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가계대출 부실 위험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서울·수도권에 집을 팔아도 빚을 다 갚기 어려운 일명 '깡통주택 위험' 대출 잔액이 1265억원에 이르는 등 가계대출 부실이 심각한 가운데, 다중채무자 문제, 하위등급 가구의 부채 비중 등 가계대출의 '질' 문제도 우려 대상이 되고 있다. 가계대출의 총량 관리가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은 단기적으로 가계부채의 대규모 부실 사태 발생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본다(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된 '국정감사 요구자료'). 가계부채가 상환 능력이 양호한 상위 소득계층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고 대출구조의 안정성도 꾸준히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은행 주택담보대출(LTV) 비율은 50% 이내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을 당시 영미권이 80%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모든 지표가 청신호인 것은 아니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8대 시중은행에서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 채권이 2008년 9170억원에서 올해 6월 기준 2조830억원으로 늘어난 바 있다. 금융감독원의 '국내 은행 가계대출 연체 잔액'을 보면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연체 증가속도가 대출 증가속도보다 5배나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말부터 2013년 6월 말까지 지난 3년반 동안 시중은행 가계 대출의 증가율은 3.6%였지만 연체 증가율은 19.9%였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가 분석한 올해 6월 말 기준 다중채무자는 모두 326만명으로, 이들의 대출잔액은 306조9000억원에 이른다.
문제는 주택담보대출이나 다중채무자의 부실화가 더 진행될 가능성이 앞으로도 존재한다는 대목이다.
◆상위 소득계층은 걱정 덜하지만… 부실화 후보군이 문제
금융회사에서 요주의 대상으로 꼽는 신용등급 5~6등급 다중채무자만 해도 100만명이 넘는다. 이들은 언제든 악성 다중채무자로 전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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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잠잠하던 가계대출 위기론이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우려와 전세대출 급증 등 새 문제의 부각으로 다시 불거지고 있다. ⓒ 프라임경제 | ||
주택대출쪽도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상황이라는 배경을 감안해 보면 밝은 상황이 아니다. 은행들은 당국의 요청에 따라 지난해부터 이미 LTV 한도를 초과한 만기 대출원금에 대해 상환하지 않아도 대출을 연장해 주고 있어 위험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금감원의 '주택담보대출의 LTV×DTI분위 구간별 잔액'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서울과 수도권의 LTV 100% 기준을 초과하는 대출 잔액이 990억원, 총부채상환비율(DTI) 100%를 초과하는 대출 잔액이 275억원이다.
주택담보쪽이 한계에 다다르자 은행권이 전세금대출로 눈을 돌려 이 영역을 키워놓은 것도 문제다. 28일 김기준 민주당 의원은 전세자금대출은 전세가격이 꿈틀대기 시작하던 2009년부터 최근까지 매년 평균 28.7%씩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주택담보대출 성장세를 훨씬 웃도는 것이다.
◆은행권 "물 들어올 때 노젓자" 이기적 대응… 이번엔 가산금리 올리기?
이는 은행 등 금융권의 영업 행태와도 연관이 있다. 김 의원은 "현재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진 원인 중 하나는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신용 공급에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기관이 국민경제나 주거안정 같은 국가적인 이익은 무시하고 단기적인 이익창출에만 혈안이 돼 '물 들어올 때 노 젓겠다'는 심정으로 주택담보대출 퍼주기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비판이다.
최근 수익성 관리를 위해 은행들이 대출 가산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거시적 관점과 판단의 부재 현상으로 꼽힌다. 최근 은행들은 대출 가산금리를 올리고 있으나,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7월28일 내놓은 '은행 가계대출 가산금리의 경기변동성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가산금리 인상이 은행수익에 바로 연결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 연구위원이 지난 10년간 호황·불황기 국내은행의 가계대출 가산금리 움직임을 분석한 결과 지난 2008년 경제위기 때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현저하게 올렸다. 하지만 이 기간 은행 수익성 지표는 가산금리의 움직임과 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실질적 효과는 의심스럽지만 부작용 우려는 크다. 저신용층이 가산금리의 혜택을 더 적게 받도록 금리를 조정해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의 부담이 더 커진다는 고통 가중의 가능성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패턴에서 볼 때, 은행권의 이자율 관리가 가계대출 뇌관을 건드리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삼성증권이나 하나금융연구소에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년 말까지는 동결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변동성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 주택가격 변동성이나 경기 흐름 등 각 국면마다 각 금융기관이 이번 가산금리 문제에서 보듯 이기적 판단을 할 가능성이 존재하면 위험이 증폭될 수 있다.
가계대출이 변동금리, 일시상환 등으로 운영되는 현재 패턴은 금리 상승, 주택가격 하락 등 외부 여건에 취약하기 때문에 이 같은 위험을 안고 위기관리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당국 적정대출 취급 유도 등에 응할까? 역할론 부각
결국 당국의 정책 문제도 있지만, 전·월세 대출 확대 등 대부분의 빚을 늘리는 흐름이 금융권의 지나친 행보로 문제가 증폭된 만큼, 가계부채가 한꺼번에 부실화 될 수 있다는 위기 국면에서 위험성을 관리하는 역할도 당국에만 맡겨놓을 게 아니라 함께 나눠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수현 금감원장이 18일 업무현황 보고자료에서 취약계층의 대출 등 가계부채의 질 저하에 대한 우려를 언급하면서 "금융회사의 소득정보 보유 및 관리 현황을 점검하고, 차주의 상환 능력에 맞는 적정 대출을 취급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힌 점은 시사점이 크다.
한국신용평가 보고서 역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취약계층과 연관성이 높은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금융(정책)부문 대책만으로는 가계부채 리스크 경감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 보고서에서 언급된 방안 중 '자영업자 상환부담 완화' 등은 금융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라는 지적이다. 은행 등이 저수익시대라는 달갑잖은 상황 속에서 어느 정도 가계부채 연착륙에 기여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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