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드리프트', 코너를 돌 때 더욱 강하게 가속해 차 뒷바퀴가 옆으로 미끄러지는 상태를 말하는 속어다. 속도광들이 레이스 도중에 위험을 감수하고 쓰는 기술이라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지만, 위험에 대응해 급히 방향을 돌릴 때 요긴한 부분도 있다. 세칭 김영란법 때문에 한우 산지 가격이 출렁이는 등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타격을 줄일 정책 드리프트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지 살펴본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국면이 이제 불과 한 달여 지났지만, 한우 도매 가격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리서치센터의 'NH축경포커스 9호(6일자)'에 따르면 10월 넷째 주(10월24∼28일)의 한우 도매 가격은 ㎏당 1만6784원이다. 김영란법 시행 1주일 전(9월19∼23일·1만9189원)보다 12.5%(2405원) 하락한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한우 도매 가격과 소매 가격의 디커플링(비동조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산지에서 축산농민이 소를 넘기며 받는 도매 가격은 떨어지는데, 막상 소비자가 소매로 살 때의 값은 뒤따라 떨어질 조짐이 없다.
업계에 따르면 심지어 등심 소매 가격의 경우 김영란법 시행 주 100g당 7955원에서 10월 넷째 주는 7996원으로 소폭 올랐다. 갈비 소매값도 같은 기간 100g당 4999원에서 5101원으로 뛰었다.
도매 단가가 떨어지는데도 소매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 것은 선물용 판매가 줄면서(일례로 농협 유통계열사의 한우 선물세트 판매는 지난해보다 약 21.3% 감소), 이런 부진을 가정용 판매분 가격에 얹어 만회하려는 유통계의 전략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꼼수 마케팅 전략의 파장이 오히려 도소매 간의 시간격차, 가격 연동성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보다 더 크게 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는 단지 축산농민에게 돌아갈 몫을 중간 유통업자들이 차지한다는 불공평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한우 일반 소비 수요까지 냉각시켜 한우산업 자체를 붕괴시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한우 유통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 한우 축산 농가 지원책도 전환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프라임경제
2001년 쇠고기 시장 개방 이후에도 30~40%를 오갔고 2013~2015년간에는 줄곧 46~50%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심각해 보인다. 한우와 국내산 육우를 망라한 지표이기는 하나, 김영란법 쇼크와 한우산업의 타격 크기를 미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등급 한우 수요 느는데 생산은 기존 기준에 집착
축산경제리서치센터 집계에 의하면 한우를 소비하는 동향도 낮은 등급 수요가 늘어나는 조짐을 보인다. 전체 5등급 중 가장 낮은 3등급의 10월 도축량이 김영란법 시행 전인 9월에 비해 2.5% 늘었다. 쇠고기는 △1++등급 △1+등급 △1등급 △2등급 △3등급 등으로 등급 구분을 한다.
3등급 소비 동향을 단순히 '알뜰 소비'로만 볼 수 있을까? 2014년 한우데이(11월1일)에 즈음해 방송된 한 시사프로그램에서는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1++등급이 2등급 한우 대비 우월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는 내용을 소개한 바 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5차례에 걸쳐 진행한 결과, 맛을 볼수록 2등급 한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는 것.
2등급이 생각 외로 질기지 않은 데다 담백한 육질과 고유의 향이 입맛을 당긴다는 평도 뒤따랐던 것으로 관계자 후일담을 통해 전해졌다.
현재 한우의 등급 선정 기준인 근육 내 지방분포정도 일명 '마블링' 중심 시스템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한우 중에 싼 것을 고르는' 대신, 세칭 '가성비'가 뛰어난 합리적 소비가 지방이 적은 쪽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년간 등급 판정에서 1등급 이상 출현율은 75% 정도로 치우쳤다. 2015년 기준 한우 도축 마릿수는 약 88만마리인데, 2등급 이하 판정을 받은 소는 약 22만마리 정도다.
마블링 중심 등급 체계를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게 타당한지의 논의는 차치해도 이같이 새롭게 부각되는, 이른바 저등급 관련 요구를 주목할 필요는 충분해 보인다. 더 나아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준비 작업 역시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이에 대한 대응과 준비 작업은 요원해 보인다. 우선 소를 키우는 축산농가들이 대부분 좁은 우리에서 소의 운동량을 제한하는 일명 밀식사육을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지방 함량을 증가시키는 것.
더욱이 사료 등 지원에 있어서도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쇠고기를 기름지게 키우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상 지방 함량을 부각시켜 등급을 주는 시스템에 순응한 것이다.
각 지자체들이 특히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게 바로 TMR(Total Mixed Ration, 완전 배합사료) 지원 사업 시행이다. 축산농가의 경영비 절감을 위한 것이라고 하나 막상 들여다보면 등급 문제가 농축돼 있다.
소규모 농가에서 조사료 생산에 어려움 없이 한우를 사육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균형된 영양을 공급하도록 돕는다는 명분이나, 실상은 고급육을 생산하기 위해 거세 한우 비육 농가에 초점을 둬 지원하는 제도인 셈이다.
TMR은 농후사료와 조사료를 분리 급여하던 것을 1회에 섞어 급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필요한 영양소를 균형적으로 공급해 대사성 질병을 완화하는 것인데, 이 결과 고급육 출현 빈도가 증가한다고 알려졌다.
◆TMR에서 조사료로 초점 전환, 미트 패커와 생활보상 검토 필요
일명 저등급 쇠고기 수요를 개발하고 이에 부응하는 생산을 도우려면 TMR 사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조사료는 지방, 단백질 등의 함량이 적고 섬유질이 18% 이상 되는 청초, 건초와 같은 풀사료다.
조사료 문제에 대한 고심만 해결해줘도 축산농가의 숨통이 트일뿐더러, 건강하고 균형잡힌 성장(비육) 과정에 다양한 선택지를 새롭게 생각해볼 시간을 벌 수가 있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올 봄부터 농협 측에서 이와 관련해 움직인 점은 그래서 고무적이다. 농협 축산경제는 올해를 국내산 조사료 사업 재도약 원년 삼아 '자급 조사료 두 배로 증산운동'(4월28일 관련 발대식)과 '유휴지 푸른들 가꾸기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농협 축산경제가 자급률이 낮은 국내산 조사료를 2020년까지 두 배 증산하기로 했다. © 농협중앙회
한편, 영세 축산농가 지원 역시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사료 지원 논의만 해도 충분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이른바 행정법상 생활보상의 필요를 간과한 의견이라는 지적이다.
생활보상은 수용 등 정당한 행정행위에 의한 손실이 단순히 땅값 중심으로만 지불되면 끝이라는 논의에 반기를 든 개념이다. 기존에 토지 소유자 등이 생활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 기존 사업을 영위할 수 없게 된 경우 손실까지 함께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한우값 파동은 멀리는 쇠고기 수입 자유화와 가깝게는 김영란법 시행 등 정당한 정책 집행이지만 그 부산물이 만만찮은 만큼 생활보상식으로 들여다볼 여지가 없지 않다는 시각이다.
지난해 11월 나온 정경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팀의 연구 결과도 이를 방증한다. 당시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는 정 교수팀에 의뢰해 '규모별 한우농가 효율성 제고 및 정책지원 방안 연구' 보고서를 받았다.
이 보고서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에도 소득형평성의 목적을 둬 소득이 낮은 소농들에게 전체 예산에서 보다 많은 비중을 지원함으로써 농가 간 소득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시행돼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20두 미만의 소규모 한우농가가 전체 농가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지속적인 퇴출은 안정적인 한우산업 기반을 위협하는 근본적 위험요인으로 이에 대한 합리적인 정책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정 교수팀은 한우농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규모 한우농가들은 조사료 생산기반 확충과 고급육 출하 지원이 주요 관심사라고 응답했다. 한편 중소 규모 한우농가들은 사료 가격 지원과 자유무역협정(FTA) 피해 보전 직불제와 같은 직접적인 금융 지원 형태의 정책을 바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우산업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소규모 농가 번식
결국 조사료 관련 정책 추진은 소규모 축산농가를 한정 대상으로 한 직접적 사료 가격 지원 등과 병행될 필요성과 정당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한우 가격의 변동성을 줄일 다른 방안 역시 절실하다.
하지만 정부는 축산물 가격이 오르면 서민 경제가 고통받는다는 문제를 함께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한우를 기르는 축산농가 중심으로만 정책 판단을 하기 어렵다.
결국 산지 가격과 소매 고기값이 따로 노는 디커플링, 즉 가격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며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이런 일거양득의 정책적 대안으로 '미트 패커'에 관심이 모인다.
가격 전달 효율성과 소비자 만족을 위해 미트 패커를 육성, 비용을 절감하고 부분육 유통을 통해 가격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협동조합형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농협 축산경제가 '부천 축산물 복합단지' 조성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런 미트 패커 영역 개척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권역별 농협 축산물 공판장과 연계한 축산물 복합단지를 엮으면 협동조합형 패커가 완성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29일 '위기의 한우산업, 돌파구는 무엇인가' 세미나에서 한우를 직접 기르는 이현민씨는 토론자로 참석해 "한우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반드시 소규모 농가가 번식을 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는 "2009년에 귀농해 소 입식부터 농장을 만들기까지 5억원이 들었다"며 "그러면 1년에 5000만원 소득이 나와야 하는데 실제 연평균 수익은 700만원"이라고 토로했다.
높은 사룟값과 한우 가격의 출렁임이 이처럼 낮은 소득 결과를 빚은 것이다. 높은 등급의 고기 중심 정책인 TMR 지원 논의로만 치우쳐져 상대적으로 가려진 조사료 해법, 산지 가격과 소매 가격의 격차를 완충할 적정한 방파제와 콘트롤 타워인 미트 패커 등에 대한 검토가 시급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특히 김영란법과 이로 인한 저등급 한우 고기 수요 확산으로 이 같은 대안 추진의 요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단순히 농협 차원이나 개별 유통 대기업의 접근으로는 완성하기 어려운 퍼즐이라는 점에서 정책의 키잡이인 당국의 결단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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