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불법 파견은 아니다" 삼성전자의 자회사, 삼성전자서비스가 제품 수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협력업체와 위장된 도급 관계를 맺고(위장하도급이라 함) 근로자들을 불법 파견 받아 왔다는 의혹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2013년 9월 이런 판단을 내렸다. 실제로 A/S기사들이 PDA나 문자메시지로 직접 본사 콜센터의 업무지시를 받은 행위는 직접적인 지휘·명령 행위라고 볼 수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고용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왜 인정할 수 없는지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도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올해 들어 SK브로드밴드 등 여러 IT업체가 서비스센터 운영에서 위장하도급 논란을 빚고 있으나, 해결이 요원하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당국의 삼성서비스센터 유권해석 때문이다.
이처럼 위장하도급을 밝혀내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일정한 문제가 불거지고 비난 여론이 비등해도 막상 기업측에서는 그걸 더 발전시킨 또다른 복잡한 무기를 개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일부 기업의 서비스센터에서 소사장 제도를 악용, 중간 착취를 구조화하는 경지까지 발달한 예를 생각해 보자).
하지만 업무지시를 받은 점을 명확히 입증하라는 글자 그대로의 해석에 노동법학과 법원이 매여있지는 않고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노동자 권익을 침해하는 문제 상황을 규제하려는 숙제 자체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법리 발전에서 부각된 여러 이슈에 우리나라에서 근래 문제되고 있는 서비스센터 근무자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를 대입해 보면서 살펴보면 꼭 노동부의 판단이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님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특고=근로자" 韓법원 태도 변화에 검찰도 주목해 연구
일명 특수고용직이라는 개념은 우리나라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존재해 왔다. 사실상 노무를 제공하는 지위에 있으나 겉으로는 독립된 개인, 즉 채산성을 스스로 담보하는 형태의 직업들이 존재했고 이들은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왔다.
일명 특고로 줄여 불리던 이들에는 학습지 교사나 운송기사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고등검찰청에서 2012년 발간된 '노동법 판례연구'를 보면 근로자성 판단방식에서 법원이 변화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른바 과거 기본판결 입장에서는 △지휘명령의 요소 △임금성의 요소 △기타의 요소 등으로 사용종속관계 인정을 채용(인정)할지가 좌우됐다.
즉 사용자에 의해 구체적으로 업무수행 과정에 직접적 지배를 받는지, 보수가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을 갖는지, 비품이나 원자재 등의 소유 관계 등을 참작했다.
하지만 2006년 12월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해야 할지에 대해 '양당사자의 경제·사회적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을 요구했다. 즉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큰 점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부당하게 작성된 문서가 제시되는 등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 판결은 기준을 제시했다. 즉 "이러한 사정들은 실질적인 노무제공 실태와 부합하지 않는 계약서 문언에 불과하거나 사용자인 피고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사실상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사정에 불과해 원고들의 근로자성을 뒤집는 사정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검찰측 연구보고서는 이를 신판결이라고 그게 의미있게 부른다(대판 2006.12.7,2004다29736).
이 신판결과 궤를 같이 해 나중에 나온 판결이 바로 건설운송기사 근로자성 인정 판결(2007두9471 사건)이다.
여기서는 업무 수행의 과정에서 상당한 지휘감독을 한 점, 운송업무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비용을 위 회사가 부담한 점, 사실상 제3자에 의한 대행 및 운송기사가 다른 사업장에 노무제공을 할 가능성이 제한된 점 등을 언급해 독립된 사업자라기 보다 운송회사에 종속적인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2008두1566 사건에서도 근로자성을 다툰 경우가 발견되는데, 채권추심원이 독립된 지위에서 금융사와 관계를 맺었다고 보지 않고, 각종 관리감독성을 실체적으로 판단해 금융사에 유족급여 지급 의무를 확인했다.
삼성전자서비스나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서비스센터 하청 소속 기사들의 경우 당초 원청 회사의 마크가 새겨진 옷 등을 사용하다가 문제가 생기자 이를 회수하고 센터 로고로 대체하는 경향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런 판례의 지적 사항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판결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는 위장 하도급을 주장하는 기사들의 의견에 힘이 실린다고 하겠다.
다만, 기름값이나 장비 등의 비용 지출을 사실상 기사들에게 떠안긴 점은 회사측이 사전에 논란을 불식한 경우로 풀이된다.
결국 문제는 다시 가장 핵심인 상당한 지휘감독을 했는가로 돌아오는데, 이 부분에 노동부가 삼성서비스센터의 경우 부정적 견해를 드러냄으로써 결국 이를 뒤집으려면 법원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더 부각된다고 하겠다. 각종 단서를 판단에 반영할 길이 열려 있으므로 꼭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일본 법원은 '일부러 출향시킨 회사'에 비판적 입장
센에이 사건에서는(1997년 사가현 지방법원) 몇 가지 의미있는 요소가 더 제시돼 있다.
이 사건은 하청사업자가 고용한 근로자들이 원고가 된 사건이다. 즉 원청업체에 자신들을 직접 고용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인정하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여기서 법원은 도급대금이 근로자들의 근무시간에 따라 정해짐으로써 사실상 원청측에 의해 지급된 임금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또 원청측 로고가 들어간 모자 및 작업복을 사용한 점도 원고에 유리한 요소로 판시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원청 측이 출퇴근관리 및 시간외근로명령을 직접 수행했다는 점, 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의 경우 대부분 원청 및 원청에서 일부 근로자를 출향시켜 만든 제3자 회사에서 이뤄진 점 등을 모두 직접고용성 판단의 인정자료로 썼다는 점이다.
즉 위장의 한 형식으로 회사와 관련있는 인물들을 일부 내보내 또다른 회사를 만들고 이들이 관리하는 경우에, 출향회사에 의한 관리감독은 원청측 행동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명확히 한 셈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근래 문제되고 있는 일부 IT서비스업체의 소사장제 악용 등에도 적용할 여지가 많은 논리로 수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하도급 사업주를 사실상 허수아비로 판단하는 일본 노동 판례 근거?
이런 경우 일부 서비스센터 협력업체들의 볼멘 소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사장들이 '우리는 바지사장이 아니'라는 주장을 대대적으로 편 바 있다.
이를 부인하고 실질적으로 근로를 관리감독하는 원청(예를 들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말고 서비스사 그 자체)에 사실상 고용책임을 지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도급사업주가 독립된 법인격을 가지더라도 사용자로서 실질성이 없는 경우가 있다는 논리가 이미 일본에서는 형성돼 있다.
박은정 인제대 법대 교수가 이화여대 법학논집 제15권 4호(2011년 6월)에 소개한 바에 따르면, 하도급업주가 형식적으로 독립된 법인격을 갖더라도 사용자로서 책임을 갖지 않고 근로자 임금, 근로시간, 장소 등을 실질적으로 원청이 갖고 있는 경우가 문제 케이스로 지적돼 있다. 아울러, 하도급사업주가 당해 도급사업주 외에 근로자를 공급하거나 업무도급 등을 한 실적이 없는 경우(전적으로 특정사 하청에만 매달려 있는)도 실질성 부인 이유로 소개됐다(위 논문집 218~219쪽).
우리나라의 경우에 다시 이를 대입하면, 우리 서비스센터들이 이곳저곳 여러 회사의 A/S를 대행하지 않고 사실상 한 회사의 일거리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더 많음을 볼 때 상당히 파괴력 있는 논증방식이다.
결국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불법하도급 논란을 숨기는 쪽(회사) 논리도 치열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에 뒤따라 법원이나 학설도 발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부의 입장은 구식 논리에 매몰돼 있는 것으로 오히려 발전된 전향적 판단을 법원에서 얻어낼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여러 회사 서비스센터 소속 기사들이 노동부의 판단에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