공을 들인 점이 있다면?  

▲2권짜리 소설 '천추태후'를 4년 6개월 동안 쓸 때에도 2년은 자료 수집하고 1년은 그걸 쌓아놓고 다시 공부했으니까, 이번에 유독 애를 먹었다고 하긴 어렵겠다.

다만 일제에 의한 나병 환자 인권유린을 만 100년만에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꼼꼼히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려고 했다. 특히 이런 점을 잘 살리기 위해, 소록도 올 로케이션을 목표로 협의에 나서 일을 성사시킬 각오다.

30년 넘게 글을 쓰면서, 단편 하나를 써도 역사적 흔적을 남기고 철저한 시대적 고증을 깔고 쓰고자 했다. 이번에 감독으로, 시나리오 작가로 변신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대사 있는 배우만 60여 명, 나머지 엑스트라가 1000여 명 투입되나, 이들에게 모두 캐릭터를 부여하려 노력했다.

-무거운 소재에 인원이 많이 등장하면 인물 묘사가 평면적으로, 단편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영화 제작을 위해 수집한 자료들과 이를 녹여낼 예정표를 살펴보는 천성래 작가. ⓒ 프라임경제

▲자료 수집을 열심히 해 놓으면 그 다음은 (저절로) 된다. 자료를 열심히 수집하다 보니, 평소 교류가 있던 일본 학술계 모 단체의 인사로부터 일본에서 이 문제를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걱정섞인 전언도 들었다.

-약간 서둘러 제작에 나선다는 평도 있는데, 올해 이 영화를 제작을 마무리하려는 이유가 있나?

▲일제의 만행은 1916년 소록도에 자혜의원을 세워 100명의 환자를 수용하면서 시작된다. 소록도의 고운 모래를 활용, 고급 벽돌을 찍어 일본에 팔았다. 그 와중에 정당한 임금과 대접은 커녕 노동력 착취와 학대가 극심했다. 나병을 앓다 죽으면 모두 해부를 하는 등 실험과 연구 재료로만 인식했는데, 이것은 당시 나병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퇴치한 국가라는 타이틀을 일본이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환자들간에 임신을 하는 경우 태아를 긁어내 병에 표본을 다수 만들었다.

패망 후 섬에서 일본인 의료연구진이 철수하면서 모두 파괴했지만, 사진 자료가 남아있다. 아직 살아있는 이들의 증언도 있다. 이걸 모두 담았다. 만 100년 만에 널리 이 문제를 고발할 것이다.

아마 이번 작품으로 '찍히면' 나는 다시는 일본땅에 못갈 것이라고 한다. 그 점에 대비해 9월 초순 크랭크인 전에 다음에 하고 싶은 어떤 작품에 대한 자료 조사차, 일본에 사는 친지도 방문할 겸 일본에 들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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