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권 교체를 앞둔 시점에 채권-채무 관계를 둘러싸고 여러 제도가 논의되면서 은행권과 신용정보·평가사, 대부업계 등이 요동치고 있다.
연초부터 복잡한 문제들이 산적한 가운데 오히려 이 기회를 부실채권 처리를 둘러싼 제도의 대수술 계기로 삼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간 문제가 있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고치지 못했던 영역을 손보거나 새 제도가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은행권은 행복기금, 대부업은 감독권 이관에 눈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으로 언급된 행복기금이 채무자들의 빚부담을 어떻게 줄여주는 재원으로 쓰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금을 줄여주고 대출 만기를 늘리고, 금리도 낮춰주는 재원으로 쓰이지 않겠느냐는 것인데 은행권이 이 과정에서 부담을 어떻게 나눠질지가 관건이다.
의견이 엇갈리고는 있지만, 일단은 부실채권 처리 비용의 일환으로 작동하게 되면 은행으로서는 비용을 큰 폭으로 아낄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14일 보고서는 행복기금을 은행주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대부업계는 일단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진영이 대선에서 패하면서 한결 여유로운 입장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피에타 3법(이자제한법·공정대출법·공정채권추심법 관련 개혁)을 통해 이자율 상한을 연 25%로 낮추는 등 과도한 채권추심을 제도적으로 막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지만 새누리당에서 승리하면서 추진 동력이 떨어지게 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당장의 현안은 이에 따라 행정안전부 소관인 대부업 감독권을 금융감독원으로 이관할 지 여부 정도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신용정보·평가사들 중 채권추심업무에 종사해 온 회사들은 지난 연말 부가세 면세 혜택 종료의 영향을 당장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 등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대출을 실시했다가 연체가 발생하면 1차적으로 은행 내부에서 채권추심이 진행된다.
이 단계에서 회수가 이뤄지지 않으면 신용정보·평가사 등에게 채권추심의 대행을 위탁(즉 용역)하고, 이를 맡은 업체는 이 과정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신용정보법상 신용정보의 여러 형태 중 하나로 채권추심업이 규정돼 있지만, 우리나라 신용평가사들 중 상당수는 추심업 수익에 크게 기대고 있는 실정이며 이 같은 상황에 관련 세금 부담이 커지면 부실채권이 관리되기보다는 매각되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칫 잘못하면 은행만 좋은 일 우려 해법이 관건
위에서 언급했듯 부실채권 처리의 한 방편에 가까운 형태로 행복기금 운영이 변질되면 이는 은행에 좋은 일이 될 여지가 있다. 또 추심업무 위탁수수료의 부가세 과세 방침이 새로 부각되면서 부실채권이 관리되기보다는 매각되는 쪽에 방점이 찍힐 상황에 새 처리 창구가 등장하는 셈이 된다.
이에 따라 은행권이 행복기금의 역할분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이 같은 문제없이 채무자에게 실질적 혜택이 될지 주목된다.
우선 지난해 금감원이 대부업의 제도권금융 채권매매 문턱을 높인 것이 주목된다. 정상채권이 아닌 부실채권만 인수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신용회복위원회와 협약을 맺고 있는 대부업체만 이 같은 인수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대부업의 제자리는 자본금 제한선&채권양도업 삭제?
하지만 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의 경우 대부업체가 아예 채권을 양도받는 것을 업으로 삼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 의원은 이 같은 업무 제한을 담은 대부업법 개정안을 최근 대표발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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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의원은 대부업법의 확장을 지양하고 공격적 채권추심 등 병폐를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업법에서 채권양도를 업으로 하지 못하도록 규정 삭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2012년도 국정감사에 임하는 노 의원. | ||
애초 양도 채권 추심은 대부업의 업태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2009년부터 포함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상회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같은 업태 개정이 2007년 개정법안 추진 단계에서부터 많은 우려를 사기도 했다. 송태경 전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실장은 당시 이 개정 추진을 '독소조항'으로 우려하는 글을 블로그에 공개하기도 했다.
감독권한 이전 등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 대부업법 위상 강화에 유리한 내용 중심으로만 흐를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자본금을 너무 적게 잡는 것을 지양하거나 무등록업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연말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대부업자·대부중개업자의 자격요건 강화 필요성' 보고서에 따르면 "자격요건만 강화하면 무등록업체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고 무등록업체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제, 대부업협회에 대한 무등록업체 단속업무 위탁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너무 적지 않은 수준의 자본금 제한선 첫 단추를 꿰면서 이 같은 의견을 모두 현실화한다면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용정보법상 추심회사, 일본 특조법 따라 육성하면?
한편 신용정보법상 채권추심업무에 대한 개혁 추진 수요는 위의 두 제도 제정, 개선보다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세법 개정 국면을 통해 부과세를 부과하는 것을 그간 문제를 많이 안고 있었던 업계의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03년 여름 채권추심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채권추심법 제정을 입법청원하는 등 신용정보법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1995년 신용정보법 제정 당시부터 이미 변호사법의 예외적 법률이므로 신용정보법 외에 별개의 입법을 해야 하고, 감독도 법무부에서 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미 2002년에 관련 토론회를 열었으며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후 공정채권추심법이 제정되는 등 입법 노력이 있었으나, 2012년 9월 과태료 조치 등에서 보듯 금감원이 징계주체가 되는 등 당초 채권추심법 입법청원 모델과는 다른 틀을 갖추고 있다(금감원이 K신용정보에 대해 과태료 150만원과 직원 2명에 대한 견책 또는 주의 조치를 확정한 사례로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 또한 일각에서 있었다).
이에 따라 지금과 같은 구조 대신 일본의 채권관리회수업특별조치법 등을 참고해 규모를 키우고 관리감독을 법무부에서 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과 업계 돌파구 마련을 동시에 꾀할 필요가 제기된다.
일본 채권관리회수업법은 금융기관이 보유하거나 보유했던 채권 등 특정한 채권에 한해 채권관리회수업을 허용함으로써(1998년 제정) 범죄조직이나 사건브로커 개입의 문제를 예방하고 독립된 업무로 마련한 예가 있다(이와 별개로 대부업법에서는 대부업자의 부당한 추심을 금지하는 등 관리를 강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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