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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원칙론자 천정배 '총리 임명 적극추진론' 택한 이유는

잘못된 일 판단되면 급전환 유연성도…민주당과 다른 선택, 오히려 '더 강경책'일 수도?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6.11.18 18:03:34

[프라임경제]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이 국회 차원의 거국적 결단으로 책임총리 선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해 눈길을 끈다. 총리 인선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 국정 농단 논란으로 퇴진 압박을 받자 내놓은 카드지만, 막상 공이 국회쪽으로 넘어왔음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는 문제다. 

천 의원은 18일 국회 차원의 국무총리 후보 추천 논란과 관련, "야3당 대표회동에서 우리 당의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총리 인선을 먼저 하자는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 등의 소극적인 태도로 총리 인선 작업을 진척시키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이어 그는 "야권은 한편으로는 퇴진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그와 더불어 총리 인선과 박 대통령을 직무에서 신속히 배제할 방안에 대해서도 깊은 숙고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 의원은 정치 입문 이래, 원칙론자라는 평을 들어왔다. 과거에는 원칙론에 지나치게 얽매여 포용과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였다. 원론주의 종교집단에 빗대어 '여의도 탈레반'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런 그가 박 대통령의 수에 말려든다는 우려, 탄핵 논의까지 오가는 와중에 정치적 타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가능성 등을 모두 감수하고 청와대발 책임총리 인선론을 받아드는 태도를 취한 점은 그 자체로 이색적이다. 박 대통령에게 모든 걸 버리고 물러나라는 이야기를 선명하게 주장하는 이들일수록, 총리 인선 문제 등에 소극적인 게 사실이기 때문.

◆'탈레반'…원론주의자, 세월 앞에 변한 건 없나

그는 목포지역 3대 수재 중 하나로 지금도 회자되는 인사인 동시에, 성격이 무척 급한 편이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서울대 출신으로 사법시험을 거쳐 정치권에 입문하는 내내 명석함과 추진력, 속도감있는 업무 스타일로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도 원론주의자 평을 들었던 점은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잠재성을 높게 평가, 일찍이 그를 뒷받침해 줬던 당선 공신이었지만, 참여정부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자 자신의 소신과 당의 정책 방향과 다른 일이라며 '단식 농성'을 벌였던 일화는 빙산의 일각이다.

시계의 바늘을 좀 더 앞으로 돌려보면, 2004년 5월에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서 "당이 정부를 견인해야 한다"는 태도로 밀어붙여 당-정-청 관계 구도 재정립 논란을 빚었다. 천 의원은 여당이 정부와의 관계에서 이런 구조를 갖고 주도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소신을 이전부터 갖고 있었으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논란을 감수하고) 이때 폭발력있는 이슈를 꺼내들었다는 점에서 원칙과 소신을 무엇보다 강조한다는 점이 크게 부각됐었다.

그런 한편, 의외로 음험하다는 식의 저평가 공격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원내대표직을 놓고 천 의원과 격돌한 상황에서 자신이 석패한 이유로, 천 의원이 특정 계파의 지지를 얻는 조건으로 뒷거래를 했다는 식으로 그의 자서전에서 서술했었다.

아울러 대선에서 패배해 당이 침울함의 여파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던 시기인 2008년에는 일명 '민생연대' 출범 국면에서 그를 따르는 정치인들을 참여시킴으로써 당 규율을 어지럽힌다는 소리도 들었다. 이 모임은 정동영-김근태계가 주를 이뤘지만 '천정배 라인'까지 참여하면서 당내에서 여러 소문을 낳았다.

이런 상황을 함께 살펴 보면, 결국 원론주의자도 정치물을 먹으면서 변했다는 평가 즉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이야기로 종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원칙론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그가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었긴 하지만, 추미애 의원 등을 끌어안지 못한 점은 열린우리당 창당과 이후 당 운영 과정의 잘못된 점이라고 발언하는 등 여러 차례 원칙과 고집으로 돋보이는 길을 걸었다(추 의원은 열린우리당 창당파와 구 민주당 세력이 갈라설 때 후자를 택했고 이후 한참의 우여곡절 끝에야 지금의 민주당에 합류했다). 

자신의 오류나 잘못, 혹은 의도와 다르게 화학반응이 일어난 여파 등이 있다면 과감하게 이에 대해 의견을 드러내기도 하고, 방향을 전환 검토하는 등의 자세를 가진 셈이다.

지난해 신당 창당을 몸소 주도할 때 이명박(MB)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정운찬씨를 영입하기 위해 움직이기도 했다.

천 의원이 비록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을 받았지만 그 정치적 스승의 '대중경제론'을 그대로 답습하기 보다는 케인즈 학파이면서도 시장친화적인 MB정권에 참여할 정도로 유연성을 일부 갖고 있는 정씨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

원론주의이기는 하지만, 변화가 필요하거나 오류를 잡아야 한다는 새로운 점이 발견된다면 이것이 원칙 자체를 파괴하지 않는 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면이 있다는 것. 총론에는 충실하되, 각론에서는 유연한 원론주의자이기에 '교조주의적'이라는 악평은 듣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줄곧 '개혁의 선봉장 역할' 더 큰 정치 계산?

천정배 의원의 행보가 최순실씨 논란 와중에 돋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지자의 아이를 안아주는 천 의원의 모습. ⓒ 천정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런 점에서 무작정 퇴진만을 청와대에 요구할 게 아니라, 그 이후의 문제를 생각해서라도 총리를 새롭게 세우는 문제는 별도로 추진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원론주의와 현실정치의 새 콜라보레이션으로도 볼 수 있다.

아울러 오히려 박 대통령을 확실히 빠르게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총리 인선 문제에 국회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부분에 더 주목해 본다면, 여러 정치인이 매달리고 있는 같은 국정 농단 문제의 처리 접근법 중에서도 '가장 큰 그림'을 그가 그리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매번 기회가 될 때마다 맨 먼저 정치 개혁의 선봉장역을 자임하고 나섰던 그가 이번에 건국 이래 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떨지 무척 흥미로운 주제다.

때문에 총리 인선 적극추진론에 눈길이 간다. 탈레반 같은 엄정함과 허주(虛舟) 김윤환 같은 유연한 정치적 연결책이 보여주던 경륜 사이에서, 천 의원이 드디어 길을 찾았을까?

그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의당이 앞으로 어떤 항로를 갈지, 이번 사태에서의 그와 그 소속 정당의 선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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