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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각 vs 인용 어느 쪽이든…헌재 결정 뒤 韓 '가지 않은 길' 진입

인치와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 경종…독일식 정당정치 정착 마중물 될 듯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03.09 17:06:51

[프라임경제]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10일로 잡으면서 운명의 시간 오전 11시에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선고는 재판장인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결정 이유를 먼저 설명한 후 최종 결론인 주문을 밝히는 순으로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 이유 중 반대의견이 있는 경우 해당 재판관이 그 판단의 이유를 밝힐 수도 있다. 탄핵 사건의 유일한 선례인 2004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비교해도 소추사유가 더 많아, 쟁점에 대한 치열한 고뇌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시간을 상당히 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헌법이 부여한 권한의 한계, 사실상 1948년 이후 첫 고민

헌법재판소 앞에 탄핵 사건 평결 시간이 게시돼 있다. ⓒ 뉴스1

국회에서 송부한 소추 의결서에 담긴 탄핵사유를 분석하면 Δ최순실씨 등에 의한 국정농단이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인지 Δ(재단 출연 개입 등이) 대통령 권한 남용이 맞는지 Δ언론의 자유 침해를 인정할 수 있는지 Δ세월호 사건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이 묘연한 것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인지 Δ(역시 재단 출연 개입 등으로)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을 비롯한 법률 위배행위가 있었는지 등 다섯 가지가 쟁점이 된다.

이 사안 중 하나가 대통령직 수행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의무 위배인지를 헌법재판소에서는 분석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위의 사유 중에 하나라도 탄핵의 필요성에 도달한다는 점에 정족수를 충족하는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이 모아지면 박 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법에 의해 파면된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국회에서 탄핵소추 의결서가 제출된 이래 92일(선고일 포함 기준)간이나 대장정이 진행될 정도로, 어느 하나도 쉽지 않은 주제들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비선실세 등 이른바 인치(사람에 의한 통치)에 대해 우리 사회가 심각성을 느끼고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됐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제도에 의한 통치(법치)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이번에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기각이든, 각하든 혹은 인용이든 간에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이뤄진다는 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문제가 있었으나 그 정도에 있어서 탄핵에까지 이르지 않는다는 식으로 기각 결론이 나더라도, 정상적으로 임명된 보좌 사스템 밖의 인물들이 정치와 이권 문제 등에 입김을 불어넣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가장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이야기지만, 반대로 우리 사회에서는 실제로 통용되지 못했던 가치가 새롭게 생명을 얻어 역사 무대 위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1948년 이래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 등 제왕적 대통령제 경험을 오래 갖고 있는 한국인들이 뇌리에 새 개념을 새기게 되면서, 앞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이들은 이 같은 한계를 항상 의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단 출연 도모나 비협조적인 언론과 정권에 반대하는 집단,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탄압 등에 대해서도 향후 의미있는 헌법적 해석이 이번에 나옴으로써, 정부 운영과 민간과의 역할 정립면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문제적 행보를 앞으로도 허용하는 선언이 헌법재판소에서 나올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민간의 창의와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정부 역할이 변화되고, 강제성이나 압력 행사 등에 대해서도 원천적인 금지를 명령하는 구체적 법안들이 헌법재판소의 발표 내용을 반영, 후속 작업으로 등장할 여지도 높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정당을 주도하고, 또 집권 이후에도 '원맨쇼'를 하던 체제에 대한 비판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이뤄지면서, 이런 문제적 정치 관행에 대한 염증 역시 높아질 전망이다. 민주투사 출신이었던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역시 이런 후진적 정치 행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때문에 자기 정당의 정치 철학에 투철하고 도덕적인 인물을 청년 당원 시절부터 발굴, 육성해내는 시스템, 그러면서도 정강이 다른 타정당과의 대화와 협력이 가능한 다당제 문화가 가능한 독일식 정당 문화가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이를 도모하기 위한 시스템 정비 역시 빨라질 전망이다. 독일에서 받아들인 헌법재판소 시스템에 의해 이 같은 독일식 헌정 질서의 한 축이 또 수입되는 셈이다.

분열의 정치 당분간 지속? 정당정치 발전 순기능 기대↑ 

물론 조기에 대선을 당겨서 치르게 되면서 '벚꽃 대선=정국 혼란'으로 이어질 여지는 충분히 있다. 우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어느 쪽으로 나오든 반대파에서는 강한 불만을 갖고 반대편에 적대적이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국론이 분열되는 시간은 당분간 불가피하게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당과 대선 후보급 인사들의 정제되지 않은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국정운영의 예측불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은 이미 제1당의 지위를 잃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다고 해도 청와대가 힘을 쓸 수 있도록 돕기엔 역부족이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과반에는 이르지 못해 단독으로는 어떤 입법도 불가능하다.

헌법재판소. ⓒ 뉴스1

그래서 결국 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을 포괄하는 야 4당 간의 대화와 협력을 찾아가게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분석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치공학적으로 문제적 상황을 이용하려는 정파적 행보가 다수 발생하겠지만, 또 그런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다양한 정당과 정파들이 서로 공존하는 휴전 노하우를 어쩔 수 없이 체득하게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분노의 정치' 외에 다른 콘텐츠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는 정치인들이 빠르게 도태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지지율이 가장 높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진영에서 인물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점도 박근혜 정부 심판론 이후에 빠르게 국면 전환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개헌 등 새 이슈 부각에 헌법재판소가 촉매 역할?

고 박정희-박근혜 대통령 부녀로 대표되는 보수적 정치 아이콘과 그 문제에 대한 제동이 이번에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이뤄지지만, 이 문제 외에도 이른바 '친노 패권주의'로 불리는 문 전 대표 진영의 정치 방식 역시도 함께 비판 대상으로 부각되는 등 파장이 엉뚱한 곳에서 예상 외의 크기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적 가치에 대해 어젠다를 제시하면서 개헌론 등의 해묵은 이슈들이 국민적 관심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탈당 등으로 민주당 내에서는 개헌파 의원들이 반문 깃발을 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개헌론이 정치적 파벌 문제와 이해관계와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계기가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서 공급될 수 있는 나비효과 여부도 관전 포인트로 부상 중이다.

어떤 식으로든 강한 변화 동력원이 한국 정치에 공급되고 큰 변화 욕구가 높아지는 새 페이지가 열리게 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명쾌한 이정표와 왜 그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성 설명에 헌법재판소가 얼마나 성공할지, 국민 대다수는 숨죽이며 결정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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