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아르바이트생이 근무 중 괴한의 공격을 받고 살해당해도 개별 편의점 사장과의 고용관계만 강조하며 도의적 책임 이상을 인정치 않는 편의점 가맹본부가 있다. 이 가맹본부는 그 도의적 책임도 자사 홈페이지에 띄운 모호한 사과 팝업공지 하나로 다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100일이 넘게 유가족과 노동문제 전문연구기관 알바노조는 이 가맹본부 '본사'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대치 중이다. BGF리테일(027410), 그리고 CU편의점의 이야기다.
좁디좁은 공간, 각종 업무로 정신없는 환경과 항상 현금이 보유돼 있는 가게 상황, 그리고 졸음과 피로로 인해 특히 야간 흉악범에 대처할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있는 한 아르바이트생의 안전 보장이란 도달 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이는 BGF리테일과 CU편의점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위기 회피 가능성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편의점 인테리어 패턴, 그리고 이를 공급, 관리하는 편의점 가맹본부의 책임은 여전히 중요 이슈다. CU편의점의 경우처럼, 매번 강력 사건마다 좁디좁은 카운터(계산대)로 밀려들어가면 꼼짝을 할 수 없이 가해자(범인)의 수중에 아르바이트생이 떨어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을 '그저 운이 나빠서'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로 인해 강간이나 상해, 살인 등 각종 위기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이는 개별 편의점의 점주가 지는 안전배려의무 이상으로 가맹본부 측이 어떤 형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상식에 부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신제가도 못하면서 동네 안전 책임진다고?
물론 BGF리테일 측도 경산 아르바이트생 살해 사건에 일종의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가맹본부 측은 3월 하순 전국 CU의 안전을 점검하고 환경 개선을 통한 안전 강화 방안에 대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26일에는 경찰청과 손잡고 방범벨 등 안전 도모 대책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경찰청 협력 사업의 결을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 안건은 전면적으로 가맹점 근무 비정규직(아르바이트생)들의 안전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동네 안전에까지 시선을 돌리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안전 문제를 가맹본부 내지 개별 가맹점주가 직원에 대해 보장해야 할 안전배려의무(보호의무)에서 편의점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 전반의 안전 문제로 초점을 흐린다는 의혹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청과 맺은 자세한 협력 사항 내용을 보면, BGF리테일은 전국 1만1000여 개 CU 매장 계산대 결제단말기(POS)와 경찰청을 직접 연결하는 '원터치 신고 시스템'을 구축한다. 매장 근무자가 가장 오래 머무는 결제단말기에 '긴급신고' 메뉴를 추가, 근무자나 손님이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 메뉴를 누르면 바로 경찰청과 CU 고객센터에 신고가 접수된다.
또한 실종 아동 정보를 전국 모든 CU 점포 결제단말기로 보내 해당 아동이 발견되면 점포에서 바로 보호하고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출 계획이다. 한편 심야 시간에 근무하는 경찰관을 대상으로 '편의점 물품 할인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미 BGF리테일은 서울시와의 협력을 통해 심야 시간에 여성 등 약자가 위험을 느낄 경우 편의점으로 대피, 여기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추진한 바 있다.
자신들이 고용한 아르바이트생 안전이 위협받고, 잘못된 인테리어 설계 등으로 위기가 더 고조되는 상황을 해결 못하는 데다 이로 인한 사건에 공식 사과도 하지 않으면서(경산 사건의 경우 유가족과 알바노조는 BGF리테일의 '팝업 사과문'을 제대로 된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역사회 문제에 열을 올리는 것은 일종의 여론 돌리기, '물타기'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훼미리마트 시절 발언…'POS 활용 가능성' 이미 인지
여기서 POS 활용 문제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CU편의점에서 일어나는 각종 강도 사건의 피해가 가중되는 이유 중 하나는 좁은 계산대에 아르바이트생이 밀려들어가면 공격으로부터 방어 행위를 할 여지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경찰청과 BGF리테일이 협력하는 내용을 보면, 간단히 POS에 부가 기능을 넣어 안전 신고 기능을 대폭 강화한다는 것이다.
과거 방범벨 등을 따로 설치하던 것이 상식이었다면, 이 같은 내용은 의심스럽다. 단순히 과거에는 이런 기술이 없었는데 기기 발전으로 이제서야 가능해진 것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기술은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동네 어귀에 있는 슈퍼마켓, 요새 용어로 나들가게들도 이 같은 POS와 신고 기능 강화를 추진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시점이 2011년 11월이라는 것. 당시 중소기업청과 경찰청이 손잡고 나들가게들의 POS 시스템을 개편, 경찰 정보망에 연계해 실종자 찾기 등 긴급정보 전송 시스템을 구축하고, 원터치로 업소 자신이 위기에 처할 경우 신고 가능한 신고 시스템을 깔기로 했다.
물론 이 같은 시스템을 어느 업체나, 반드시 의무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나들가게 POS 추진과 유사한 시기인 2011년 10월 말, 백정기 당시 훼미리마트 사장(BGF리테일은 이후에 훼미리마트 명칭을 버리고 CU로 개편)이 서강대학교에서 특강을 하면서, 이 POS 구축을 통한 안전 강화 구상을 내놓은 적이 있다.
백씨는 학생들에게 보광훼미리마트는 서울경찰청과 손잡고 점포별로 설치된 POS 화면대를 활용해 실종 아이들을 실시간으로 찾아주는 공공 서비스도 도입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당연히 실종 아동 인지와 신고 기능까지 갖출 이 정도 기술력이면 아르바이트생 안전을 위해 방범벨 즉시 신고 기능을 삽입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다는 게 IT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법무부 검찰국장 지낸 홍석조 현 대표도 POS 부실 관리 '공범'
시계를 좀 더 앞으로 돌려보자. 과거 훼미리마트는 무선랜 기반 웹 POS 시스템인 '훼미리마트 차세대 점포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구축, 가동에 들어가 관심을 모았다. 2009년 6월의 일이다.
2009년 내용은 흥미롭다. 당시 구축 기술을 보면, 무선랜 기반의 단말(PDA) 하나로 모든 재고 관리와 발주까지 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구축했다. 일부 언론은 그래서 "편의점 업계는 물론이고 유통업계 전반의 시스템 혁신 모범사례가 될 전망"이라고까지 극찬했다.
당시 훼미리마트(오늘날의 CU, 즉 BGF리테일)는 시스템 개발을 위해 2008년 1월부터 1년여간의 기간을 투자했다.또 POS 교체 비용을 포함, 200억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놀라운 기술력의 내용을 더 들여다 보자. 다기능 PDA 단말로 점장은 물론이고 슈퍼바이저, 영업사원과 본사가 동일한 실시간 데이터를 공유하는 게 이미 이때부터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실시간 판매, 재고 관리는 물론 발주도 가능해졌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이때 200억에서 약간 더 추가 지출을 했다면 안전 신고 기능을 이미 약 10년 전 갖췄을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지난 26일에야 경찰청과 안전 신고 기능 협력 구상을 내놓은 것은 '위선'으로 비판받을 여지마저 있다.
2011년 백씨 서강대 발언이 나올 때도, 2009년 선구적 기술망 구축이 단행됐을 때도 이 회사 최고책임자이자 오너는 홍석조 현 대표,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다.
◆좁디좁은 계산대에서 죽어간 아르바이트생, 제조물책임법 해석은?
다시, 좁은 공간으로 인해 방어를 제대로 하거나 도망치지 못하고 괴한의 공격에 무참히 살해당한 경산 CU 아르바이트생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알바노조는 이를 전통적 민사책임론에 입각해 보호의무, 안전배려의무로 해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인테리어 등을 총괄 공급하는 편의점 가맹본부의 무과실책임, 즉 제조물책임법상 책임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풀 수 있음은 이미 앞의 기사에서 설명한 바 있다.
잘못된 공간 배치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프랜차이즈 계약 실태, 더욱이 이후 가맹본부의 관리 책임 등이 중첩되면 지금의 BGF리테일 측 태도처럼 우리는 책임이 전혀 없다는 식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 오하이오주 대법원에서 내놓은 제조물책임법 판례로 이 같은 책임이 강화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잘못된 설계로 사고가 터진 뒤 이 설계를 스스로 변경한다면 이를 근거로 제조물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게 주 대법원의 입장이다. 이는 전통적인 연방 증거규칙보다 훨씬 강화된 책임을 제조업체 측에 묻는 게 새로운 법적 상식에 부합한다는 점을 밝힌 획기적인 판례다. 이 판례가 나온 뒤 이미 1990년대 후반까지 다른 주의 학자와 실무가들도 이 논리의 흡수와 연구에 열을 올렸고, 지금은 일부 주만 이 오하이오주 논리와 다른 구식 논리를 유지 중이다.
경산 사건의 경우, 가게 내부 구조 변경을 한 점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다.
여기서 이 미국식 제조물책임 논리를 받아들이기 불편해 하는 일부 보수적 법조인들도 우리나라에는 상당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 이미 언급한 POS 기능 강화 등으로 이 좁은 계산대 위험을 대단히 상쇄시킬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결합시켜 이를 다시 판단해볼 필요가 제기된다.
이렇게 겹쳐보면, 아무리 위기에 처해도 CU 아르바이트생들은 최소한의 방어에 필요한 구출 신호를 외부에 내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이미 약 10년 전부터 갖고 있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투자와 효과는 미처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고, 경산 사건 뿐만 아니라 매번 위험 상황에 아르바이트생들이 노출돼왔다.
일각에서는 이번 경산 사건에 대해서도 계산대 안에서 죽은 게 정말 맞느냐며 장소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설사 그렇다 해도 위에서 입증한 각종 책임론이 100% 희석되는지는 의문이다.

경산 살해 사건에 앞서 2013년 벽돌 가격으로 이미 편의점 계산대 위험성은 CU 본사에 보고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은 부산 대연동 벽돌 가격 사건 현장 화면 캡쳐. ⓒ 부산 남부경찰서
아울러 한 사례를 더 소개한다. 2013년 부산 대연동에서 발생한 한 사건은, CU에서 근무하던 한 아르바이트생이 벽돌로 잔인하게 가격당한 경우다.
과연 2009년에 홍석조 회장 등이 재가한 200억 투자 POS 기능 강화는 왜 이런 위험 상황들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을 조기에 구해내지 못하는지, 이 회사의 추가 투자와 기존의 안전 문제를 눈감은 점에 대한 인정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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