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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령 이기는 식약처 고시? 국회법 정쟁이 낳은 괴물 'GMO 고시'

2015년 유승민 사태 여파로 중요 개정안 사장…행정입법권에 대한 통제미비 언젠가 손봐야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6.07.01 20:21:51

[프라임경제] 유전자변형식품(GMO)의 안전성 논란이 세계적으로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GMO 표시제 문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른바 식품의약안전처의 '표시기준 고시' 개정 추진 논란이다.

이번에 식약처에서는 고시의 여러 내용을 손질한다는 것인데, 비유전자변형식품(Non-GMO), 무유전자변형식품(GMO-free) 등 표시를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하는(고시 제6조 제2항) 문제가 특히 논쟁 대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우선 굳이 GMO와 관련 없는 식품이라는 점을 내세우는 것을 무한정 방치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한편, 소비자의 선택과 알권리, 또 식생활을 둘러싼 행복추구권 등의 충족을 위해 GMO-free 표시제가 발달해야 한다고 보는 측에서는 이런 식약처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특히나 지금 민간에서 GMO-free 표시 움직임이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라는 것이다.

식약처로서는 이번 고시 개정이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고시 중 내용 신설로 GMO-free 표시 매장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는 게 아니다"라며 "이미 식품위생법 제13조에 규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의 설명대로 현재의 고시 개정 국면을 바라볼 수는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다음과 같은 어폐가 있기 때문.

분명히 대통령령에 맡겼는데, 고시 손질로 일을 벌이다?  

식품위생법 제13조는 허위표시 등의 금지를 다룬 벌칙규정이다.

GMO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식품의약안전처 고시가 이에 역행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GMO 관련 시민단체 집회 현장. ⓒ 뉴스1

그 1항에서는 '누구든지 식품등의 명칭·제조방법, 품질·영양 표시, 유전자변형식품 등 및 식품이력추적관리 표시에 관하여는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허위·과대·비방의 표시·광고를 하여서는 아니 되고'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표시·광고'나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오인·혼동시킬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 혹은 '다른 업체 또는 그 제품을 비방하는 광고' 등을 금지한다.

사실 이 규정만 놓고 보면, GMO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우월한 상품이라는 식으로 자기 식품이나 가공품을 광고하면 과장이나 혼동 우려나 비방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예를 들어, 극히 적은 양의 GMO 예를 들어 유전자조작 방식의 원료 콩이 미량 사용된 콩기름을 잘못 광고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기술적 문제 외에도, 정작 여기에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해당 법 제13조 제2항은 '제1항에 따른 허위표시, 과대광고, 비방광고 및 과대포장의 범위와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다룰 구체적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총리령으로 정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식약처의 주장대로 '고시를 굳이 손질하지 않아도 법 그 자체에 GMO-free를 강조하는 광고를 막을 수는 있다. 다만 편의를 위해 고시를 개정하는 것뿐'이라고 이해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이에는 조건이 따른다. 구체적 광고 제약의 방법론을 총리령으로 하라고 국회가 못을 박아 놓았으니, 일단은 총리령으로 내용을 정하고 다시 아주 미시적이고 실무적인 내용을 고시에 맡겨야 한다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일처리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면 이 법에도 시행규칙(즉 총리령 제1297호)이 마련돼 있기는 하다. 다만, 이 규정을 보면 GMO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형식의 영업 패턴에 대한 어느 규정도 마련돼 있지는 않다. 실제로 시행규칙을 보면 별표 등을 동원, 실로 다양한 규제와 규제 예외를 정하고 있다. 이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굳이 GMO나 GMO-free 등에 대해 어떤 광고상의 관리 필요성을 느낀 것 같지는 않다.

아울러 실제로 이 법 시행규칙에서 고시에 재차 기준을 넘긴다든지 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도 없다.

김광진 안대로 국회법 개정됐으면 진작 필터링됐을 수도…

왜 굳이 이렇게 총리령으로 필요한 사항을 정하게 했는지를 국회법과 함께 생각해 보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행 국회법은 대통령령·총리령·부령에 대해서는 국회가 법률 합치여부를 검토,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다만, 훈령·예규·고시의 경우는 검토에 관한 명문 규정이 없다(국회법 제98조의2 제3항에 따르면 총리령, 부령까지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밝혀져 있다).

이에 따라 고시 등 내용을 정할 때 제대로 입법부에서 통제를 할 수 없어 일종의 입법미비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므로 식품위생법에서 GMO 관련 규정의 다양한 모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국회가 여기기는 했지만, 한편 또 국회는 국회법에 의한 사후적인 통제가 원활한 총리령 수준의 방법으로만 행정당국이 방법을 정하도록 재량에 한계를 그을 필요도 느껴 이처럼 정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식약처가 고시로 이를 임의로 규제하고 이로 인해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태동한 GMO-free 표시제나 표시업소 등의 등장과 발전이 순식간에 고사할 위기에 처하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국회법 파동이 제대로 정리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행정편의주의라는 뒷말도 무성하다.   

콩 등은 특히 GMO 수입량이 많은 작물이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 뉴스1

지난해 10월 김광진 전 새정치연합 의원 등이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개정안은 현행 규정에서 대통령령이나 총리령 등까지만 그 내용에 대해 사후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는 데서 더 나아가, 정부가 제출한 훈령·예규·고시까지도 국회가 법률 합치여부를 검토할 수 있게 한다는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이 안대로 국회법이 개정됐다면, 이번 고시 논쟁도 어쩌면 사전에 걸러졌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 안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19대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 문제는 그해 6월의 '유승민 파동'으로 '금기'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즉 지난해 봄과 여름에 이미 국회법 내용 중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요구권' 논쟁이 극한의 정치적 갈등으로 번진 트라우마 때문에, 이후 국회법에 대한 모든 논의는 미봉책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고시 등에 대해서까지 국회에 의해 통제를 받게 하자는 안을 다룰 여건이 안됐던 셈이다.

행정부의 일이 늘어나는 현대국가에서 다양한 행정입법을 허용해주기는 해야겠지만, 입법부에서 이를 규제하고 제어할 필요는 여전히 존재한다. '김광진 국회법 개정안'이 사장되기는 했지만, 다양한 행정입법에 대한 입법부의 통제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또 언젠가 논의를 다시 할 필요가 있다.

GMO 관련 규제를 담은 이번 식약처 고시는 행정부의 무리한 움직임이 언제든 일어날 가능성을 실제로 입증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 문제를 느낀 일부 의원들이 아예 식품위생법을 다시 개정해 GMO 식품이나 그 사용 제품에 대한 표시 의무를 강하게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번 고시 논란을 해결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법률 개정 등 일을 다시 함으로써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 역시 모두 국민의 부담이라는 점에서 완전한 해피엔딩이라고 간단히 정리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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