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독일에서 유학 혹은 방문교수 생활을 한 법학자들 중에는 주전공 외에도 또 다른 분야에서 책을 펴내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우선 민법학자인 김형배 고려대 교수가 노동법 부문에서도 걸출한 교재를 남겼고요.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분야 연구를 개척한 권오승 교수는 원래 민법을 공부했지만 유학 중에 거대기업들의 독과점 폐해를 규제하는 새 법률 영역에 관심을 두게 돼 외도를 한 경우입니다(훗날 그는 서울대 강의를 잠시 접고,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내기도 합니다).
한편 한국 스포츠법 분야의 선구자인 연기영 동국대 교수 역시 민법과 스포츠-엔터테인먼트법 모두에서 일가를 이룬 경우입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독일에서는 교수 자격 검증을 할 때 박사 학위 논문 외에도 교수 자격 논문을 하나 더 써야 하고, 자신이 가장 잘하고 관심있는 영역을 포함해 최소 세 가지 과목의 강의가 가능한지에 대해 선임 교수들이 철저히 검증을 한다고 합니다.
다만 독일 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면, 막상 한국 대학에서는 이런 식으로 활동하면 다른 분야 교수들과 껄끄러울 일이 많이 생길 것으로 지레 겁을 먹거나, 혹은 좀 꾀가 나서 공부 분야를 줄이고 싶어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흔히 보는 대로 한 분야만 연구하는 데 만족하는 학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아무튼, 100% 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연계전공(?) 분야를 하나 더 갖고 계속 가꿔나가는 일부 교수들 덕분에 학문 발전이 한층 더 풍요로워지는 건 틀림없습니다.
정치인들 중에도 이런 비슷한 경우를 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모두 보통 이상을 하는 국회의원들도 적지 않지만, 어느 영역에서도 특별히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당내 역학관계 등에만 열심인 의원들도 많지요. 이게 상임위원회 활동의 맹점인데요, 자신이 희망하는 영역을 적어내고 그걸 감안해 배정을 하기도 하지만, 유력 상임위에 누구를 넣느냐 혹은 누구를 상임위원장으로 앉히느냐 등등 당 차원의 계산에 따라 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떠밀리듯 상임위를 몇 차례 바꾸다 보면 선수를 많이 쌓아도 특별히 전공이다 싶은 전문 영역이 마땅찮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주전공 하나 개척하기도 어려운 판국에 연계전공까지 두긴 참 어렵겠지요.
20일 한국진폐재해자협회와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등 진폐증 관련단체들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내놨는데요. 그 배경이 눈길을 끕니다.
진폐증은 폐 안에 고운 먼지가 오랜 시간 쌓여 호흡 기능이 망가지는 질병입니다. 대개 어떻게 생기냐면 탄광 등에서 근무하던 이들이 얻고요. 특히 퇴직 후 노환과 함께 발병해 고생하는 경우가 많아 대단히 고통스럽게 투병하다 숨을 거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가난했기 때문에, 석유를 사서 공장을 가동하거나 교통수단을 운영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석탄에 대단히 크게 의존했지요. 그런 시절이 1970년대 내내 계속됐고 1980년대 중후반까지도 채굴이 대대적으로 진행됐습니다. 탄광 매몰 사고 등이 심심찮게 터지고 보도되기도 했지요.
일종의 국가기간산업이었기 때문에, 탄광근로자들이 노동운동으로 자기 권익을 요구하는 데에도 제약이 가해졌습니다. 탄광근로자 성희직씨가 손가락을 자르는 자해 시위로 노동탄압 현실을 알리고 호소한 적도 있습니다(그는 나중에 강원도의회 의원을 거쳐, 정선진폐상담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탄광근로자로 일했던 많은 이들은, 자신이 진폐증을 앓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치권이나 정부에 서운함을 안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제 병들어 산업재해로 치료를 받고자 해도 자꾸 제약을 가하고 대상 제외를 시키려 한다는 불만이 깊기 때문입니다.
그런 갈등은 여전히 해결이 완전히 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민주당 정치인들 여럿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속 개선 검토를 약속하고 실제로 그 약속에 따라 제도 손질을 모색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여러 진폐 관련 단체에서 지지선언 공감대를 형성한 데에는 이런 고마움과 신뢰가 뒤섞여 작용했다는 후문입니다.
사실 이들 국회의원들, 당직자들이 모두 처음부터 진폐증에 전문성을 갖고 있었거나 이 문제에만 매달릴 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 정치인들이 진폐증 처우에 공을 들이고 강원도까지 매번 찾아가고 사람들을 만난 노고는 상당합니다. 원래 하던 일, 잘 하는 일 외에 어려운 이들을 위해 또 하나의 전문 분야를 개척하고 사람들을 위로한 거죠. 그런 점에 대한 믿음이 더 나아가 그 당의 주자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셈이죠.
진폐증 환자, 혹은 그 가족 내지 유가족 표가 단순 숫자 규모상으로 대단히 크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영역에서까지 힘을 보태겠다고 나선 확장성 그리고 그 배경에 다른 유권자집단이 관심을 가질 것을 생각하면 그 수면 아래의 빙산 크기는 작지 않다는 풀이도 나옵니다.
소중한 표를 몰고 들어온 이들 정치인들의 연계전공, 특정 대선후보의 유·불리를 떠나서 이런 일반 국민과 의원 간 피드백 관계가 갖는 의미는 대선 후에라도 규명해 볼 필요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을 연구할 때, 소속 정당이나 계보(라인), 정치적 지향 못지 않게 이런 점도 궁금해할 필요도 적지 않습니다. '의원님, 당신의 연계전공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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