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박근혜정부 들어 첫 국정감사가 1일로 마무리되면서 많은 화두를 남겼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등 대형 이슈가 불거지면서 국감이 국민들의 관심에서는 다소 멀어져, 예전과 같은 형태의 '국감스타'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백년대계에 해당하는 중요현안들이 국감 무대에서 다각도로 논의됐다는 점은 중요하다.
특히 이번 국감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진보정치인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환경규제 전문가'로 부각되는 기회가 됐다. 정의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심 의원은 재계 반발에 대응하기 위해 '국감 증인 소환' 카드를 활용해 눈길을 끌었다.
김제남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심 의원은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통칭 화평법)에 대한 왜곡되고 편향된 문제제기를 일삼은 재계관계자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해 모법의 원만한 이행을 위한 시행령 제정에 협조하도록 일정 부분 합의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같은 상황에도 앞으로 넘을 고비가 더 많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계가 소위 '글로벌스탠다드'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 압박하려는 기도를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글로벌 분쟁 가능성 등에 대응할 논리개발을 위해 현재의 법안을 한층 정교화할 필요도 높다.
◆재계 "유럽 REACH에 맞춰달라" 어젠다 세팅 노력, 왜?
올해 상반기 임시국회에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통과된 바 있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이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유해물질 중심에서 전체 화학물질로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정부에서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법개정을 준비해 관련 움직임이 시작됐고 여기에 심 의원의 화평법 대표발의안이 등장하면서 제정 결실을 맺은 것.
하지만 여기에 재계가 거센 도전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시행령을 통해 재계 입장을 반영한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일종의 절충안이다. 하지만 재계가 최종적으로 바라는 것은 법 자체의 개정으로 보인다. 국감에 출석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EU나 일본 수준으로 (화평법 벽을) 낮춰달라"는 입장을 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유럽연합(EU)에서는 이른바 신화학물질 등록에 관한 규정인 REACH를 통해 화학물질 규제를 강화한 바 있다. REACH는 1톤 이하 신규 화학물질의 경우 등록을 면제해주고 있지만 평가등록 항목도 우리나라 화평법보다 많고 제품에 사용된 화학물질까지 관리하기 때문에 훨씬 강력한 규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연구개발용 화학물질은 연구실 바깥에서 사용하지 않는 걸 조건으로 시행령 차원에서 면제하기로 합의가 된 상태지만, 소량 화학물질 면제에 여전히 논란이 있다.
예를 들어, 지난 번 많은 피해자를 냈던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보면 이 같은 문제로 얼마나 첨예하게 큰 이해관계가 갈리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제조업체가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대개 1톤 미만이고 소규모 업체의 경우 0.1톤 미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량 화학물질 등록을 면제할 경우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재발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심 의원은 "전체 화학물질 중 1톤 미만의 신규화학물질이 4~5% 정도 되는데 96%에 달하는 나머지 화학물질에 대해 재계의 요구를 반영해 법 내용을 수정했으면 4% 정도에 대해서는 기업이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발언, 재계를 압박했다.
그렇다면 재계는 왜 유럽이나 일본 수준으로 낮춰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REACH 기준을 준수해야 EU로 수출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더 강한 국내 규제까지 받게 되면 '기업 죽이기'가 아니냐는 여론 조성이 가능하고, 둘째로 우리가 외국 규제의 흐름보다 강한 장벽을 조성하면 글로벌 분쟁 등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이중적 효과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심 의원이 "중국도 1톤 미만 신규화학물질의 간이독성평가 내용을 제출해야 하는 신고제도를 두고 있고, 일본과 EU도 사실상 신규화확물질 등록제도를 두고 있다"고 재계 인식에 반박하고 있는 것도, 재계가 바라는대로 이 같은 프레임이 조성되면 곤란하다는 위기감의 발로로 읽힌다. 한국의 화평법이 외국 규제에 비해 더 강한 규제라는 해석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 REACH' 글로벌 스탠다드인가 논란 여지 있어
혹시 외국 규제에 비해 더 강한 우리식 규제를 만든다고 바로 글로벌 분쟁이 생기고, 이 경우 분쟁에서 패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대목도 따져볼 일이다. EU의 REACH에 맞춰달라는 재계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REACH를 화학물질 규제 영역에서의 글로벌스탠다드로 널리 인정할 수 있다면 이 주장의 입지가 넓겠지만, 여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재계에서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있는 REACH만 해도, 제정 초기에 세계무역기구(WTO)협정 등에 충돌하지 않느냐는 의문을 낳은 바 있다. REACH가 '필요 이상의 무역 규제인지'에 대한 논란과 그에 대한 국제법상의 논의를 살펴보면 이번에 불거진 우리 화평법 등에 대한 반발도 유추할 수 있다.
'국제경제법 연구 제7권(2009) 1호'에서 박지현 영산대 법대 교수는 'EU 화학물질정책과 한-EU FTA' 논문을 기고했었다. 이 글에서는 GATT 제3조와 WTO/TBT 협정 제2조 제1항 적용을 다루고 있다. 이 조문들을 보면 각국의 환경규제가 '불필요한 장애의 초래'나 '필요 이상의 무역 규제'를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국제표준(글로벌 스탠다드)' 준수의 의무와 타회원국의 기술규정의 동등성 인정이 중요해진다.TBT협정 제2조 제4항은 "기술규정이 요구되고 관련 국제표준이 존재하거나 그 완성이 임박한 경우…관련 부분이 추구된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비효과적이거나 부적절한 수단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국제표준 또는 관련 부분을 자기 나라의 기술규정의 기초로 사용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로테르담 협약은 국제무역에 있어 유해물질과 살충제의 사전통보승인에 관한 협약이며, 스톡홀름협약은 잔류성유기오염 물질에 대한 협약이다. 따라서 전체 화학물질을 총괄하는 국제표준을 제시하는 협약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라고 풀이했다.
이어 "이 의무의 준수여부는 관련된 표준이 없으므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에 따라 REACH는 정당성만 있으면 다른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재량으로 기술규정을 만들면 됐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REACH의 정당성 구성 논리는 이번에 부각된 화평법 논란에도 그대로 사용이 가능하다. REACH 이상으로 우리 법규정이 불편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해외 기업이 수출에 대한 부당한 제한으로 GATT 제3조와 WTO/TBT 협정 제2조 제1항 등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느냐를 보면, 화학물질 총괄의 국제표준이 현재 존재하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즉 EU(REACH)나 미국, 일본 등의 자체적인 기준이 있지만, 이는 경제적으로 이들 시장이 부각돼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수출 때 따르고 자국 규제 마련 때도 참고하는 것이지 글로벌화해 어느 국가나 따라야 할 기준으로까지 존재한다는 단계까지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분쟁 가능성 적다" 설득력 갖춰야 국내기업 몽니 막을 수 있어
외국이 화평법 기준을 WTO에 무역현안으로 부각시켜 다투거나 이를 제소하는 등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반대로 이 경우 대응논리가 없다시피 해 극히 궁색한 상황이 아니라는 상황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런 터에 외국 기준에 우리 기준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규제 등장의 자체를 달갑잖아 하는(불리한 대목이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에 거부감을 보이는) 태도로까지 볼 여지도 있다.
이번 화평법 논란은 심 의원이 발의해 태동한 화평법은 물론이고, 향후 정치권이나 당국이 환경에 관련해 기준을 강화할 때에는 기업들의 강한 입김에 대응할 논리를 전방위적으로 모두 마련하면서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제경제 영역에서의 틀에서까지 검토하고 분쟁 가능성 등을 모두 시뮬레이션해 논리적 우위를 확보해야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는 기업의 참여를 일정 부분 시키는 모델을 구축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일본은 화학물질 심의법(화심법) 등 규정을 만들어 운영한 바 있고, 개정 등 경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리스크 평가는 국가에서'라는 틀을 굳혔지만, 대신 '이를 위한 정보수집은 기본적으로 사업자가' 하는 단계적 시스템을 갖게 됐다. 기업의 불만을 반영하고 경험과 경제 실정을 감안해 검토하는 것이기도 하고, 기업 참여를 열어둬 사후 불만제기와 무력화 시도의 명분을 차단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결국 이번 화평법 갈등은 아직 봉합된 것은 아니며, 다양한 측면에서의 검토와 노력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환경규제'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노력을 하해 한다는 숙제와 기업의 목소리와 노하우를 얻어 녹여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남기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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