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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는 말한다] 12간지 사이 곪은 현대차 근로자경영참여 부작용

변질된 제도에 본질적 수술이나 고통분담 대신 단협 통과에만 골몰 '괴물귀족' 키워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6.05.25 17:40:10

[프라임경제] 2003년 여름, 재계와 노동계는 울산발 '근로자 경영참여' 이슈에 시선을 뺏겼다.

당시 현대자동차 노사는 조합 전임자의 전임 기간 중 해고는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없으며 국내외 경기 변동에 따른 판매부진 및 해외공장 건설·운영을 이유 삼아 조합과 공동결정 없이 일방적인 정리해고나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도출하는 등 충격적 내용이 교섭에서 거론됐다.

아울러 △이사회 개최시 회사가 이를 조합에 사전 통보할 것 △사업의 확장·합병, 공장 이전 등 추진에는 사전에 조합에 통보하고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의결할 것 등에도 의견을 모았다.

이와 관련, 재계는 현대차가 '노조의 경영참여 요구를 사실상 수용'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독일식 근로자 경영참여가 법적 손질 없이도 노사 간 합의에 따라 등장할 수 있음을 방증한 대표적 사례로 이 이슈는 의미를 갖는다.

현대자동차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울산광역시 아산로. 현대차의 도시인 만큼 가장 좋은 도로명조차도 현대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의 호를 땄다. ⓒ 프라임경제

이후 쥐부터 돼지까지, 12간지가 한 바퀴 돌 만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현대차 주변의 사실상 근로자 경영참여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이달 오가는 내용을 보면 현대차의 본산 울산은 여전히 거센 근로자 경영참여 요구에 휩싸여있다.

우선 현대차 노조는 해외공장 생산량까지 노사가 합의하자는 임금·단체협상 요구안을 마련해 사측에 제시한다는 방침을 일찍이 세웠다. 현대차의 전체 자동차 생산량 가운데 국내공장 생산분이 2001년 94.2%에서 지난해 37.9%로 감소하는 데 본격 제동을 걸어보려는 시도다.

그렇지만, 경영권 행사의 중요 포인트로 그간 노조에서도 건드리지 못했던 해외공장의 운영까지 장악하려는 것이어서 논란이 클 수밖에 없는 이슈다.

여기에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노조들이 계열사 간 생산물량 조절과 국내외 생산 및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 공식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그치지 않고 현대차와 기아차 등 현대차그룹 10여개 계열사 노조가 뭉쳐 사상 초유의 계열사 공동교섭과 그룹 전반의 경영참여를 시도 중이다.

자동차·철강·철도 산업발전 미래전략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것으로, 가장 힘이 있는 현대차 노조가 사실상 그룹 전반의 미래를 결정짓는 일을 좌우하겠다는 '경영참여의 최종 확장판'이 될 전망이다.

임금상승과 생산성 제자리걸음, 이익 후진 삼박자 

2014년 가을 타결된 임급협상을 보면 현대차 노사 양측은 당시 협상에서 최대 쟁점이었던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문제를 선진임금체계 도입을 위한 별도의 협의체(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키로 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여전히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을지를 놓고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다. 현대차 노조가 2013년 제기한 대표소송에서는 사측이 2심까지 사실상 승소했고, 사측이 빠른 해결안 도출을 바라나 노조 측 반대로 공회전이 이어지는 것이다.

지출 규모가 생기는 것보다 차라리 '문제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을 기피하는 기업과 투자자들의 기본 생리를 생각하면, 사실상 노조로 대변되는 근로자 측에서 근로자 경영참여 확장에만 계속 열을 올리지만 미래성장동력 확보나 장애물 제거에는 소극적인 이중적 태도를 가진 게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다시 개선위원회 이야기로 돌아가자. 현대차 노사는 2014년에 임협을 체결하면서 2015년 3월 말까지 통상임금 문제 등 임금 개편안을 마련하는데 합의했고, 실제로 2015년 초까지 유럽과 일본을 방문하고 임금체계를 살펴보는 등 나름대로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결국 흐지부지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이는 9월 이후 파업과 노조 집행부의 임기만료 등과 겹치면서 달갑잖은 이슈에 열을 올릴 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가능한 대목이다.

더 나쁜 해석론도 있다. 작년 안에 임협 문제를 타결짓고자 통상임금 등 민감한 이슈 협상에 노조에 약점이 있는데, 사측이 이를 공략하는 강한 드라이브를 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로자들로서는 임협 지체 탓에 임금인상분과 성과급이 다음 해로 이월되면 2016년에 세금폭탄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협상이 해를 넘기면 당해년도 퇴직자의 경우 성과급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우려가 있었다.

결국 사측이 문제를 키우며 임금 인상 카드를 활용한, 즉 평화를 돈을 주고 산 동안 현대차 영업이익은 2012년 8조4406억원에서 2015년 6조3579억원으로 25%가량 감소했다.

현대차 국내공장의 평균 임금은 2001년 4242만원에서 2011년 8934만원까지 2.1배 뛰어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매년 약 8.6%씩 상승한 셈인데, 현대차 임금의 상승 동향과 생산성을 연결하면, 2003년 여름의 사실상 경영참여가 모든 원흉은 아니더라도, 어떤 지리멸렬함과 맞닿는지 추세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조립생산성(HPV)를 생각해보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종합한 자료에 의하면, 현대차 노조가 사실상 경영참여 기회를 잡은 2003년을 전후한 몇 년간 HPV는 의미 있는 변화를 발견하기 어렵다. 임금이 오르는 추세를 생각해 보면 큰 문제인 셈이다. 몇 년 뒤로 시곗바늘을 더 돌려보자.

전경련이 내놓은 2000년대 초중반 주요 자동차 회사 생산성. 이를 2007년 이후 자료와 겹쳐서 보면 강성노조가 버티는 현대차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전국경제인연합회

국내공장의 HPV 개선 속도로 특정하면 개선은 더욱 더디다. 중국공장이 2007년 HPV 23.5에서 2014년 17.7로 5.8포인트 향상된 반면, 국내공장은 동 기간 30.5에서 26.8로 3.7포인트 개선에 그쳤다.

유럽 계량경제학 우려의 '대표 표본'으로 전락

이는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유럽 계량경제학의 연구 결과 근로자 경영참여 및 이 주요수단인 근로자이사제도가 기업의 성장과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걱정과 일맥상통한다.

즉 1982~2011년 발표된 28편의 실증연구논문 중 노동이사의 임명으로 주가나 회사의 성장에 유의미한 결과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을 한 경우는 겨우 10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7건에서는 부정적 결과가 나왔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11건에서는 어떠한 유의미한 효과도 발견되지 않았고 평균 임금 등 일부 부문에서는 긍정적이라는 시장가치 등 거시적 측면에서는 부정적이라는 대목이다. 이는 현대차 노조가 임금 인상만 매번 요구하고 고통 분담에는 인색했던 경우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현대차 영업이익은 2012년 8조4406억원에서 2015년 6조3579억원으로 25%가량 감소하는 등 이제는 더 이상 고임금 귀족노조와의 동거가 어려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근로자 경영참여의 실험'이라는 한국경제 전반의 거시적 관점에서의 의미 외에, 현대차 자체로만 한정하면 이 2003년의 선택은 신의 한수였다기 보다는 실책으로 판명나는 모양새다.

더욱이 2015년 임협에서 이 관행에 제동을 걸 마지막 골든타임을 스스로 날려버렸기에 현대차의 경악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번에 해외공장 생산에 대한 간섭 시도, 계열사 전반의 미래에 대한 왈리왈시(曰梨曰枾 : 배 놓아라 감 놓아라 간섭)까지 감수하는 위험을 오롯하게 스스로 부담해야 할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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