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여파가 해소되는가 싶던 것도 잠시, 이번에는 그리스에서 촉발된 유럽 재정문제 불씨가 세계경제 위기 불안감을 다시 높이는 등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급기야 내년 2012년 한해는 실물경제로의 본격적 위기 전이 예측이 기정사실화되면서 한국 금융권은 IMF 관리체제 이후 15년만에 또 다른 시험대에 서게 됐다. 한국의 금융지주 및 은행계 10대 이슈를 ①, ②로 나누어 정리했다.
불안한 세계경제 흐름 속에서 한국 또한 위기 대응에 분주한 시간을 보냈고, 산업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금융 역시 어느 때보다 치열한 1년을 보내며 위기의 2012년을 이제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금년 은행계 화두는 ‘시스템 격변’이라는 개념으로 요약 가능하다. 저축은행 사태 등의 여파로 금융 전반이 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으며, 지난 세월 ‘스타 플레이어’들의 역할이 중요했던 시대에서 지주제와 후계체제 명확화 등에 의해 ‘틀과 룰’을 중시하는 시대로 변화한 ‘원년’을 치러낸 셈이다.
[6] ‘제일은행’ 역사의 뒤안길로
SC제일은행이 이제 ‘제일’이라는 간판을 떼고 신년부터 SC은행으로 소비자들을 찾아가게 된다.
SC제일은행은 영국계 금융그룹인 스탠다드차터드가 지분을 사들여 운영 중이다. 이른바 외국계 은행으로 이미 변신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사명 변경은 과거 영화를 누리며 한국 은행계의 5대 주역으로 꼽혀온 제일은행의 긴 전통을 지우며 역사의 한 장을 닫고 새 장을 연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제일이라는 명칭이 사라지게 되면서,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의 5대 천황은 이제 은행사에서만 언급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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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제일은행이 내년부터 '제일'을 떼고 영업에 나선다. 이에 따라 조상제한서 중 하나로 오핸 역사를 자랑하던 제일은행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서울 공평동 SC제일은행 본점이 제일을 제거한 간판과 현수막 등으로 시민들에게 새 이미지를 알리고 있는 연말 풍경. | ||
하지만 SC제일은행이라는 명칭을 고수하는 문제가 젊은층으로 영업 저변을 확대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고민은 오랫동안 과제로 남아 왔다고 해당 은행 고귀 관계자는 전한다. 아울러 영업력과 이익 창출 능력이 타은행들에 비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시스템 개편이 추진됐고, 이에 반발한 노사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는 등 SC제일은행은 금년 한 해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이번 사명 변경은 이러한 조직 상황을 추스르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사명 변경으로 이미지 쇄신을 하려는 상황은 스탠다드차타드가 언제든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해묵은 논쟁을 접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이익의 해외 유출에만 신경을 쓴다는 평가 등에서,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심기일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7] ‘가계대출 중단’ 쇼크
농협과 신한은행(055550)·우리은행(053000) 등 일부 시중은행들이 지난 8월 전격적으로 가계대출을 중단하면서 상당한 충격을 줬다.
이처럼 극약 처방을 쓰게 된 것은 가계대출 규모가 통제가 어려운 수준으로 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8월18일 농협은 주택담보대출·주식담보대출 등 가계 대출을 이달 말까지 중단하기로 했고 신한은행은 8월말까지 대부분의 신규 가계대출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웠다. 우리은행은 구체적인 사용처에 대해 증빙자료를 내지 못하는 대출을 거절하고 하나은행(086790)은 기존 대출은 지속하지만 중요 고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특별금리인하 등의 혜택을 당분간 없애기로 하는 등 가계대출의 전면 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됐다(예금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새희망홀씨 등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출상품 제외).
하지만 이 같은 처방은 문제의 본질적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금융 전반에 악영향을 준다는 우려를 샀다.
우선 해당 금융기관들이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사실을 고객에게 미리 고지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중단 조치에 나서면서, 대출을 받으려고 창구를 찾았던 고객들이 헛걸음을 하는 등 큰 불편을 겪으면서 항의가 빗발쳤다.
더 큰 문제는 은행들이 특단의 조치를 내놓은 배경에 대한 논란이다. 당국이 압박을 가한 데 따른 극약 처방이 아니냐는 해석론이 힘을 얻으면서 ‘관치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가계대출이 느는 이유는 경제가 어려워지고, 또 금리가 제대로 시장의 고삐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금융 시스템이 망가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특단 조치 중심으로 문제 접근이 이뤄지면 시장 불안감만 더 높아진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조정 실기론이 부각될 정도로 기준금리 인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고, 이렇게 실질적으로는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시장이 왜곡되면서 가계대출에 좀처럼 브레이크를 걸기 어려운 상황이 형성된 한해였다. 가계대출 중단 쇼크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 선택지가 많지 않은 가운데서 빚어진 해프닝이라는 평가다.
기준금리가 연말 소폭 인상된 가운데, 내년 여름부터는 당국이 은행들의 대표적 대출 상품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연동대출을 단계적으로 폐지키로 하면서 가계대출 폭주 상황 해결에 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CD금리는 그동안 은행들의 대출 지표로 사용돼 왔지만 거래 부진으로 시장금리를 심각하게 왜곡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8] 은행권 수뇌부 교체, 시스템화 경향 두드러져
그간 일부 금융지주 및 은행에서 문제로 지적돼 왔던 차계 후계구도의 불명확성이나 CEO의 장기 집권 문제에 대한 처방이 제시된 점은 2011년 금융 이슈로서만이 아니라 한국 금융 역사에서 손꼽을 만한 뉴스로 평가된다.
지난 2월 하나금융지주는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이사회 멤버 연령을 만 70세로 제한하고 회장 임기를 처음엔 3년, 다음엔 1년씩 연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논의했다. 이 안은 이사회 승인을 거쳐 3월 선출 신임 지주회장과 이사부터 적용이 시작됐다.
신한금융지주 역시 수술을 단행했다. 이로써 금융그룹의 운영체계 전반에 대한 명확화, 즉 ‘룰에 의한 지배와 운영’이 확립되게 됐다.
신한지주는 6월, 신한지주 한동우 회장 주재로 간담회를 열고, CEO 승계시스템을 포함한 그룹운영체계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 그룹운영체계 개선안에 따르면 신임 회장의 신규 선임 연령은 만 67세, 재임 시에는 만 70세로 제한된다. CEO 승계 과정 전반을 관리하는 ‘지배구조 및 회장후보추천위원회’도 이사회 산하에 신설이 추진돼 승계 과정 전반을 상시 관리가 가능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룹경영회의도 구성이 논의돼, 회장에게 집중됐던 권한을 분산하고 비공식 채널을 통한 의사결정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같은 각 개별금융회사 차원의 노력에 발맞춰 당국 역시 관련 제도를 정비, 후계 문제의 명확화를 뒷받침하고 권한을 조정하는 법률적 뒷받침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6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모든 금융회사는 이사회에 사외이사를 과반수 이상 참여시켜야 하는 등 지배구조의 근원적 변화를 겪게 된다. 이 법안은 20일간의 입법예고 후 규제개혁위원회 및 법제처 심사를 거쳐 조속한 시일 내 국회에 제출된다. 적용 대상은 △은행 △금융투자회사 △보험사 △상호저축은행 △여신전문금융회사 △금융지주회사 등 6개 업권이다.
[9] 고졸 행원 채용 美風, 微風으로 그칠까?

한때 사라졌던 고졸 은행원들이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전시성 행사로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또한 높아 제도적으로 고졸 채용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멘토링 등 지원이 절실하다. 광주은행 여행원들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는 모습.
과거 은행계를 풍미했던 고졸 행원들이 다시 금융가로 돌아오고 있다. 은행권은 과거 대졸 채용 인력과 고졸 행원 입행자들을 모두 고용해 왔으나, 이런 인력 운용 방침은 IMF 관리 체제로 들어가면서 많은 행원들이 해고되는 등 은행계에 격변이 닥치면서 사라진 바 있다. IMF 여파로 많은 대졸자들이 실업 상태에 머물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당국의 의지가 은행계 채용 패턴 변화에도 일부 작용했다는 평가인데, 고졸자들의 입직 몫은 이때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후 IMF 관리 체제를 조기 졸업하고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서 은행계가 고액 연봉 일자리로 부각된 사정 역시, 사라진 고졸 취업자 몫을 되살리지 못하고 일명 ‘스펙 경쟁’이 불붙은 사정에 한몫을 했다.
이런 상황에 MB정부 들어 고졸 채용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면서, 은행계가 다시 고졸 채용 문호를 개방하고 적극적으로 자리 마련에 나섰다. 산업은행이 고졸 행원 50명을 채용하고, 기업은행(024110)과 같은 국책은행은 물론, 하나은행과 광주은행, 경남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등을 가리지 않고 고졸 채용 바람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한편, 고졸 채용에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다. 아직 여러 은행들이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 입행을 한 이들의 경우 대졸자도 못 버티는 와중에 이들이 정규직으로 뿌리를 제대로 내릴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높다. 아예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들어간 인원도 제대로 자리를 잡을 시기까지 도움이 되어 주고 롤모델을 설정, 보고 배울 멘토-멘티 형성을 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문제다.
무엇보다 이번 채용이 당국의 보이지 않는 압박을 수용하기 위해 급조된 감이 있어, 앞으로 대선 이후 이 문제가 이리저리 떠밀리다 다시 없던 일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까지 있다. 각 은행들의 의지와 결단이 제도 성공과 정착에 필요하다고 하겠다.
[10] 사상 최대 실적에도 은행계 움츠리는 속사정? ‘사회공헌’ 등 열올려
은행계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지만, 반면 몸을 사리고 있다.
23일 연합인포맥스 자료 등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는 올해 모두 10조원에 조금 못 미치는 순이익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는 4조7250억원의 순이익을 낸 전년보다 100% 넘게 증가한 수준이다.
4대 금융지주 순이익 전망을 들여다 보면, 신한 실적 전망치가 2조6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돼 가장 높고, KB금융(2조6000억원대)과 우리금융(2조1000억원대)이 2원대서 순위 경쟁을 하며, 그 다음은 하나금융(1조4000억원대) 순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사정 속에서도 금융지주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우선 내년도 경제 상황이 밝지 않을 것으로 보여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데다, 미국에서 촉발돼 세계 곳곳으로 퍼진 ‘월가 점령 시위’와 같은 금융권 탐욕 규탄 바람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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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들은 사상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수수료 수입으로 땅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돈을 번다는 지적에 시달렸다. 이런 비판론은 사회공헌에 은행권이 그 어느 해보다도 큰 관심을 기울인 까닭이다. 사진은 농촌 봉사활동에 참여한 우리은행 이순우 행장. | ||
지금의 실적이 영업을 잘 해서라기 보다는 수수료 수익에 기댄 것이라는 비판 역시 불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급기야 은행계에서는 수수료 인하라는 조치를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연말에 각 은행들이 수수료 규모 줄이기에 나선 점은 이 같은 고민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의 방증이다. 사회공헌으로 이미지를 고양하는 방법 역시 이미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상반기에 이미 2565억원을 사회공헌에 지출했고, 9월에는 시중은행장들이 은행사회공헌협의회를 연 자리에서 하반기 사회공헌활동 비용을 대폭 늘리자고 결의하기까지 했다.
은행사회공헌협의회에서 하반기 사회공헌활동 비용으로 지출하기로 의결된 자금 규모는 4100억원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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