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의 구속 상황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사장 역할론이 언제고 가동 가능한 '카드'라는 게 확인됐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전자나 금융 등 주요 업종을 맡아본 경험이 없다거나 삼성 내부 구조를 잘 모르는 분석이라며 이 사장의 등판론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하기도 한다. 이 같은 의미에서 '소설'이라는 평도 나온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의 '이부진 등판론' 관련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지배구조 개편, 즉 통합 삼성물산(028260)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를 단행하기 전만 해도 시중에서는 삼성그룹의 호텔·물산·화학사업은 이 사장 몫으로 갈 것으로 전망했었다.
그러나 화학은 한화그룹과의 빅딜에 따라 삼성에서 사라졌고, 물산의 경우도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기능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이 부회장의 회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의 지분이 적지 않기는 하지만, 오빠인 이 부회장을 제치고 이 사장이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실제 근래 공식화된 지주회사 전환 역시 오너 일가의 공동선이라기보다는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상황을 외신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역할론을 언급한 것은 이 부회장의 문제가 심각하고, 이 사장과 이 부회장 사이의 일정한 차단벽이 가동될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따른다.
◆막대한 손해배상 가능성, 삼성 아닌 이재용 책임으로?
이 부회장 진영에서는 이상한 합병비율에 찬성하게끔 국민연금을 조종했다. 이외에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 지배구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조치를 하지 않거나 그 수위를 낮추도록 정권 차원의 압력을 행사하도록 했다.
이런 점에서 뇌물죄의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이 된다는 논리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완성, 구속영장을 받아낸 것이다.

삼성 일가가 모두 운명공동체이자 이익공동체라는 해석은 허상에 가깝다. ⓒ 뉴스1
이런 주장의 근저에는 삼성의 모든 문제는 현재 유력한 승계자로 거론되는 이 부회장이 빨리 구속 상황에서 풀려나오면 된다는 1차 방정식이 머물고 있다. 삼성의 문제를 완벽히 담고 있다고 할 수 없지만, 당장 소송전이 본격화될 여지를 안은 것이다.
합병무효소송을 진행 중인 일성신약 같은 소수주주의 사례도 있을뿐더러, 국민연금이 손실을 입은 부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시민사회계의 주장도 나온다.
전자든 후자든 삼성으로서는 이런 소송에 끌려다니는 게 달갑지 않다. 우리나라 상법 구조에서는 합병무효소송 판결이 나오면 원상회복을 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지난 2008년 대법원은 현저하게 불공정한 합병비율을 정한 합병계약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공평의 원칙 등에 근거할 경우 무효라는 설명을 한 적은 있으나, 실제로 이 현저한 불공정 등을 이유로 무효화한 선례는 찾기 힘들다.
올 1월16일 CBS라디오에 출연한 자리에서 경제학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2015년 7월에 주총이 끝났고 9월 달에 합병회사가 출범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이미 수많은 투자자들 사이에 삼성물산의 주식이 거래가 됐다"고 언급했다.
또 "이 모든 걸 되돌리기는 어렵다. 이것이 법조계에서 얘기하는 법적안정성 논리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무효는 어렵지만 형사재판 결과를 가지고, 개별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면 배상 소송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개혁 성향의 학자들도 이번 상황에 대해 무조건적인 원상회복만이 답이 아니라는 우려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서 판례의 태도도 관건이지만, 학자들의 태도나 다른 나라 법 규정은 어떻게 돼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2014년 나온 '독일 조직재편법상의 회사합병의 하자' 제하의 논문을 보면('비교사법' 제21권 제2호), 독일 상사법 분야에서는 과거 우리나라 법과 유사하게 합병무효소송이 되는 경우 원론적으로 원상복구를 추구했다.
그렇지만, 이후 두 차례의 재편(옛 주식법 제352(a)조, 이후 현재의 조직재편법 제20조 제2항 등)을 통해 원상회복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이 새 합병회사를 기반 삼아 다시 이를 정의로운 상태로 이행할 방안을 찾는 데 주안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필요한 게 손해배상의 규정 등이다. 이 논문은 또 우리나라 법에서도 독일의 제도 개편처럼, 합병무효의 소가 확정됐다고 해서 원상회복에 의할 것이 아니라 그 시점에서의 이해관계에 따라(바뀐 상황을 기본 전제로) 분할이나 해산 등을 해 이를 바로잡게끔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합병무효소송 후폭풍 지나쳐" 지적이 삼성에겐 '복음'
이 대목에서 삼성 오너 일가에 중요한 것은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든 '기정사실'로 만들고 지배구조를 일가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다만, 이 문제는 이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인 지주회사로의 전환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 부회장이 주축이 돼 저지른 문제와 삼성, 삼성 오너 일가를 분리하는 게 오히려 더 낫다는 선택과 집중의 과제가 남기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 논리를 개발하든 큰 맥락은 현재의 상법이 곧이곧대로 규정하는 원상회복 논리 대신 독일식 문제 해결(손해배상 등으로 처리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로 잡아야 한다.
아울러 이 책임은 이 부회장이 떠안고, 회사(삼성물산)로서는 배임 우려가 있다며 분담을 거절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
이 부회장의 개인 재산으로 개인이 저지른 문제를 풀고(연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합병 비율의 부당 결정으로 국민연금이 입은 손실만 1233억원이라고 하며, 개인투자자 손실은 약 두 배로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이 사장이나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등이 현재 차지하는 지분 자체가 흔들리는 '공범 논리'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삼성 오너 일가가 공범이고, 문제를 제대로 된 합병 비율로 산출할 경우 오너 일가 전반에서 갖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은 10%가량 줄어들 수 있다는 풀이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부진, 이재용 공범 아냐" 선언?…손복남-이재현 증여 짚어야
공범 논리를 차단할 근거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2016년 11월 재벌닷컴에서 계산한 내용(삼성물산 주가 등락에 따라 각 주요주주가 입은 손실폭 비교)을 보면, '이재용-이부진 공동운명체론'은 허구다.
이 부회장 중심의 개편으로 이 사장의 입지가 좁아진 데다 실제로 재산 손실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 입증된다.
재벌닷컴 자료대로라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통합 삼성물산 주식가치는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기 전 지분가치와 비교하면 27.86%나 줄었다. 이 부회장은 현재 지분가치가 7.8% 정도 줄었고, 부진·서현 두 사장들의 손실률도 각 11.5%로 나타났다.

손복남 고문. 이재현 회장의 모친으로 현재 와병 중이다. ⓒ CJ
마치 현재 와병 중인 손복남 여사가 남편 고 이맹희씨와의 사이에서 재산관계에 대해 확고히 선을 그었기 때문에 현재의 이재현 회장과 CJ그룹을 살린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같은 손 여사의 행보로 시아버지 고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눈 밖에 난 남편(이맹희씨) 대신 일정 부분 상속을 받았고, 1998년 손 고문으로부터 이 회장이 CJ 주식을 증여받은 것.
고인의 사후 막대한 빚이 드러난 것을 생각해 보면, '손복남식 차단벽'이 작동하지 않았을 경우 CJ의 승계구도와 그 오너 일가의 안위는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전자나 금융 지휘 경험이 없어서 삼성을 물려받기엔 부족하다는 논리는 대단히 한가한 주장에 가깝다. 물론 이 부회장을 배제하는 경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오너 일가의 지분이 갖는 힘이 과거 대비 줄어들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다만, 이는 이 사장 등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요소다. 네이버 같은 경우 창업자의 지분이 다른 재벌에 비해 대단히 적었음에도 성공적으로 경영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그 기반은 다름 아닌 능력이었다는 평이 높다.
가까운 미래, 이 사장 등판 필요성이 공식화되는 때 즉, 유일한 해법으로 자타가 이 사장 역할론을 공인하는 상황에서는 삼성도 이 같은 문화를 일부라도 받아들여야 할 때일 것이다.
아직 남은 부친 이건희 회장 수중의,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주식(지분)을 생각해 보면, 절대 왕정까지는 아니어도 입헌군주제의 여왕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따지고 보니, 이부진 등판 시나리오는 삼성의 병폐를 가장 잘 수습할 수 있는 '이상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