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검사'가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그를 검사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출마 결심을 굳힌 지역구에서는 일부 당원들이 반발을 하기도 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의 얘기다.
이제는 이른바 캠프로 불리는 사무실도 개소한 마포갑 예비후보다. 새누리당의 최고위원으로도 임명돼 어느 면으로 보나 정치 일선에 발을 담근 양상이다. 안 최고위원은 과거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당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고, 이 일을 잘해냈다는 평가도 있다.
다만 그는 대선 이후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지냈다. 대선 논공행상이 끝난 한참 후 국무총리감으로 낙점됐지만, 인사청문회 국면에서 수임료 과다 논란이 일자 사퇴를 결심, 다시 야인이 됐다.
이쯤 되면 '정치 혐오론자'라고까지 볼 수는 없어도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고 보기도 어려운 이력이다. 실제 그는 YS계 거물 강삼재씨나 DJ의 측근 한광옥, 친노핵심 안희정씨 등 정치인들과 악연을 맺었었다.
그를 국민검사 반열에 올려준 인지도 역시 정치 이슈인 대선자금 수사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기억하면, 새누리당과의 인연 역시 정치색에 따른 결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당시 대선 후보이던 박 대통령의 개혁 소신에 감동한 그가 자신의 수사에 기인한 '차떼기당 오명'을 씻어내고 쇄신할 수 있도록 '후속 수술'을 해준 정도로 풀이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대선 승리 후 오히려 당과 거리를 뒀다는 점은 그런 추측에 무게를 싣는다. 결국 대법관까지 지낸 뒤였지만 수사검사 기질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모조직서 정치 맛본 뒤 '마침내' 본격 일선으로
그런 그가 선거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당초 부산 해운대를 통해 다소 쉽게 등원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의 험지 출마론에 결국 마포갑을 선택했다.
당에서 애초 권했던 마포을이 아니라는 점에 의미를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지만, 현직 야권 의원이 버티고 당협위원장을 역임한 강승규 전 의원지지 당원들이 술렁이는 등 안팎으로 험지인 것은 분명해보인다.
그에게 수임료 논란은 전화위복인 셈이다. 대법관 출신 등 고위층 인사들이 높은 수임료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전관예우 문제는 일종의 관행으로 "천하의 안대희도 피해 가지 못했다"는 반응을 낳았다.
이 때문에 사건과 자문을 의뢰했던 이들과 가족들이 마녀사냥식 공세에 무차별 노출되자 결국 스스로 총리직을 포기했다.
자리에 오르지 못한 점은 안타깝지만 결국 이는 그가 정치를 목표로 할 경우 전화위복이 될 것으로 진단된다. 청문 준비 과정에서 다른 부정 요소가 드러나지 않아 상대적 청렴성은 이미 검증을 마쳤기 때문이다.

안대희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마포갑 지역 출마를 선언하고 사무소를 열었다. ⓒ 뉴스1
국민검사라는 기대치는 프리미엄이 되기도 하지만, 그 무게감은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일종의 신드롬을 업고 정치에 입문했지만 이후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과 저평가에 밀려 한동안 시달리다 이제야 창당 등으로 이를 뒤집으려 애쓰는 상황을 보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오히려 이 같은 부담감을 털어내면서 이번 20대 총선판을 냉철히 바라보고 준비할 수 있는 고지에 선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기획과 소신, 공평무사함… 경제 분야에 통찰력 집중시킬까?
그가 수사를 했던 시절 특징을 기억하는 이들은 기획과 소신, 공평무사함을 키워드로 꼽는다. 특정인을 봐주지 않는다며 밀어붙이는 공평과 소신, 그리고 다른 검사들이 놓치기 쉬운 문제를 짚어내는 전반적인 통찰력이 돋보였다는 증언이 적지 않다.
특히 학원에서 수강생 숫자를 실제보다 줄여 당국에 보고하는 식으로 탈세한다는 관행과 이 문제에 학원 관계사가 페이퍼컴퍼니처럼 이용된다는 의혹을 연결해 대형사건으로까지 만든 아이디어가 그의 작품이다.
국정 현안을 다루는 입법부에서 일할 때 미시적 법안 대신 전체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 특기와 흥미를 발견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
그에게 경제관을 길러준 사건은 역설적으로 "검사들이 경제를 모른다"는 호된 비판과 질책을 당했던 몇몇 사건들 때문이다. 그 첫손에 꼽을 만한 일이 바로 저질연탄 사건이다.
연탄 질을 낮게 관리해 부당하게 이득을 보던 회사들을 수사했던 이 사안은 경제부처에서 청와대에 서민경제에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는 보고를 하면서 수사 관계자와 지휘 라인이 대거 불이익을 받는 역풍을 맞았다.
하지만 당시 그런 행정기관 시각과 달리, 문제를 짚고 이에 자극받아 수술을 단행하면 민생에 오히려 도움이 되며, 실제로 연탄회사들도 망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또 설계감리비리 역시 1위부터 100위까지 업체를 모두 캐는 방식으로 수사를 시도했었다. 그런 저인망식 먼지털기 수사는 안 된다는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의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 격려를 받기도 하면서 나름의 도(道)를 확립했다.
기업들이 다수 관계된 대선비리 수사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도 대과 없이 끝냈다는 평, 경제적 부작용 논란이 별로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바로 이런 오랜 경험이 꽃을 피운 셈이다.
◆정당하게 주어진 기회는 모두 누린다 : 생각의 시프트 눈길
안 최고위원이 경제를 맑고 투명하게 관리하면서도 국민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균형자적 역할을 여당 내에서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대목도 이 지점이다.
무조건 잡아넣고 캐기만 즐기는 경향이 많은 검사 출신 정치인들이 초선 때 공격수로서는 몰라도 큰 정치적 업적은 내지 못하는 점을 그가 극복할 가능성이 그래서 점쳐진다.
이번에 최고위원직을 수락한 것도 불공정 논란에도 전체적 관점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고, 전체적 정치 판세에서 당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결정을 할 수 있는 정무적 감각을 그가 획득한 징표로 받아들여진다.
과거 국무총리 후보직을 표표히 던질 때 그는 자기 명예에 손상이 가는 일을 견디지 못하는 일종의 결벽성을 보였다. 아울러 과다 수임료 논란은 검찰 고위층치고 청빈하게 살 것을 오래 강요받은 가족에게까지 각종 의혹과 논란 검증 칼날이 겨눠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것이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해 청와대에 큰 부담이 걸리는 중도사퇴 결단을 택한 것이다. 한 개인이자 법조인, 아버지로서는 훌륭한 처신이었을지 모르나 정치적으로는 상당한 무리수이자 악수를 뒀던 셈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당장 같은 당 강승규씨와 후보직 지명 문제를 놓고 겨뤄야 하는 상황에서 최고위원직을 수락하면 어쩌냐는 형평성 논란에 단호하게 차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체 선거 국면에서 볼 때 새누리당은 더불어민주당 등과 인재 영입 경쟁을 보이고 거기서 얻은 결집력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친박과 비박 간 내분 봉합이 큰 것으로 국민들 눈에 비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안 최고위원 같은 인사의 중량감도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정 선거구에서의 유리와 불리 논란 등 지엽적 부분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그가 그 지점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드디어 그는 다른 직업, 즉 정치를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사고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보인다. 때는 마침 정권이 레임덕 위기에 직면한 시점이다. 창조경제를 외쳐온 성과는 아직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못하고 정치문화 개선 등 주문도 높다.
청와대가 바라는 바를 지원할 의무가 여당에 주어진 한편, 제왕적 대통령제에 기울지 못하도록 때때로 견제하고 진언할 숙제도 더 무거워진다. 이런 점에서 그가 전체적인 기획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논란의 요소가 많은 대형 수사 아이템들을 치러낸 감각이 요청된다는 젼해가 있다.
때마침 그로서도 그런 역할에 부합할 정치가로서의 변신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안 최고위원이 정치와 연관을 맺으면서도 정치인으로서 스스로를 정립하지 못했던 지난 몇 년새, 우리 사회는 그의 검사, 법조인으로서의 명성 또한 많이 잊고 흘려보냈다.
비겁하지 않은 선택으로 일관했던 공직에서의 경험은 이제 험지 출마로 확장판의 새 장을 써내려갈 전망이다. 국민적 시각에서 보면 질주하던 국민검사는 이제 잃었지만, 이제 여전한 그때 그 기획 감각을 다른 대국에서 펼칠 의원'감'을 얻은 셈이다. 마포갑에 대한 공천과 4월 본선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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