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비박(非朴·비박근혜)계 의원들이 당 지도부 총사퇴 연판장을 돌리는 등 격앙됐다. 그럼에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31일 "어려울 때 물러나고 도망가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쉬운 것"이라며 "일단 난국을 수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비박계 의원들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면서 각을 세운 셈인데, 어떤 정국 구상을 하고 있는 건지 관심이 모아지는 '초강수'라 그 이후 국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표는 "중요한 것은 책임을 맡은 자리에 나설 때는 좋을 때든 나쁠 때든 끝까지 책임감을 갖고, 선장처럼 배가 순탄할 때든 순탄하지 않을 때든 끝까지 책임을 지고 하겠다는 각오와 신념과 그런 책무감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도망가는 것은 가장 쉬운 것"이라고 전제하고 "지금 사태 수습이 워낙 엄중한 상황이고, 지금은 우리가 집권당으로서의 책임이 아주 막중하다. 크든 작든 조직 지도자가 해야 할 책무이고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친박(親朴·친박근혜) 측근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호남 출신으로 새누리당에서 주요 보직을 차지한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평이 있으나 사실 그간의 고생길을 생각하면 '비주류 중의 비주류' '흙수저의 승리'라는 평가가 더 정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그가 이번에 친박 대 비박 갈등 국면에서 그도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당직 사퇴 요청을 거부하더라도 반쪽 당대표가 될 가능성이 있어, 향후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그는 대립각 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일부에서는 '거국내각' 문제를 그 배경으로 꼽는다. 일부에서는 촛불집회를 통해 분출된 여론이 '대통령 하야'까지 거론하는 상황임을 상기시킨다. 더 이상 성난 여론을 달랠 방안이 없고 박근혜 정부가 영이 서지 않는 상황을 더 끌고 가기도 어렵다는 풀이다. 하지만 '프로 정치인들'인 야당에서는 이와 다른 계산을 할 공산이 크다.
박근혜 끌어내리기 이후에도 다른 대안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 정국의 혼선은 물론이고, 주변 국가에서 한국의 국격을 굉장히 낮게 보는 자체로도 더 힘든 국정 운영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1당 독재 국가인 중국이 우리를 가리켜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는 나라"라고 쓴소리를 한 것은 단순히 감정을 상하게 하는 발언이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간 헤게모니 싸움을 하는 동북아 미래 상황에서 우리가 대단히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또 안철수 의원이나 문재인 의원 등 여러 잠룡들도 당장 탄핵이나 하야 등 상황을 맞이하는 게 가장 유리한 상태라고 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처럼 문제가 계속 여권에 불리하게 돌아가면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 등은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해진다.
상황을 최대한 즐기고 싶은 속내, 그리고 국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정면으로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황금비가 바로 거국내각 혹은 그와 유사한 상황쯤이 아니겠냐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카운터파트 역할을 할 정치인이 여당 내에서 절실한데 딱히 찾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대대표는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와의 협상장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로 '강골' 기질이 있다. 기자 출신이라 하고 싶은 말은 한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선수로 보나 포지션으로 볼 때, 협상 전력가로서의 면모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이 뒤따른다.
결국 이 짐을 나눠질 이가 마땅찮다. 김무성 의원은 일찍이 친박 라인을 이탈했고, 지난 총선에서 옥새 파동을 일으키는 등 자기 정치를 하는 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퇴 요구 국면에서도 이 대표와 불편한 상황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차치하고라도, 친박계로서는 그에게 소통 창구 역할을 맡기기 불안하기 짝이 없다.
믿을 만한 '우리 편',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뒤통수는 치지 않을 것으로 신뢰감이 가는 '거간꾼' 정도도 찾기 어려운 사면초가에 빠져있는 게 친박 더 나아가 청와대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믿음직한 '짐꾼'이 바로 이 대표인 셈.
이 대표는 말단에서 시작해 당 최고 자리에 오른 인물로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빠른 선택지 검토 능력을 갖췄다는 평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대표의 이런 처지와 상황, 그리고 심리상태에 대해 새누리당 내부 인사들이 어느 정도나 공감하고 또 따를지 여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카운터 파트로서 온갖 고생과 치욕은 감내하면서도 막상 수확을 잘 할지 우려도 따른다. 야권의 요청과 때로는 억지를 받아주는 만큼의 효과적인 반대급부를 챙길 수 있는지의 문제다.
그래도 어쨌든 새누리당으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고, 반대쪽에서도 이 대표 이상의 상대를 생각하기 어려운 감이 있다. 대선 주자급 새누리당 계열 인사를 상대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자칫 그를 돋보이게 해 주는 자총수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홍준표 경남도지사 같은 이는 비중상으로 보나 성격상으로 그런 점에서 야권에게 적합하지 않은 맞수다).
때로 '내시'라는(그것도 '삼국지'의 십상시에 빗대어) 악의적 뒷말,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동등한 관계 설정에 도움이 안 되는 낮은 자세의 친박맨이라는 평가에도 꿋꿋하게 길을 걸어온 그가 이번에는 또 다른 험로에 들어섰다. 이를 계기로 정치인으로서의 인생이 끝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진정한 '이정현의 재발견'이라는 반전 뒤집기를 해낼지 여부가 아직 남아있다는 실낱 같은 전망도 존재한다.
다시 생각해 보자. 오늘날 '김무성'을 가장 성장시킨 자양분이 어떤 것이었을까? YS의 적통 승계자라는 평가보다 오히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일어난 '친박 공천 대학살' 와중에 묵묵히 박근혜 브랜드를 안고 가던 모습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 대표의 지금 처지가 그때 그와 흡사하다는 것. 이 대표가 바로 그런 존재이기에 이번 국면에서 나섰다는 점을 상기하면,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더 주목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